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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907회 작성일 2007-08-13 09:48
노컷뉴스 기사-CBS 손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홍수환(60회) 교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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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환 "진정한 챔피언은 링 아닌 인생의 챔피언"

<손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전 세계 권투챔피언 홍수환

[ 2007-08-06 17:36: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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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아홉의 나이에 권투선수로 첫 발을 내디뎠습니다. 스물네 살 때 밴텀급 세계 챔피언에 올랐습니다. 3년 뒤, 스물일곱에 주니어 페더급 세계 타이틀을 석권하였습니다.

50전 가운데 41승 14KO…! 데뷔해서 은퇴하기까지, 채 1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그가 일궈낸 기록입니다. 꽤 괜찮은 성적이죠!

그렇다고 항상 승승장구 했던 건 아닙니다. 혈기왕성하던 젊은 날에는 예기치 못한 실패에 거리를 방황하기도 했고, 다시는 링에 오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던 적도 있습니다.

섣부른 오기를 부리다 낭패를 본 적도 있습니다. 맞고 쓰러지고 때리고 환호하던 순간들!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는 오뚝이처럼 4전 5기의 신화를 일궈낸 사람!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로 승리를 쟁취한 후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외침으로 온 국민을 감동으로 몰아넣은 사람!

하지만 아픈 인생사를 겪으면서 “진정한 챔피언은 인생의 챔피언이지 링 4각의 챔피언은 아무 것도 아니더라"고 이야기하는 사람! 홍수환 씨를 8월 6일 CBS 손 숙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표준FM 98.1Mhz 월~토 오후 4시 5분)에서 만나보았습니다.

◇ ‘홍수환 신화’ 지도자로 다시 인생을 열다

▶ 가발은 언제부터 쓰셨어요?(웃음)
 
한 1년 됐죠. 우리 막내 동생이 가수 홍수철인데 지금은 목사님이죠. 용돈도 궁하던 차에 기도로 하면 꼭 이루어진다고 해서 기도를 했더니 하일성씨가 갑자기 모자 하나 쓰자고 하더라고요. 가발을 썼더니 어울리고 좋습니다.

▶ 근황을 소개해 주세요.

요즘 체육관을 관리하고 있고 많은 연습생이 찾아와서 연습하는 걸 보면 흐뭇해요. 또 전국 각 기업체, 시청, 군청 등을 돌아다니면서 도전정신이나 프로정신에 대해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4전 5기로 이겼다는 것이 정말 제 힘이 아니지만, 4번 쓰러졌다가 일어난 것 때문에 많은 분들이 기억해 주시는 것 같아요.

▶ 요즘은 권투가 옛날만 못 한 것 같아요. 스타가 없어서일까요?

제 꿈이 홍수환보다 더 멋쟁이가 나와야 하는데 그걸 향해서 열심히 키우고 있습니다. 후배가 몇 명 되는데 그 중의 하나를 소개하자면 세계 타이틀 매치에 가장 가까이 있는 선수가 김정범 선수라고 33승 29KO로 적지에 강합니다. 28살이고 장래성이 아주 많아요.그리고 권투가 예전만 못한 건 스타가 없어서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그 당시 우리가 갖고 있던 스포츠 종류가 복싱과 레슬링밖에 없었으니까, 복싱하면 온 국민이 다 같이 봤던 시절이잖아요. 버스도 잘 안다니고 TV도 잘 없던 시절이에요.

▶ 요즘도 운동을 자주 하세요?

저는 지도를 많이 하죠. 주로 백을 많이 잡아주는데 복싱의 백을 치면 다이어트에 굉장히 좋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백치는 연습을 많이 해요. 다른 운동은 취미가 없어요. 좀 시시하거든요.

▶ 피아니스트 손처럼 가늘고 긴데 이 손으로 어떻게 14KO승을 하실 수 있었어요?

이 손을 보고 두 여자가 놀랐습니다. 첫째 여자는 어머니가 그랬죠.(웃음) 너는 권투할 손이 아니다, 공부할 손이라고 하셨어요. 다른 한 여자는 고 육영수 여사인데 제 손을 1회전은 만지셨어요. 이 손으로 세계챔피언이 되었다고요. 영광이죠. 거기다가 200만원을 하사금으로 주셨는데 지금으로 따지면 후암동에 있는 집 2채 값이에요. 그때 신사동 사거리가 평당 400~500원 하던 때니까요.

