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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우소식

댓글 1건 조회 2,071회 작성일 2009-09-04 22:04
서경석(51회) 예비역 중장, 駐 동티모르 대사 신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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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서경석 주 동티모르 대사 신임장 수여



【서울=뉴시스】이명박 대통령이 3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재외 공관장 신임장 수여식에 참석, 서경석 주 동티모르 대사에게 신임장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제공)

photo@newsis.com
 

신임장 받은 서경석 주동티모르 대사



(서울=연합뉴스) 조보희 기자 = 3일 오후 청와대에서 신임장을 받은 서경석 주동티모르 대사. 2009.9.3

jo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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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석장군사진 위 클릭


경기 의정부 출생
중앙고 졸업
고려대 문리대 사학과 졸업
육군소위임관(R.O.T.C 3기)
파월 맹호부대 소대장, 중대장
제5공수특전여단장
제17사단장
제6군단장

徐慶錫(서경석) 예비역 육군중장은 近接戰鬪(근접전투)의 영웅이다. 그는 1967년부터 1969년까지 27개월간 파월 맹호부대의 소대장과 중대장으로 복 무하면서 武名(무명)을 날렸다. 월맹군과 베트콩은 그의 목에다 거액의 현 상금을 내 걸었으며, 나중에 대통령이 된 盧泰愚(노태우) 중령 등 그의 직 속상관들은 그를 「월남전 제1의 싸움꾼」이라고 치켜세웠다. 그는 충무무공훈장과 화랑무공훈장을 받고 귀국하여 그후 보병 25사단의 대 대장, 특전사 참모장, 5공수여단장, 17사단장, 6군단장, 3군부사령관 등 육 군의 주요 보직을 두루 역임한 뒤 1999년에 예편했다. 이런 徐장군이 다 시 한번 화제의 인물로 떠오르고 있다. 그가 10년 전에 저술한 「전투감각 」(Feel for Combat)이 영어로 번역되어 최근 美 보병학교와 참모대학의 참 고교재로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외국군 장교의 저서가 미군 교육기관의 참 고교재로 선정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 월간 조선 2000년 11월 발췌-



[월남전 호랑이] 서경석씨, 고대서 ‘지도자論’ 강의



▲ 육군 예비역 중장에서 대학강사로 변신한 서경석 장군이 5일 모교인 고려대에서 ‘지도자론 ’에 대해 강의하고있다.
/허영한기자

“내가 월남전에서 중대장할 땐데, 한 병사가 박격포탄에 맞은 거야, 아 근데 이놈이….”

5일 오후 서울 고려대 안암캠퍼스 대강당. 350여명의 학생들이 이 대학을 졸업한 지 35년 만에 대학 강사로 돌아온 예비역 육군 중장 출신인 서경석(59) 장군의 강의를 듣고 있었다.

지난 68~70년 맹호부대 중대장으로 베트남의 밀림을 누빌 때부터 육군 중장으로 전역하기까지 30여년간의 군 생활경험을 바탕으로 한 서 장군의 ‘지도자론’ 강의에 학생들은 푹 빠져 있었다. 서 장군은 이날 첫 수업에서 “지도자가 되려면 먼저 남을 인정하라”고 누누이 강조했다. 지도자는 우선 남을 인정하고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65년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한 후 군에 들어간 서 장군이 모교에서 대학 강사를 맡게 된 것은 지난해 이 학교 서창 캠퍼스에서 ‘전쟁과 국가’ 과목을 맡으면서부터이다. 고려대 학군단 1년 선배인 김정배 총장의 간곡한 부탁에 “박사 학위도 없는 내가 후배들을 가르칠 수 있겠느냐”며 망설였지만, “후배들에게 지식보다는 30여년이 넘는 군인 생활을 통해 터득한 ‘살아가는 지혜’를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에 강사직을 수락했다고 한다.

학생들에게 스스로 ‘돌아온 장고’라고 자신을 소개한 서 장군이지만 이날 본교인 안암 캠퍼스에서의 첫 강의를 앞두고는 우황청심환까지 먹었다고 고백했다. 부인(51)과 딸(26)을 앞에 두고 수십 번 강의연습을 하면서, “저속한 말은 삼가고, 고리타분한 얘기는 빼라”는 혹독한 조언을 들었다고 한다. 그는 “만약 내 강의가 인기를 끈다면 딸과 마누라의 잔소리 덕분일 것”이라며 웃었다.

