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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685회 작성일 2006-10-21 00:00
[한국의 宗家|必敬齋] - 신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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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宗家|必敬齋]

전통 궁중음식점으로 거듭난 세종대왕 후손의 명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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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재(必敬齋)는 조선조 제9대 성종 때(15세기) 건립된, 500년 역사를 간직한 전통가옥이다. 1987년 전통건조물 제1호로 지정된 필경재엔 ‘반드시(必) 웃어른을 공경(敬)하는 자세를 지니고 살라’는 뜻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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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재는 세종대왕의 다섯째아들인 광평대군(廣平大君)의 증손 정안부정공 이천수(定案副正公 李千壽)가 건립해 지금까지 19대째 그 종손들이 살아오고 있다. 집 뒤로는 13만평 부지에 700여기를 모신 묘지가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다. 조선시대 상류층의 장례법을 구경할 수 있는 ‘묘지 박물관’인 셈이다.

필경재는 북한산성을 축조한 숙종 때의 영의정 혜정공 이유(惠定公 李濡), 효종 때 우의정을 지낸 충정공 이후원(忠貞公 李厚源), 헌종 때 우의정을 지낸 희곡 이지연(希谷 李止淵) 등 3정승을 배출했다. 순종 때 장원급제해 도승지를 지낸 후천 이윤종(後川 李胤鍾)을 비롯 15명의 종손이 모두 과거급제했다. 특히 지금의 서울시장 격인 한성판윤을 20명이나 배출했다는 것이 이 집안의 자랑이다.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철기 이범석(鐵驥 李範奭) 장군, 고종 때 네덜란드 헤이그 특사였던 이준·이상설 열사와 함께 망국의 한을 품고 장렬하게 산화한 이위종(李瑋鐘) 열사도 직계후손이다. 필경재는 일제치하에서 우리 젊은이들에게 민족혼을 심어주기 위하여 설립된 중앙고등학교(中央高等學校)의 광주분교(廣州分校)로도 사용됐다.

이 집안이 배출한 인물들 중 명문가 정신을 대표하는 이는 바로 광평대군의 10대손인 녹천(鹿川) 이유(李濡, 1645∼1721). 그는 숙종 때 한성판윤을 거쳐 영의정을 지냈는데, 대표적인 업적은 서울을 방어하는 북한산성 축조다. 지하철 1호선 ‘녹천역’은 이유의 호를 따서 지은 역명이다. 그는 북한산성 축조 당시 이곳에 살다시피 하면서 공사를 독려했다. 녹천의 가족과 친인척, 노비들도 인부들의 밥을 해주고 생필품을 대느라 이곳을 자주 드나들었다. ‘녹천골’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그 때문이다.
녹천의 11대 종손인 이병무(61)씨에 따르면 북한산성 축조에 들어간 이 집안의 사재가 대략 쌀 300섬 규모라고 한다. 녹천이 사재를 털어가면서까지 북한산성 축조를 고집한 배경에는 왕가로서의 긍지와 사명감, 도덕적 책무가 상당부분 작용했다고 여겨진다.
서울 강남구 수서동에 자리잡은 필경재. 개발의 바람은 필경재 또한 비켜가지 않았다. 고층 아파트로 둘러싸인 필경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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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3년 인조반정을 모의했던 사랑채. 서인들이 광해군을 축출하고 능양군을 옹립하기 위한 거사를 논의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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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宗家|必敬齋]

전통 궁중음식점으로 거듭난 세종대왕 후손의 명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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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 뒤편 나즈막한 동산에는 광평대군의 묘소를 비롯하여 종문 700여기의 묘소가 모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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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대로 물려 내려온 각종 유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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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재는 이병무씨의 결단으로 1999년 7월 전통 궁중음식 전문점으로 새로 태어났다. 이씨는 “우리의 고유한 맛과 전통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 싶다”고 했다. 그는 상류층 한옥에서 풍기는 은은한 품격과 전통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일이 곧 국가에 봉사하는 것이자 조상에 충성하는 것이라 여긴다.

이씨의 어머니로부터 궁중요리 비법을 전수받은 그의 누님과 아내, 그리고 30년간 궁중요리를 만들어온 한승구 주방장이 전통 궁중요리의 맛을 지켜나가고 있다.

이씨는 손수 야시장에 나가 장을 보면서 세 가지 원칙을 지킨다. 물건값을 깎지 않는다, 잔돈을 받지 않는다, 신뢰를 잃으면 거래를 중단한다는 게 바로 그것. 그는 또 “음식 장사를 하면서 퍼줘서 망한 집은 없고 퍼주지 않아 망한 집은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그의 경영철학은 얼른 MBA의 비즈니스 룰을 어기는 듯싶지만, 마음의 비즈니스만이 성공의 기반이 된다는 것을 새삼 일깨우는 듯싶다.

명문가란 어떠한 일을 하든지, 무슨 위치에 있든지 나라 사랑과 민족의 긍지를 지킨다는 일념으로 살아가는 가문을 의미한다. 지금의 필경재 또한 변함없는 명문가가 아닐까.
기왓장 하나하나에도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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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손 이병무씨와 종부 김명순씨. 이 부부는 종가를 지키는 일이 머슴살이만큼이나 힘들고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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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
body_icon6.gif 글: 박재광 parkjaekwang@yahoo.co.kr
body_icon6.gif 사진: 정경택 기자
body_icon6.gif 발행일: 2004 년 01 월 01 일 (통권 532 호)
body_icon6.gif 쪽수: 49 ~ 53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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