▶ 그 돈으로 뭘 하셨어요?

100만원은 권투위원회에 기증했고 나머지는 좀 비싼 집 전세를 드는데 썼어요. 집을 안 산 이유는 저희가 평택에 살고 있었던 때라 일단 제대하고 시골로 가자는 분위기였거든요. 또 돈에 대한 권리는 우리 어머니가 꽉 쥐고 있었으니까요.

◇ 움직이는데 지겠냐? 되레 욕만 먹어

▶ 홍수환 선수의 어머니는 전 국민의 어머니셨잖아요.

그때 우리 어머니는 정말로 인기 좋았어요. 1974년 남아공에 가서 아놀드 테일러라는 선수와 시합을 벌였죠. 그때 그 선수가 새로운 세계챔피언이 돼서 세계 랭커 가운데 가장 약한 선수를 부른 게 바로 홍수환이었거든요. 알지도 못하는 코리아라는 나라에 세계 랭킹 2위에 올라있으니까 홍수환 선수를 데려다가 1차 방어전은 쉽게 끝내야 할 것 아니냐고 해서 저희를 불렀죠.

▶ 1974년에 남아공에 가기가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쉽지 않았죠. 사실 그때 박정희 대통령이 복싱을 좋아했던 게 컸죠. 군대생활하면서 외국에 나가기는 더욱이 어려웠을 때인데 74년도에 제가 일등병이었어요. 일단 허락을 받고 남아공화국 더어반까지 가는데 서울, 동경, 홍콩, 스리랑카, 세일추일스, 요하네스버그, 더어반까지...비행기가 없어서 6번을 갈아타고 갔어요. 30시간 정도를 간 것 같아요.일단 우리하고 남아공하고 비자 컨택이 안되어 있어서 일본 가서 비자 받아서 홍콩, 스리랑카, 세일추일스, 요하네스버그, 더어반까지 갔으니까요. 돌아가신 김준호 선생님과 저 둘이 떠난 여행이었어요. 여러분들이 좋아하시는 4전 5기는 77년도인 27살 때 군대 제대하고 나서의 일입니다.

▶ 상대 선수에 대한 정보는 있었어요?

전혀 없었습니다. 비디오도 없던 시절이라 그냥 배짱으로 간 거예요. 열심히 내 자신에게 도전하고 붙은 거예요. 당일에 보니까 나보다 키도 크고 팔도 길고, 라운드 판 안 보고 땡 하면 나가서 때리고 땡 하면 와서 쉬고 그랬어요.

▶ 더어반 호텔에 누가 찾아왔었다면서요?

이기려니까, 또 하늘이 도와주려니까 그때 아놀드 테일러의 내부 사정이 어땠냐 하면, 로미오 아나야 선수를 이기고 나서 논타이틀 매치를 했는데 트레일러하고 이 선수하고 알력이 생겨서 트레이너를 바꿨어요. 그런데 예전 트레이너가 제 방에 와서 이기게 해 주겠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중앙고등학교에서 영어를 잘했다는 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었는지 몰라요. 영어를 모르면 그 사람은 그냥 갔을 거 아니에요. 들어와서 앉힌 다음에 계속 영어로 이야기했죠. 아놀드 테일러가 세계챔피언이 되고 나서 트레일러를 바꾸었기 때문에 솔직히 이야기를 해 주는데 세계챔피언이 되고 나서 논타이틀 매치를 한 번 가졌는데 졌다, 그러니까 네가 계속 움직이면서 인사이드로 파고 들어가면 이길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알았다고 100불을 줬어요. 이기면 더 주겠다고 하고 보낸 겁니다.그래서 김준호 선생님에게 가서 이 시합, 이긴 거나 다름없다고, 정보를 얻었다고 했더니 무슨 정보냐고 해요. “움직이면 안 맞는대요. 계속 파고 들어가면 이긴대요.” “그럼 임마, 움직이는데 이기지, 지겠냐? 움직이는데 왜 맞냐?” 선생님이 화를 내시더라고요.

너랑 나랑 선생님과 제자 관계인데 다른 선수하고 시합할 때 아무리 네가 기분 나쁘게 그랬어도 네 약점을 이야기하겠느냐, 저쪽에 술수가 있을 수 있다, 속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욕만 먹었어요. 자식이 가르쳐준 선생님한테 100불은 안 주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한테 100불을 주느냐고요. 그때 100불은 컸죠.

