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의 산실…작지만 큰 ‘소안도’ , <font color=blue>송내호(6회)</font> - 동아닷컴 > 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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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514회 작성일 2005-11-08 00:00
독립운동의 산실…작지만 큰 ‘소안도’ , <font color=blue>송내호(6회)</font> - 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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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의 산실…작지만 큰 ‘소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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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완도군 소안도 가학리에 세워진 ‘소안항 일운동 기 념 탑 ’ . 하얀 돌은 백의민족인 우리 겨레를 나타낸 것이며 하늘로 뾰족하게 솟은 부분은 우리 민족이 일제 탄압으로부터 독립하기위한 끊임없는 항쟁의 뜻을 담고 있다. 기념탑 왼쪽에 1927년 일제에 의해 강제폐쇄됐던 사립소안학교가 복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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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명소안민불안 산명가학학불래(島名所安民不安 山名駕鶴鶴不來·섬 이름은 편안한 곳이지만 백성은 편안치 않고, 산 이름은 학이 모이는 곳이지만 학은 오지 않네).’

전남 완도군 소안도에서 일제강점기 애국지사들이 망국의 한을 달래며 읊조렸다는 시구다.

‘항일의 땅, 광복의 섬’ 소안도는 완도에서 남쪽으로 20.8km 떨어져 있다. 뱃길로는 1시간 거리.

소안도는 일제강점 35년 동안 섬 주민들이 투옥된 기간을 합산하면 무려 300년 가까이 될 정도로 항일의식이 높았던 섬이다.

인구가 3800여 명에 불과하지만 소안도는 지금까지 20명의 건국훈장 서훈자를 배출해 전국에서 면(面) 단위 가운데 가장 많은 독립유공자가 나왔다.

 
소안항일운동기념사업회 김원택 사무국장이 소안항일운동기념관 내 전시실에서 독립유공자로 서훈 받은 20명의 부조를 가리키고 있다. 소안도=정승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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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27명의 국가유공자를 배출한 의성 김씨 내앞(川前) 문중과 견줄 만하다. 독립유공자 후손인 김남천(金南千·82) 옹은 “내앞 문중은 경상도 안동을 근거지로 한 양반가문이라면 소안면 사람들은 전라도 작은 섬에 기반을 둔 평민이었다는 점에서 항일운동사에 큰 족적을 남겼다”고 말했다.

소안도는 목포에서 제주로 가는 길목에 있어 섬사람들이 일찍 외부 세계에 눈을 떴다. 1900년대에 서당과 야학을 세우고 신교육을 시작해 문맹자가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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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일의 시발은 토지 반환 소송이었다. 일제의 토지소유권 정리 과정에서 1909년 궁방전(宮房田·왕실의 일부인 궁실과 왕실에서 분가 독립한 궁가에 준 땅)이었던 소안면 전체 토지의 소유권이 조선 왕실의 친척에게 넘어가자 법원에 소송을 냈다. 13년 동안의 법정 투쟁 끝에 승소 판결을 받아 낸 주민들은 이를 기념하기 위해 1만400원(현 화폐가치로 1억 원 상당)을 거둬 강습소 수준인 중화학원을 정식학교인 사립소안학교로 승격시켰다.

소안학교는 전국의 우국지사들이 교사를 자임하는 등 항일운동의 산실로 이름 높았다. 대표적 인사가 동아일보 지방부장을 지낸 이시완(李時琓) 선생이다. 이 선생은 지도상에도 잘 보이지 않는 소안도에서 크고 작은 항일 관련 기사가 올라오자 소안학교로 내려가 학생들을 가르쳤다.

소안항일운동기념사업회 김원택(金元澤·58) 사무국장은 “일제는 소안학교가 일장기를 달지 않는 등 반일에 앞장서자 1927년 강제로 폐쇄했다”며 “이 선생이 학교 폐쇄에 통분하며 지었던 ‘이별가’는 지금도 주민 사이에 널리 불리고 있다”고 말했다.

소안도를 ‘항일 성지’로 만든 인물은 비자리 출신 송내호(宋乃浩·1895∼1928) 선생. 1913년 서울 중앙학교를 졸업한 선생은 19세에 귀향해 중화학원에서 교편을 잡았다. 3·1운동 때 완도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고 비밀결사조직인 ‘일심단’을 만들어 중국 광둥(廣東) 황포군관학교에 조직원을 파견하기도 했다.

송 선생과 함께 활동했던 소안면 출신 독립운동가는 모두 88명이다. 기념사업이 본격화된 것은 1990년. 면민과 출향인사 등이 십시일반으로 돈을 거둬 섬에 항일운동기념탑을 세우고 사료집을 발간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때 처음으로 송 선생 등 14명이 독립유공자로 서훈됐다.

면민들은 올해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들이 대거 국가유공자로 추서되자 잃어버린 반쪽의 독립운동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로 3월 서훈을 받은 정창남(鄭昌南·1900∼?) 선생의 손자 종래(鐘萊·53) 씨는 “광복 후 노선이 갈리긴 했지만 일제강점기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온몸을 바쳤다는 점에서 소안 사람들은 모두 하나였다”고 말했다.

소안도=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 소안항일기념사업회 김장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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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안면민 모두가 독립운동가의 후예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광복 60주년을 맞은 소안항일운동기념사업회 김장수(金長洙·55·사진) 회장의 감회는 남다르다.

3년 전부터 국가보훈처와 전남 완도군이 30억 원을 들여 벌여 온 ‘항일운동 성지복원 공원화 사업’이 올해 완료됐기 때문이다.

“장구 모양으로 생긴 섬의 잘록한 곳(소안면 가학리)에 광복 60년 만에 항일운동기념관과 기념탑을 건립하고 옛 사립소안학교 교사를 복원해 6월 준공식을 가졌습니다.”

1927년 5월 17일자 동아일보 기사. 전남 완도군 소안도 사립소안학교가 일본 경찰에 강제 폐쇄됐다는 내용의 기사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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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념관은 소안도의 항일운동사를 보여 주는 시청각실과 전시실로 꾸며졌다. 전시실에는 소안도가 배출한 독립운동가 88명의 사진과 공적 내용, 독립유공자로 서훈된 20명의 얼굴이 부조로 만들어져 있다. 78년 만에 복원된 소안학교는 면민들의 토론회나 강연회 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김 회장은 “때늦은 감이 있지만 소안의 항일운동사가 역사적인 평가를 받았다는 점에서 다행”이라면서 “선열들의 애국 애족 정신을 기리기 위해 지난해부터 소안학교 개교일인 5월 16일 섬에서 항일문화축제를 열고 있다”고 말했다.

소안도=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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