서 장군은 고려대 학군단장, 5공수 특전여단장, 6군단장을 거쳐 3군 사령부 부사령관을 끝으로 지난 99년 전역했다. 그는 “(시간당 2만원의) 강의료는 소주 값도 안 되는 돈”이라면서도 “모교 후배들이 내 강의를 들어준다는 것만으로 행복에 겨워 더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 박민선기자 sunrise@chosun.com )

 

 

 

 

 
빌 게이츠의 충고
 
예비역 육군 중장, 서경석 고려대학교 객원교수의 "손자병법과 지도자론"
 
 
명장 서경석 장군님
마이크로 소프트 사의 빌 게이츠가 마운트 휘트니 고등학교를 방문하고 사회에 문을 밟기 시작하는 학생들에게 참고될 조언 11가지를 들려주었다. 

Here's some advice Bill Gates recently dishes out at a high school speech about 11 things they did not learn in school. 

1. 인생이란 원래 공평하지 못하다. 그런 현실에 대하여 불평할 생각을 하지 말고 받아들여라. 
Life is not fair-get used to it. 

2. 세상은 네 자신이 네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세상이 너희들한테 기대하는 것은 네가 스스로 훌륭하다고 느끼기 전에 무엇인가를 성취해서 보여줄 것을 기다리고 있다. 
The world won't care about your self-esteem. The world will expect you to accomplish something before you feel good about yourself. 

3.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연봉 4만 달러를 받을 수 없다. 차량전화가 있는 부사장은 네가 노력으로 얻을 때까지 될 수가 없다. (이 연설은 1990년 말임. 년봉 차량전화는 지금과는 차이가 있음) 
You will not make 40 thousand dollars a year right out of high school. You won't be a vice president with a car phone, until you earn both. 

4. 학교 선생님이 까다롭다고 생각되거든 사회에 나와서 직장 상사의 진짜 까다로운 맛을 느껴보아라. 그는 임기가 없다. 
If you think your teacher is tough, wait till you get a boss. He doesn't have tenure. 

5.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는 것을 수치스러워 하지 마라. 너희 할아버지들은 그 일을 다르게 불렀다. 기회라고 불렀다. 
Flipping burgers is not beneath your dignity. Your grandparents had a different word for burger flipping-they call it opportunity. 

6. 네 인생을 네가 망치고 있으면서 부모 탓을 하지 마라.불평만 일삼을 것이 아니라 잘못한 것에서 교훈을 얻어라. 
If you mess up, It's not your parent's fault, so don't whine about your mistakes, Learn from them. 

7. 네가 태어나기 전에 네 부모들도 지금처럼 그렇게 지루한 존재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여러분을 위해 비용을 지불하랴, 빨래하랴, 그리고 여러분이 자신이 얼마나 쿨 한가? 하는 말을 듣느라 그렇게 되었다. 그러니 여러분은 부모세대가 열대 우림을 파괴하지 못하게 하는 일보다 여러분 자신의 방의 벽장부터 깨끗이 하도록 노력해라. 
Before you were born, your parents weren't as boring as they are now. they got that way from paying your bills, cleaning your clothes and listening to you talk about how cool you are. So before you save the rain forest from the parasites of your parent's generation, try delouse the closet in your own room. parasite; 기생충. delouse; 이를 잡다. 깨끗이 청소하다. 

8. 학교는 승자나 패자를 분명히 가리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실생활은 그렇지 않다. 어떤 학교에서는 낙제제도를 아예 없애고 네가 정답을 낼 때까지 몇 번이고 기회를 준다. 그러나 사회 현실은 이와는 너무도 다르다는 것을 명심해라. 
Your school may have done away with winners and losers, but life has not. In some schools they have abolished failing grades and they'll give you as many times as you want to get the right answer. this doesn't bear the slightest resemblance to anything in real life. abolish; 철폐하다. resemlance; 유사, 닮음. bear(have) resemlance to; **와 닮다. 

