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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857회 작성일 2007-12-17 09:26
[중앙일보] 성탄절 앞둔 정진석(41회) 추기경 월요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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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 성탄절 앞둔 정진석 추기경 [중앙일보]
 
“먼저 존중하고, 먼저 이해하고, 먼저 사랑합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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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란 뭔가”라는 물음에 정진석 추기경은 “기도는 하느님과의 대화다. 그런데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하는 게 아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간구하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한 기도다”고 답했다. [사진=김형수 기자]
만난 사람 = 백성호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지난달 21일 로마 교황청을 방문한 뒤 이달 6일에 돌아왔다. 바쁜 일정 때문에 13일에야 열린 귀국 후 첫 인터뷰 자리에서 교황과 무슨 말씀을 주고받았는지 물었다. 정 추기경은 “추기경들 모임에선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하루 종일 뵈었고, 한국 주교단 방문 자리에서도 한국 사회를 향한 말씀을 들었습니다”고 했다. 13일 ‘우리 사회의 어른’인 정 추기경을 만나 신과 인간, 그리고 행복을 물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와 어떤 말씀을 나누셨나요.

“교황님은 ‘한국 사회도 세계 여러 나라와 마찬가지로 어려움이 있다’고 지적한 뒤 ‘물질주의’로 인해 가정과 생명이 위협받는 것에 대해 걱정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이의 극복에 기여하기를 바란다고 하셨어요.”

-생명이 위협받는다니요.

“인간의 생명은 수태부터 자연적 사망 때까지 존중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낙태 등 잉태된 태아가 생존의 위협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국도 이런 문제가 심각한 나라에 속해요. 그걸 우려하신 겁니다.”

-교황의 한국 방문 계획은 없나요.

“안 그래도 주교회의 의장(장익 주교)이 교황께 ‘요한 바오로 2세께선 두 번이나 한국을 방문했습니다. 혹시 한국에 오실 의향은 없으신가요’하고 물었습니다. 응답은 없으셨습니다. 교황님이 움직이려면 한 나라만 가시진 않습니다. 통상 여러 나라를 경유하십니다. 그런 계획이 잡혀야 한국 방문도 가능하지 싶네요.”

-곧 성탄절, 즉 ‘예수님 오신 날’입니다. ‘오심’의 의미는 뭔가요.

“하느님께서 인류를 만드실 땐 행 복하게끔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주위를 보세요. 행복하지 않은 사람이 많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하느님과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갓난아이는 자신을 낳아 준 엄마와 함께 있을 때 행복합니다. 인간을 낳아 준 존재가 하느님입니다. 그래서 갓난아이와 엄마를 이어주기 위해 예수님이 오신 겁니다.”

-왜 예수님인가요.

“하느님은 창조주고, 사람은 피조물입니다. 전혀 다른 존재입니다. 그런데 양쪽에 연관이 있는 분이라야 중재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구세주란 하느님이면서, 동시에 사람이란 뜻입니다. 이게 얼마나 기가 막힌 뜻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중재자가 될 수 없습니다.”

-왜 인간은 하느님에게서 멀어졌나요.

“탐욕 때문입니다. 탐욕이 인간을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하고, 또 하느님이 안 보이게도 만듭니다. 하느님은 아니 계신 데 없이, 어디에나 계신 분입니다. 그러니 하느님은 인간에게서 멀어질 수가 없습니다. 다만 인간이 멀어질 뿐입니다.”

-다시 가까워지려면.

htm_2007121706332110001010-002.JPG “하느님의 울타리 안, 바로 ‘양심’에 머물면 됩니다. 그런데 인간은 욕심 때문에 그 울타리를 벗어나려고 합니다. 양심을 벗어나는 것, 그게 ‘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울타리 안에 머무는 방법을 일러주셨습니다. 바로 ‘서로 사랑하라’입니다.”

-어떤 ‘사랑’인가요.

“남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진짜 사랑이 뭡니까. 그건 내가 상대방과 같아지는 사랑입니다. 하느님은 사람을 하나만 만들지 않으셨습니다. 여럿을 만드셨습니다. 그러니 하느님이 만들어주신 상대방, 그 속에 하느님이 계신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바로 그들 속의 하느님을 사랑하는 겁니다.”

-이웃이 내 몸이 되는 게 쉽진 않습니다. 실생활에선 어떻게 노력하면 되나요.

“사람은 혼자 살 수 없습니다. 여럿이 함께 삽니다. 함께 살려면 존중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내가 먼저 존중받길 바라지 말고 남을 먼저 존중합시다. 내가 먼저 이해받길 바라지 말고 남을 먼저 이해합시다. 사랑받기보다 사랑하고, 봉사받기보다 봉사합시다. 그럼 됩니다.”

-사람들은 기도를 합니다. 기도란 뭔가요.

“하느님과의 대화입니다. 우리를 이 세상에 존재하게 해주고, 그 존재를 지속시켜 주시는 하느님과 대화하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복을 빌고, 어떤 사람은 회개를 합니다. 참다운 기도는 뭔가요.

“사람들은 기도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간구합니다. 그게 이루어지면 ‘하느님이 계신다’,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느님이 안 계신다’며 절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하는 게 아닙니다.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을 구하는 겁니다. ‘지금 하느님께서 뭘 원하시나’ 그걸 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느님도 기도를 들어 주십니다.”