▶ 아놀드 테일러 선수가 남아공의 스타였다면서요?

그럼요. 23년 만에 밴텀급의 세계챔피언을 차지했으니까 아놀드의 인기가 대단했었어요. 서로 다운을 주고받다가 역전으로 이겼기 때문에 인기가 대단했죠.

◇ 수화기로 들려온 어머니의 목소리 “엄마, 챔피언 먹었어”

▶ 링 위에 올라가니까 분위기가 어땠어요?

남아공이 인종차별의 국가였기 때문에 만델라 대통령이 감옥에 있던 상태였잖아요. 제가 하나 느낀 점은 우리의 응원이 전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나라의 원양 어선선원 분들이 20명 정도 와서 태극기를 흔들었고 그 이외에는 흑백 차별국가니까 이번에는 희지도 검지도 않은 황인종이 올라와서 꼭 백인을 이겨줬으면 하는 박수가 흑인들로부터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선생님 말씀을 잘 들었죠. “수환아, 1회에 기를 꺾어야 한다. 시치미 뚝 떼고 1회에 죽여라.” “알았습니다.” 시치미 떼고 있다가 그냥 1회에 때렸는데 선수가 다운당한 거예요. 제가 1회, 5회, 14회, 15회 총 4번을 다운시키고 세계챔피언이 되었어요.저는 이 방송을 통해서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드리는 게 권투가 제 팔자 같아요. 4번을 다운시키고 세계챔피언이 되었고 두 번째는 4번을 다운당하고 세계챔피언이 되었으니까요.

▶ 그때 한 번도 다운을 안 당하셨나요?

맨 처음 딸 때는 한 번도 다운 안당하고 귀만 찢어졌어요. 피가 나서 시합을 중지시키기 직전까지 갔는데 제가 팔을 휘두르고 알리 스텝으로 때렸기 때문에 그때 관중들의 분위기상 정지시킬 수가 없었어요. 피가 뜨근뜨근 흘러내리는 건 알겠는데 그걸 신경 쓸 시간이 없죠. 제가 마음이 참 약해요. 내 상대라도 자꾸 쓰러지면 마음이 약해져요. 저를 끝까지 이기려고 하면 끝까지 가는데 약한 면을 보여주면 참 약해져요.

▶ 그때 생중계를 한 거죠?

난리가 났었죠. 생중계인데 조금 딜레이 방송을 했어요. 왜냐하면 그곳은 새벽 3시니까 그때 들을 수 없어서 이긴 걸 알고 2,3시간 후인 5시 반인가 6시부터 중계를 해서 국민 여러분들이 많이 들었죠. 버스타고 학교가면서 들은 거예요.그때 유명한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그겁니다.

▶ 그 멘트가 이기리라고 생각해서 준비한 멘트는 아니셨잖아요?

15회전을 뛴 다음에는 정신이 없습니다. 이겼다는 기분은 느끼는데 사실 남자들끼리도 싸움을 해도 1분이 안 가거든요. 우린 1회전이 3분이니까. 제일 어려운 운동이죠. 그때 15회전이 끝나고 나서 정신이 없었는데 링 사이드를 내려가니까 이어폰을 끼워주는데 갑자기 “수환아~”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서 즉흥적으로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그 말이 나온 거죠. 배가 고팠으니까, 챔피언도 먹었다고 그랬어요.(웃음)젊은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가 그때 정말 어려웠구나. 선배들이나 선조들이 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는 걸 생각해 주셔야 해요.

▶ 그때 어머니의 유명한 멘트도 있었죠.

“수환아, 대한국민 만세다!” 하셨어요.

▶ 이기고 나서 그 선수를 껴안고 뽀뽀했다는 건 무슨 말인가요?

사실 11회전에 중지를 하려고 했다고 해요. 다운이 돼도 계속 일어나니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싸운 것만 해도 훌륭한 적장이라고 생각했어요. 뽀뽀를 해준 이유는 내가 1차 방어전에 이겨서 미안하다는 의미고 있었던 것 같아요.

▶ 상대방은 반대로 황당했을 거 같아요.(웃음)

그런데 제가 그때 당시에 느꼈던 건 백인 아이들이 우리를 느끼는 모습이 동양인들을 신비의 대상으로 알더라고요. 좀 무서워하는, 두려워하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 권투를 할 때 눈싸움도 하나요?