9. 인생은 학교의 학기처럼 구분이 되어있지 않고, 여름방학은 없다. 네 문제를 해결하는데 너를 도와는 고용주는 거의 없다. 네 스스로 알아서 해라.
Life is not divided into semester. You don't get summers off and very few employers are interested in helping you find yourself. Do that on your own time. 

10. TV는 현실이 아니다. 현실에서는 사람들은 커피?을 떠나 일하러 가야 한다. 
Television is not real life. In real life people actually have to leave the coffee shop and go to jobs. 

11. 공부 밖에 할 줄 모르는 바보한테 잘 보여라. 사회에 나온 다음에는 아마 그 바보 밑에서 일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Be nice to nerds. Chances are you'll end up working for one . nerd; 얼간이. 바보. 공부 벌래. 

[출처 : 이 글은 현재 고려대학교에서 "손자병법과 지도자론"을 강의 하시고 있는 "서경석 장군" (=예비역 육군중장)님이 매주 이메일로 보내주시는 강의 글 중에 한 '제목'입니다. ]

 

 

 

 

서경석, 전투감각, 샘터, 2003.

 

 

 

      

                     서경석,『전투감각(Feel for Combat)』, 샘터, 2003.

                    <학군 3#('65. 소위 임관), 주월한국군 최초의 ROTC출신 소총중대장> 

 

- 교리는 교범에서 배우고 전술전기는 훈련을 통하여 체득할 수 있지만 전투현장에 대한 감각만큼은 직접 체험해보지 않고 익히기에는

  매우 어렵다고 본다

- 전투는 초급간부에 의해서 그 승패가 좌우되며, 전투는 감각과 느낌으로 해야만 한다. 초급간부는 전략가가 아니라 싸움꾼인 전사이기

  때문이다

- 흔히들 이야기하기를 처음 소대장으로 부임하여 3개월만 총에 맞지 않고 무사히 지나면 위험한 고비는 넘긴 것이라고들 했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보면 정 반대였다. 처음에 이곳에 오면 전투와 정글 및 지형과 상황에 익숙치 못해 조심을 많이 하며, 다음날 있을 작전준비를

  위해 인접 소대장이나 소대선임하사, 고참병의 의견을 겸허한 자세로 받아들이게 된다. 차라리 이때가 제일 안전하다. 약 3개월 정도

  지나서 수색정찰, 매복 등을 몇 번 다녀오게 되면 작전회의 시간에 아는 체나 하고, 꾸중하면 말대답이나 하면서 고집을 부리고, 우쭐대

  기 시작하는데 이때가 제일 위험하며, 죽기 꼭 알맞은 시기이다

- 새로 전입온 박소위도 3개월 정도는 선배 소대장들이 하는 이야기를 잘 듣더니 그후 작은 전과를 올리고는 자만에 빠지기 시작하여...

  신중론을 펴는 선배 소대장들에게 '겁 좀 내지 말라'고 오히려 나무라기까지 했다... 첨병보다 앞장서서 산을 기어오르다가 정수리에

  직격탄을 맞고 전사했다...

- 경례하는 소리가 늘 듣던 소리가 아니고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는 것을 보니 우리 중대 식구는 아니고 대대나 상급부대에서 꽤 높은

  사람이 온 모양이라고 생각했다

- 당시 우리 소대장들은 월남땅에서 나름대로 고생을 제일 많이 했을 뿐 아니라 실제 적과 싸우면서 언제 죽거나 부상당할지 모르는 가운

  데 임무를 수행한다는 우쭐대는 마음이 있었다. 그러다보니 행정을 다르는 상급부대의 참모 방문 정도에는 누구하나 내다보지도 않는

  건방진 습성에 젖어 있었다

- 대대장님께서 직접 찾아 오셔서 내게 임무를 주시는 것도 황송한데 이렇게 덧붙이셨다..."역시 서중위가 제일 적임자라고 판단되어,

   이렇게 직접 찾아왔네"... 이때 내가 받은 신선한 충격. 부하를 사지로 보내는 지휘관의 진지한 자세, 마음속으로부터 즐겁게 복종시키는

  기술,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앞에 감격하는......

- 우물우물하면서 적인지 아군인지를 확인하려는 몇 초의 시간이 절호의 기회이다. 이 순간에 먼저 정확히 공격하는 쪽이 기선을 제압하

   게 되어 있고, 일단 기선을 제압당하면 아무리 강심장을 가진 사람이더라도 함부로 덤벼들지 못한다. 더구나 사상자가 발생하면 그 혼란

  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게 되는데...