-추기경께선 평소 “하루를 잘 보내라”는 얘길 자주 하시는데, 무슨 뜻인가요.

htm_2007121706332110001010-003.JPG “저는 아침에 눈이 떠지면 참으로 감사합니다. ‘하느님, 오늘 하루를 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말합니다. 제 삶은 덤으로 사는 삶입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렇게 생각하고 삽니다. 그러니 한순간도 그냥 낭비할 수가 없습니다.”

-이유가 있나요.

“한국전쟁 때 저는 군인이었습니다. 우리 부대가 얼어붙은 남한강을 걸어서 건널 때였어요. 제 바로 뒤에서 갑자기 얼음이 깨졌습니다. 그리고 부대원들이 아우성치며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바로 코앞에서 그걸 봤어요. 그게 저일 수도 있었지요. 또 바로 곁에서 지뢰를 밟고 죽는 전우도 있었습니다. 매일매일이 제 마지막 날이었습니다. 그때 절감했습니다. ‘내 생명은 나의 것이 아니구나’.”

-그때도 기도를 했나요.

“전쟁 기간에 항상 기도했습니다. ‘내 삶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게 해달라’고. 그게 제게 가장 절실한 기도였습니다.”

젊었을 적에 정 추기경의 꿈은 ‘발명가’였다. 그래서 서울대 공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대학 시절, 한국전쟁이 터졌다. 그는 국민방위군에 소집됐다. 그리고 전쟁에서 숱한 죽음을 겪으며 그는 ‘발명가의 길’에 회의를 느꼈다. 전쟁 무기가 모두 발명품이었기 때문이다.

-‘발명가’를 꿈꾸던 젊은이가 왜 사제의 길을 택했나요.

“전쟁 후의 삶은 덤으로 사는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덤으로 사는 인생에 가장 보람된 일은 뭔가. 그건 남을 위해 사는 삶이었습니다. 그래서 신학교에 갔습니다. 돌아보면 제 욕심도 차렸습니다. 그러나 남을 위해 살려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며 살았습니다.”

정 추기경의 세례명은 ‘니콜라오’다. 성인 니콜라오는 AD 300년께 작은 도시의 주교로 있을 때 세 처녀를 구한 이야기로 유명하다. 몰락한 집안의 아버지가 돈을 받고 세 딸을 매춘부로 팔려 한다는 사실을 알고, 몰래 금이 든 주머니를 던져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성 니콜라오는 ‘선물 주는 이’로 통한다. 후에 네덜란드 신교도들은 그를 ‘신터 클라스(Sinter Klass)’라 불렀고, 미국으로 건너가선 ‘산타 클로스(Santa Claus)’가 됐다. 그가 입었던 성직자의 붉은 복장에서 산타클로스의 빨간 옷이 유래했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정 추기경은 “제 모토는 ‘옴니버스 옴니아(Omnibus Omnia)’입니다.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 주겠다는 뜻”이라며, 그 의미를 ‘버스’에 빗댔다.

“우리가 타는 버스(Bus)에 옴니버스의 의미가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승용차는 처음에는 개인용이었습니다. 부자들만 탔어요. 그런데 모든 사람이 탈 수 있게끔 만든 게 버스입니다. 그처럼 모두와 함께 나누는 게 ‘옴니버스 옴니아’입니다.”

‘차기 대통령이 해야 할 가장 시급한 일이 뭔가’하고 물었다. 정 추기경은 불쑥 ‘민심은 천심’이란 말을 꺼냈다. “대통령은 모든 국민이 원하는 걸 해야 한다. 자기 혼자 생각으로 옳다고 생각하는 걸 하면 안 된다. 진정한 지도자는 국민 전체가 원하는 걸 도출해 낼 수 있어야 하고, 또 그걸 이뤄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민심은 천심’이란 말이 있는 거다.”

 내년을 향한 소망을 한마디 묻자 “모든 국민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마음도 편하고, 실업자도 없고, 가정도 편안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게 태평성대 아닌가요?”라고 했더니 정 추기경은 “행복은 사실 간단하다”며 잔잔하게 웃었다.


진석 추기경은

1931년 서울 수표동에서 태어났다. 친가와 외가 모두 4대째 독실한 천주교 집안이다. 명동성당 바로 곁의 계성초등학교를 나왔다. 소년 시절에 복사(服事·신부 옆에서 미사 진행을 돕는 사람)도 했다. 중앙고를 나와 ‘발명가’의 꿈을 안고 서울대 공대 화학공학과에 입학했다. 그런데 대학 시절 한국전쟁이 터졌다. 전쟁 후 가톨릭대 신학대에 입학했다. 30세에 사제가 됐으며, 39세 되던 해(70년)에는 국내 최연소 주교가 됐다. 이탈리아 로마의 우르바노대 대학원(교회법 석사)을 나왔으며, 청주교구 교구장과 주교회의 의장 등을 거쳤다. 69년에 서임된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지난해 3월 한국인으로선 두 번째 추기경으로 서임됐다. 김수환 추기경이 70~80년대 군사 정권을 거치며 사회를 향해 적극적인 발언을 던졌던 반면 정진석 추기경은 평소 정치·사회적 현안에 대해선 언급을 자제하는 편이다. 대신 ‘생명’이나 ‘가정’ 등의 문제에선 깊은 관심과 단호한 입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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