눈싸움은 항상 하죠. 제가 눈싸움을 하면 많이 이겨요. 눈이 작으니까 상대방은 내가 쳐다보는지 안 쳐다보는지 모를 거예요. 그래도 눈이 작으니까 아무래도 큰 눈으로 오래 떠 있는 것보다는 작은 눈으로 오래 떠 있는 게 유리하죠.(웃음)기선제압 같은 것은 조인식 하기 전부터 서로 째려보고 다닙니다. 그럴 때는 동물적인 감각이 있어요. 알리가 그런 걸 잘했어요.

▶ 홍수환 선수도 그런 걸 하셨어요?

저는 그건 안 했어요. 아버지가 겸손할 줄 알아야 하고 어머니는 항상 벼는 익을수록 머리를 숙여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에 저 같은 사람한테 알리 같은 사람이 걸렸으면 안 좋았을 거예요. 왜냐하면 그가 그만큼 떨고 있다는 거거든요. 자기가 그렇게 긴장이 되고 떨고 있기 때문에 그걸 표현함으로써 중립을 이루려고 하는 거죠.

◇ 물레방아 타법으로 받은 일등병 사열

▶ 그 권투로 일약 영웅이 되셨는데 가실 때와 돌아오실 때가 어떻게 다르던가요?

그것보다는 이기고 오니까 비행기 여행이 굉장히 짧더라고요. 지고 오면 그 길이 얼마나 지루하겠어요.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도 만나고. 군인이 대통령을 만난다는 게 얼마나 대단해요. 훈장은 못 받았지만 일등병 사열을 받았죠. 군인으로서는 사열을 받는 게 최고의 영광 아니겠어요. 장군이나 받는 것을 일등병이 군사열을 받았다는 거죠. 부대에 귀대해서 수도경비사 사령관 앞에서 제가 대표로 일등병으로 전 군인이 모인 사열식을 받았어요. 사령관 앞에 제가 서 있는데 모든 군인이 지나가는데 저에게 경례를 하고 지나가는 거예요. 군인으로서 이런 영광이 없죠.

▶ 박정희 대통령은 뭐라고 하시던가요?

저를 보시더니 왜 그렇게 팔을 휘두르다가 때렸냐고, 복싱을 좋아하시니까 자세히 보신 거예요. 빙글빙글 돌리면서 때리는 물레방아 타법이라고 했어요.

그게 훈련받은 이야기에요. 그때 라디오만 따라왔는데 이길 줄 모르고 좇아간 거잖아요. 세계챔피언이 되니까 국민들이 왜 이 시합을 안 틀어주느냐고 하는데 당시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TV방송국이 없었어요. 방송국이 있으면 흑인들이 머리가 깨인다고 해서 방송국이 없어서 35m 필름으로 찍은 거예요. 그걸 사가지고 한국에서 영화 35m 필름으로 방송용으로 바꾸어야 되는데 그게 한국 시설로는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홍콩에서 바꾸어서 국민 여러분들에게 10일 후에 틀어준 거예요. 그러니까 처음에 들은 건 라디오 방송만 들었고 한 일주일 후에 홍수환이가 이렇게 싸웠다고 나온 거죠.

그러고 나서 귀국은 7월 14일에 들어와서 4일 후인 18일에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으니까 4일 동안 군 사열을 받고 군대생활하면서, 박정희 대통령이 분명히 이것에 대해서 물어볼 것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라. 알겠다고 했죠. 맞는 얘기잖아요. 빙글빙글 돌리면서 때리는 타법, 물레방아 타법이죠.

▶ 아놀드 테일러 선수가 그 이후로 맥을 못 췄다고 하던데요.

아닙니다. 재기에도 성공했어요. 아놀드 테일러의 동생인 라 테일러가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는 최고의 기수에요. 그 집안이 스포츠 가족인데 스피드를 좋아하니까, 아놀드 테일러는 너무나 아깝지만 오토바이 사고로 운명을 달리했죠. 참 가슴 아팠어요.

◇ 시합 당일 바뀐 프리 녹다운, 떨면서 사인했어

▶ 두 번째 세계챔피언, 그게 4전 5기의 신화잖아요. 세계 복싱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하던데 기록이 있는 건가요?