- 우리 대대 105mm 포 사정거리 내에 들어오니 안도감이 생겼다. 좌우측의 의심나는 지역과 전방의 미심쩍은 지역에 포탄을 유도하니

  한두 발씩만, 날아와 터지는데도 그 폭음이 계곡을 진동시켰고, 대원들의 사기충전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 지휘관과 동료에 대한 신뢰가

  두터워지는 것이 눈에 역력히 보였다

- (아군)포병의 사정거리를 벗어날 때의 불안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가 다시 사정거리내로 들어왔을 때의 안도감을

  실감했다

- 싸우다가 소대원들이 적에게 전사라도 했다면, (포로를) 분풀이로 보고도 하지 않은 채 그대로 세워 놓고 쏴 죽여버리는 경우도 가끔 있

  었다. 포로를 잘 대우하느냐, 거칠게 대우하느냐 하는 것은 그날의 전투상황에 달려 있다...상급부대 지휘관이나 참모들조차 전투현장에

  서 생기는 인간의 묘한 심리현상을 자세히 알지 못한다...부하가 전우의 팔에 안겨 숨을 거둘 때, 과연 그 소대장의 심정이 어떠할 것인가

  를 당해본 사람이 아니면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 거칠어지고 야만스러워지는 자연적 현상을 누가 감히 비난할 수 있겠는가!

- (잠적) 반드시 분산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유사시 상호지원이 가능하고 적에게 기습을 가하면서 탈출할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으

  며, 잡히더라도 한꺼번에 모두 당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 적은 숨어서 괴롭히고 몰래와서 타격했지, 절대 정면으로 달려들지 않았다. 그들의 목적 자체가 전술적 차원의 승리가 아니라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선전선동과 테러, 주민동원 등이었기 때문이다

- 상급부대에서 아무리 재촉해도 일선 소대장과 병사들로서는 적을 찾는 것은 다음 문제였고, 전진해 나가는 중에 지뢰나 부비츄랩을 건

  드려 터지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부터 앞섰다. 적이 앞에서 뛰어 달아나도 총이나 쏘지, 제대로 추격조차 못했다. 적이 우리를 부비츄랩

  밭으로 가끔 유인했기 때문이었다...수색병력은 뒤지기에 기분 나쁜 곳은 슬그머니 피해 가버리는 경향이 많다

- 첫 수색정찰...소대장이 기관총으로 편제된 화기분대와 일개 소총분대를 맡았고, 선임하사가 두 개 분대를 맡아서 지휘했다...그때마다

  소대장인 나의 조로 들어오는 병사들은 소대장이 전투경험이 전혀 없다는 이유로 매우 걱정스러워하는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 전장에서 우연히 발생하는 여러가지 사건들을 조치하는 능력은 내 스스로 터득해야 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직접 체험해서 터득하기

  란 힘든 일이기도 했지만 매우 어리석은 짓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항상 전장의 제반 요소들을 배워야 했고, 소대원은 나를 가르쳐야 했

  다. 나는 배우려는 의욕에 가득차 있어도 가르쳐주어야 할 사람들이 나 때문에 안해도 될 훈련과 고생을 한다고 생각하니 참으로 곤혹스

  러웠다

- 교육때마다 소대원들은 말없이 따라오긴 했지만 속으로는 항상 불만스러워 하였고, 선임하사나 분대장급에서는 안해도 되는 훈련을

  한다는 식응로 불평이 새어나왔다

- 값비싼 댓가를 치르고 터득한 그들의 경험을 존중해 주었고 이해하면서 내 사람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 소대장이 친필로 쓴 소식은 부모님들을 안심시키기에 충분하였고, 마침내 소대원들의 마음을 끌어들이는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 시간이 지나면서 대원들과 신뢰가 쌓영지고 처음 왔을 때 어리버리한 티도 많이 벗었다

- 소대장 시절 나의 중대장님은...본인 스스로 자신에게 엄격하면서 모든 훈련이나 작전활동간 비전술적, 비전투적 행동은 그대로 묵과하

  는 법이 없어서 우리들은 적보다 중대장님의 질책이나 교육을 더 무서워했다. 중대장님께서도 적보다 자신이 무서워 보이기를 원하시는

  것 같았다

- 지금도 교육훈련군기나 야외훈련시 전장군기를 위반하는 것을 보고 그대로 간과하는 법없이 엄하게 꾸짖는 것은...그것이 바로 전장에

  서 부하를 죽이지 않고 적과 싸워서 이기는 길...

