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깎이 마라토너’, 김병일 전 예산처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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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마라토너’, 김병일 전 예산처 장관
"의사는 절대 뛰지 말라 했지만…"
▲ 김병일 전 장관이 성남 탄천종합운동장에서 마라톤 연습을 하고 있다. 정경열기자 krchung@chosun.com
의사들은 나이 사십이 넘으면 격한 운동을 시작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특히 마라톤은 대표적인 ‘금기 운동’이다. 일종의 소모품인 무릎 관절을 다치기 쉬운데다, 유해산소가 많이 나와 노화가 촉진되고, 몸 속에 병이 숨어있다면 심장마비 등 돌연사 위험도 높기 때문이다.
김병일(62) 전 기획예산처 장관은 이런 상식을 깼다. 그가 마라톤을 시작한 것은 만 55세 되던 2000년. 늦어도 한참 늦은 시작이었다. 김씨는 그러나 “마라톤으로 10년 전보다 훨씬 건강해졌다. 겨울이면 달고 살던 감기가 뚝 끊겼고, 친구들이 ‘올챙이배’라고 놀리던 뱃살도 쏙 들어갔다. 체중은 58㎏에서 3㎏이 빠진 55㎏을 유지하고 있다. 120/80㎜Hg대였던 혈압은 110/70㎜Hg로 떨어졌고, 맥박수도 80에서 70이하로 좋아졌다”고 말했다.
다른 운동도 많은데 왜 하필이면 그 나이에 마라톤을 시작했을까? 김씨는 “그냥 달리고 싶었다. 아직도 충분히 젊다는 확신을 스스로에게 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처음엔 ‘당연히’ 시행착오를 겪었다. 의욕만 앞서 혼자 달리다 무릎에 탈이 생겨 세 달 동안 쉬어야 했다. 병원에선 “관절염도 생겼고 나이도 있으니 달리지 말고 다른 운동을 하라”고 권고했지만 김씨는 나이든 사람도 부상 없이 달리는 방법이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했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달리기를 지도해 줄 선생을 찾아 나서 이듬해 6월, 김복주 한국체육대 교수를 예산처 마라톤 동호회의 달리기 ‘사부(師父)’로 모셨다. 국민체육진흥공단 국민체력센터에서 마라톤을 해도 괜찮은 몸 상태인지 알아보는 메디컬 테스트도 받았다.
무리하지 않고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워나갔다. 달리기 시작 전 첫 3주간은 걷기, 빨리 걷기, 천천히 달리기만 했다. 동시에 스트레칭법과 무릎에 무리를 주지 않는 주법(走法)도 익혔다. “달리기도 근육운동”이라는 사부의 말에 따라 무산소운동도 시작했다. 1주일에 2~3일은 헬스클럽에서 30~40분씩 상체, 하체, 허리근육 강화 훈련을 했다. 집에서도 틈나는 대로 윗몸 일으키기와 팔굽혀 펴기를 했다.
요령을 배운 김씨는 거침없이 달렸다. 2001년10월 조선일보 춘천마라톤에 출전, 10㎞ 코스를 완주했고, 그로부터 보름 뒤 하프코스를 뛰었다. 이후 5년간 풀코스를 9번 완주했고, 작년 10월엔 63.3㎞를 뛰는 생애 첫 울트라마라톤에도 성공했다.
마라톤을 시작하려는 40대 이상 장년층에게 김씨는 첫째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달리기 요령을 배울 수 있는 마라톤 동호회에 가입할 것, 둘째 심장박동수 등을 체크해가며 천천히 달릴 것, 셋째 부상 방지를 위해 철저히 사전·사후 스트레칭을 할 것을 강조한다. 이것만 지킨다면 마라톤을 시작하기에 늙은 나이는 없다는 게 김씨의 생각이다. 실제로 3년 전 그는 ‘늙은 친구’들을 규합해 마라톤 동호회를 만들었고, 요즘 그들은 모두 마라톤 매니아가 됐다.
김씨는 “100m달리기에 쓰이는 적(赤)근육과 달리, 지구력에 쓰이는 백(白)근육은 나이가 든 뒤에도 꾸준히 키워나갈 수 있다. 마라톤이 격한 운동이란 생각은 풀 코스를 3시간 이내에 뛰려는 사람에게만 해당된다. 천천히 자기 페이스를 유지하면서 뛴다면 80대에도 충분히 완주할 수 있다”고 말했다.
/ 최현묵기자 seanch@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