기네스북에 올라가 있고 그런 일이 없죠. 4전 5기의 뜻이 4번 쓰러지고 5번째 이겼다는 뜻도 되겠지만 사전에 오기로 싸웠다는 뜻도 되겠죠. 굴하지 않고 애초부터 오기로 덤빈 게 결국은 날 이기게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 카라스키야 선수인가요?

예, 이름이 나쁘죠. 카라, 스키야 이랬으니까요. 파나마 선수였어요. 그래서 남아프리카에서도 세계챔피언이 되었고 남아메리카에서도 세계챔피언이 되었죠.

▶ 그 선수가 굉장한 주먹이라면서요?

별명이 지옥에서 온 악마였어요. 11전 11승 11KO승. 모두 홍수환이 진다고 했어요.

▶ 몇 라운드에서 다운되셨어요?

2회전에서 맞고 4번을 쓰러졌죠. 1회는 곧잘 했는데 2회에 가서 상대방 공격을 기다리다가 당했는데 하여튼 기다리면 안 돼요. 인생에서도 먼저 쳐야지 기다리면 안 됩니다.(웃음)그때는 물레방아 타법을 쓸 시간이 안 되었어요. 쓰러지고 만져보니까 링 바닥이더라고요. 아, 이거 내가 당했구나. 이게 첫 번째입니다. 그렇게 4번을 쓰러졌죠.

▶ 규칙상 3번을 쓰러지면 끝나는 거 아닌가요?

시합 하루 전인 조인식 때 3번 다운당하면 자동 KO로 하자고 해서 좋다고 했어요. 그런데 시합 당일에 무제한으로 가자고 바뀐 거예요. 왜냐하면 그 시합 자체가 초대챔피언 결정전이기 때문에 프리 녹다운으로 가자, 둘 중에 하나가 완전히 뻗을 때까지 하자고 된 거예요. 그런데 전 떨면서 사인했죠. 어쩌면 이게 내 마지막 날인지도 모르겠구나 하고요.하지만 결국 교만하니까 자기들이 진 거죠. 3번 쓰러졌을 때 그들이 겸손했다면 오히려 초대챔피언은 카라스키야인데, 이걸 끝까지 하자고 그래가지고 3라운드에서 이 선수가 쓰러진 거죠.

▶ 4라운 때는 카운트를 몇 번 셀 때 일어나신 거예요?

에잇(8)하면 일어났고, 레프리가 저를 그렇게 도와줬어요. 카운팅도 천천히 세어줬고.

▶ 링 위에서 쓰러지면 나는 졌다, 이제는 편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하던데요.

기분이 좋죠. 링 줄이 비행기 날개처럼 움직여요. 그리고 링 바닥은 들어왔다가 나갔다가 아주 기분 좋습니다. 너무 기분이 좋으면 앉아있을 수도 있어요. 여러분들이 팬 입장에서 보실 때, 저 사람은 일어날 수도 있는데 왜 안 일어날까 하는데 기분이 좋으니까 안 일어나는 거예요. 그럴 때 많아요.

▶ 그런데 어떻게 8번을 셀 때 일어나셨어요? 4번 쓰러질 때 끝내버리자 하는 생각은 안 하셨어요?

아니요. 저는 그때 카라스키야 주먹이 아픈 걸 알았어요. 그러니까 나는 일어날 수 있었죠. 아픈 걸 몰랐으면 시합은 끝났어요. 아픈 걸 알았기 때문에 일어났고 기적이 있다면 4번 맞고 쓰러질 때보다 4번 다운당하고 나서 2회전 끝나는 종이 울리기 전까지 더 맞았어요. 그때 안 쓰러진 게 정말 기적이죠.

◇ “4번 간 사람이 5번은 못 가?”그러고 튀어나가

▶ 그 2회전은 시간이 100분쯤 되셨을 거 같아요.

그럼요. 10초 동안 맞는 게 맞을 때는 10분입니다. 그때는 바로 위성중계를 했는데 어머니가 직접 보신 거죠. “애미나이가 왜드르케 자꾸 일어나니?” 안 일어나고 끝나면 매 덜 맞으면 되잖아요. 하지만 우리 선생님은 틀리죠. 2라운드 끝나고 코너에 들어왔잖아요.

“야, 우리 여기에 판정 바라고 왔냐? 1회전 더 뛰고 말어. 마지막이야.” “4번 간 사람이 5번은 못 갑니까?” 전 그러고 튀어나간 거죠. 저쪽은 너무 빨리 이기면 재미없으니까 1회전 봐줘라. 그러니까 똑같은 레벨에서 저는 업 된 기분으로 나갔고 상대방은 봐주려고 내려갔으니까 이 갭이 컸었죠.