- (소총중대장으로 부임)...놀라웠던 거은 작전을 나가서 적과 접촉 한번 없이 복귀하는 것을 다행스러운 일로 생각하는 자세였다

- 문제점...미온적인 작전활동이었다... 매일 1개 소대씩 매복작전을 나가게 되어 있었는데 기지에서 멀리는 나가지 않고 단지 중대 철조망

  울타리의 가까운 거리 내에서만 형식적으로 실시하고 있었다...실제로는 나가지 않은 채 기지에서 잠을 잤던 경우도 자주 있었다

- 밤에 매복...측방에서 계속 나뭇가지 꺾이는 소리가 나는데도 소대장이 크레모아 격발을 못하도록 제지했고, 소리가 다 끝날 때까지 상

  당한 시간 동안 꼼짝도 못하게 했다는 것이다...구속과 조기귀국이라는 결정...소대원들은 물론이고 중대원 전체가 그 소대장은 있는 것

  보다는 없는 것이 중대를 위해 좋다는 일치된 의견이었으며...

- 부하는 자기 지휘관을 닮고 배운 대로 행한다... 나는 중대장님께 선두를 다른 소대로 교대시켜 달라고 건의했다. 부상자 때문에 승락해

  주실 줄 믿었다. 그러나 중대장님의 대답은 의외였다. "이 사람아, 부비츄랩은 밟아 터지라고 만든 것인데 밟아서 터졌으니 그건 당연한

  것이다. 그 정도면 다행인 줄 알아라. 잔소리 말고 앞으로 나가!" 그렇게 야속할 수가 없었으나 계속 앞으로 나갔다. 나는 그때 중대장님

  이 사람같이 보이지 않았고 마귀가 낀 귀신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전이 모두 끝난 훗날..."당시 상황으로는 어쩔 수 없었다. 다른 소대

  장들은 신참이라 경험이 없어서 앞으로 내보낼 수가 없었다.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지 몰라도 네가 앞장섰으니까 그 정도로 끝난 것이 

  아니겠나?...소대를 교대하려는 혼잡한 순간에 적의 집중사격으로 더 큰 피해를 입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너를 계속 전진시킬 수밖에 없

  었다."

- 나는 중대기지 내에서 중대원 전부가 반바지만 입고 생활하도록 했다. 나 역시 수영팬티에 맨발로 지냈으며...

- 나는 관망대에 올라가면...정문에서부터 시작하여 중대 경계근무호를 따라 야간조준경으로 근무상태를 확인했고...적의 공격을 예상한

  상황조치, 포사격, 예비대 투입훈련 등을 지겨워 할 정도로 연습시키고 확인해 왔다...내가 관망대에 올라가면 소대장, 선임하사, 및 

  분대장과 고참병들은 적이 나타난 것만큼이나 긴장을 했다

- 적은 우리에게 사격을 유도하여 마을로 실탄을 날려보내 마을 사람들을 죽이도록 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 우리가 조식 후 규칙적인 시간대에 움직인다는 사실을 적이 놓칠 리 없었다...시간대를 예측할 수 없도록 수색시간을 불규칙적으로 해야

   한다는 아주 평범한 전술상식을 지키지 않았던 것이다

- 중대기지에다 국기게양대를 높이 설치해서 대형 태극기를 게양시켜 두고 시간에 맞추어 게양식과 하기식을 하면서 애국심을 고취하고

  한국인의 자긍심을 심어주려고 노력했었다. 그 대형 태극기가 적에게 정확한 표적의 위치를 제공해준 것 같았다

- 전장에서 자해를 하면 현장에서 즉결처분을 하거나 군법회의에서 사형에 처할 만큼 엄하게 다스린다

- 전장에서 겪게 되는 고뇌와 고통의 한 부분...시체에 대한 전장정리는 주로 신병들의 차지였다. 신병의 입장에서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

  었던 피비린내 나는 현장에서 적의 시체를 한 곳으로 모으고, 갈기갈기 찢겨진 옷속에서 피범벅이 된 소지품을 수집하여 첩보의 가치가

  있는 문서와 기록물을 찾아내야만 했던 것이다. 이 때부터 이 병사는 겁에 질려 떨기 시작했다...자주 토하고...악몽에 시달렸다. 잠도

  못잤고...신경이 극도로 쇠약해져...끝내는 자기 감정을 자기가 통제할 수 없는 지경...고참병들은 신병의 그러한 행동을 꾀병으로 간주하

  고...오히려 자기집단의 수치로 생각하고 윽박지르기만 했다

- 100m 이내의 거리에 적이 들어왔을 때 무전기에 대고 음성으로 상황보고를 하기란 상당히 어렵고 또한 위험한 짓이다

- 군대가 엄격한 계급으로 구성되어 있는 조직이라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명령만 내리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

- 사람이란 참으로 이상한 동물이다. 왜냐하면 전쟁터에서 그렇게 하면 죽는 줄 뻔히 알면서도 자기가 다니던 길로 계속 다니기 때문이다

- 일일 매복을 나가든 장기매복을 나가든, 병사들은 휴대기준 이상으로 실탄과 수류탄, 크레모아를 휴대하고 나간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가 살기 위해서 그렇게들 한다

- 시간상을 10초 내지 15초면 매복전투는 끝난다... 15초 정도 지나면 총에 맞지 않은 적은 이미 매복지역을 이탈했기 때문에 사격할 필요

  가 전혀 없다

- 공포증 환자가 발생했을 때는 방법이 없다. 거칠게 다루고 무기로 위협하고, 그것도 안되면 정신이 번쩍들게 말밑에 총을 쏘는 수밖에

  없다. 대부분 이 단계에서 제정신으로 돌아온다

- 방금 전까지 선임하사의 마지막 모습을 보면서 울먹이던 병사들이 포로들을 가만 두지 않았다...포로가 생기면 반드시 책임자를 임명하

  여 감시를 철저히 해야한다. 도주의 우려보다 오히려 무자비한 보복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 세월이 지나면서 우리 중대는 새로운 고민거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전투에서 다소 거칠기는 했지만 순박하고 착하기만 했던 내 부하들

  이 타 부대 사람들에게 함부로 대들어 싸움박질을 하는 등 망나니짓을 많이 했다. 이 모두가 몸서리치는 전투에서 얻은 충격과 고뇌를

  잘 소화하지 못한 인간적인 갈등이라고 생각되어 안타까웠다

- 포로를 통한 적 은거지 타격... 어제까지의 동료들이 다 죽어버린 것을 보고 괴로워하면서도 안도의 한 숨을 쉬는 것 같았다. 내게는

  아주 귀중한 손님이었지만, 이 놈의 배신으로 자기의 동료 전우들이 전부 죽어버렸으니 천하에 이렇게 의리없는 놈이 있나 하는 생각도

  들어 구역질이 나고 그대로 쏴서 같이 죽여버릴까 하는 충동도 생겼다... 전투가 벌어지기 전에 자기 스스로 겁에 질려 손들고 나온 놈,

  얼마든지 도망갈 수도 있었고 더 버틸 수도 있었고 악착같이 싸울 수도 있었는데, 미리 전부 포기했구나 생각하니 비록 적이지만 인간적

  으로 아주 강한 배신감을 느꼈다. 그래서 그 포로에게 영어 반, 월남어 반으로 "다시 이런 일이 있을 때는 손들고 나오는 짓하지 말고 목

  숨걸고 동료와의 의리를 지키라"고 준엄하게 꾸짖었다...지금쯤 유공자 대접을 받으면서 선생노릇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때의 배신

  을 증명해줄 사람들은 모두 다 죽어버렸으니까...

- 돈자루를 꺼내 손을 휘휘 저어 달러와 월남지폐, 고액권과 저액권을 섞어서... 나누어 주었다. 돈을 세서 주면 뒷말이 생기기 때문에 그

  다음에도 돈을 노획하면 꼭 이런 식으로 현장에서 나누어 주었다

- 산거머리가 많았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징그러웠으나 이 놈이 있음으로 매복요원이 잠에 빠져들지 않았고... 중대장인 내 입장에서

  보면 잠을 쫓아주는 감시병이나 다름없었으므로 오히려 유리한 조건으로 판단하였다

- 적의 첨병을 쏘는 병사는 가장 비겁한 행동이라고 교육도 철저히 시켰다. 피아 공히 첨병은 어렵고 위험한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이므로

  비록 적이라 하더라고 그의 용감성과 희생정신을 존경해야 하며 절대 쏴서는 안된다고 단단히 교육시켰다

- 이 여자가 과연 공산주의와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알고 이 싸움에 뛰어들었을까...

- 주야매복에서 성공의 열쇠는 적의 첨병을 통과시키고 본대를 살상지대까지 유인하여 대량으로 기습사격을 함에 있다. 불필요한 사격을

  하거나 첨병을 보고 놀라서 사격하는 경우는 본대를 놓치게 되고 실탄을 쓸데없이 낭비하게 된다

- 적이 한꺼번에 몰려서 포위선을 돌파하려고 덤벼드는 것...적들은 절대로 수류탄을 던지지 못한다. 수류탄이 폭발할 때 자기들 자신이

  뛰어오다가 파편에 맞기 때문이다. 소총사격은 맨앞에 뛰어오는 적들만 쏠 수 있다. 뒤따라 뛰어오는 적들이 전방으로 사격하면 앞에

  가는 자기동료가 맞아 죽기 때문이다. 전부 공중에다 대고 총을 쏘면 소리를 지른다. 적들이 스스로 무서움을 제거하고, 우리에게는

  두려움을 주어 공포심을 불러 일으키게 하기 위해서다

- 고함을 지르면서 덤벼든다고 겁낼 필요는 없다. 적이 더 취약하며 두려워하고 있기 때문이다

- 소를 죽이면 쌀 30포대, 돼지를 죽이면 쌀 50포대...사람을 죽이면 쌀 10포 내지 20포를 주면 오히려 고맙다고 인사를 하는 판이다

- "중대장님, 이 소란한 통에 부상당해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자마자...갑자기 눈을 감고는 모래 위에 힘업이 펄럭 쓰러져버렸다...인간의

  장기가 그토록 반짝이며 은빛 찬란한지 미처 몰랐었다

- 공포와 위험에 대한 선입관을 가져서는 안된다. 상대국의 어떤 위협요소나 공포요소에 집착한 나머지 선입관이나 편견 때문에 고정관념

  을 갖게 되면 매우 위험하다. 이는 사고의 기능을 마비시켜 영원히 상대국의 위협을 극복하지 못한다

- 공포심은 전술교리를 마비시키고 작전계획을 무용지물로 만들며 전쟁지도부를 무능화시킨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 공포는 전염성이 강하고 유언비어와 함께 무질서로 발전하여, 한 번 퍼지면 수습이 안되며 공황과 명령 불복종, 자해, 대량항복, 주민

  통제의 마비로 나타난다. 단순히 기계적으로 복종하는 관습에 젖은 장병들 앞에는 공포의 무질서가 명확히 예견되고 닥쳐온다

- (전투전 증후군) 미군 초급장교 및 하사관중에 1,016명이 자기 부하가 쏜 총에 맞아 죽었다는 조사...대대장에게서 수색명령을 받은 소대

  장이 자기 대대장에게 "너나 수색 나가라"라고 항명한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이런 일련의 사건은 군기의 차원이 아니라 스트레스와

  쇼크에서 오는 정신병적 차원에서 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강력한 통제와 엄정한 군기로 해결하려는 막연한 생각은 위헙하다

- 훈련장에서 보면 대부분 적에 관한 정보를 상급부대나 통제부에서 훈련을 유도하기 위하여 제공하는 것에 숙달되어 있다. 주는 정보만

   받아서 사용하는 나쁜 타성에 젖어 있는 것이다. 상급부대에서 제공받는 정보는 전방의 부대가 사용하기에는 시기적으로 늦은 경우가

   많다

- 상급부대로부터 전달을 받는 것은 시기적으로 늦고 정확하지가 않고 전달이 누락될 가능성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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