방심하다가 내 주먹을 맞은 것이 관자놀이였는데 무릎 꿇고 밖으로 나가는 걸 끝까지 쫓아가서 로프에 몰아놓고 때려서 이겼죠. 그때 심판이 다운으로 인정할 수도 있었는데 어느 뜻인가는 몰라도 제 편이었어요. 눌러서 때리고 벨트라인 밑으로도 때리고 사실은 그게 다 반칙인데 심판이 봐 줘서 솔직히 말씀드리면 다 반칙으로 이긴 거죠.(웃음)

▶ 3라운드에서 이기셨는데 얼굴이 엉망진창이셨겠어요?

턱이 까지고 시합이 끝나고 나면 탈출하기 급급했어요. 그 사람들이 총을 갖고 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그날 파나마가 이겼으면 세계챔피언만 넷을 보유할 수 있는 세계 최강의 복싱 강국인데 제가 찬물을 끼얹은 거예요.콜롬비아 선수가 자살골 먹었다고 총으로 쏴 죽였잖아요. 그런 일이 있으니까 그 다음 날 빨리 과테말라로 도망갔어요. 과테말라에서 LA로, 일본, 한국으로 귀국했는데 그때 참 아까운 일이 하나 있었어요.로베르트 듀란이라는 정말 유명한 권투선수가 있었는데 그 선수하고 같이 사진 한 번 못 찍었다는 게, 축하한다고 내 방까지 찾아왔는데 왜 그걸 못했는지 모르겠어요. 4번이나 맞고 쓰러졌던 후유증이 그때 나타났었나 봐요.

▶ 홍수환 선수의 말솜씨는 누구에게 물려받으신 거예요?

어머니에요. 어머니가 언변이 아주 좋으셨어요. 어머니 주특기가 동네 외상값을 잘 지으셨는데 제가 운동 끝나고 집으로 들어가면 가게 장사하시는 아저씨들이 와요. 어머니 드신 거 아직도 안 갚으셨다고. 어떨 때는 화가 나요. 우리 엄마한테 직접 말씀하시라고. 그런데 우리 어머니한테는 직접 받을 수가 없어요. 15~20초만 이야기하면 감화 감동이 되서 됐다고 하거든요. 물론 제가 다 갚았지만, 제가 그쪽으로 이야기를 잘 하는 건 아닙니다.(웃음)

▶ 그러다가 언제 한 번 혼나셨죠?

시합하다가 질 때를 말씀하시는 거죠. 그때 가수 옥희씨하고 스캔들도 나고 선수만 봐도 이길까 말까 하는데 선수 보다가 옥희씨 보다가 또 선수 보다가 옥희씨 보다가, 해이해져서 진 거죠.

▶ 시합에 지고 영창에 가셨다는 건 무슨 내용이에요?

사열 받은 이후에 ‘자모라’라는 선수한테 졌어요. 자모라한테 진 다음에 카라스키야거든요. 세계챔피언 1,2차를 다 먹었는데 그 사이에 등장인물이 자모라에요. 자모라한테 LA 가서 시합에 지죠. 그래서 부대에 귀대를 했더니 군인 정신이 모자란다고 정신 좀 차리라고 해서 일주일 들어가 앉았었죠.(웃음)사열까지 받고 나서 영창에 간 건 아이러니도 아이러니지만 당시 우리의 실정이 그랬어요.

▶ 권투선수들 보면 운동 후유증 때문에 파킨슨 같은 병으로 고생하는데 홍수환 선수는 다행인 것 같아요.

저는 복 받은 운동선수죠. 우상이었던 모하메드 알리를 봐도 몸도 못쓰고 말도 잘 못하게 되었다는 게, 멕시코시티에서 만났을 때 정말 가슴 아팠어요. 하지만 미국에서 모하메드 알리를 봤을 때는 미국인에 대한 존경심을 버릴 수 없었어요. 애틀랜타 시에서 올림픽을 할 때 맨 마지막에 횃불을 붙인 게 알리잖아요. 홍수환이 세계 타이틀 빼앗기고 은퇴하고 나서 알리처럼 말도 못하고 거동도 못한다면 과연 올림픽 경기 때 제가 마지막 주자로서 성화 불에 불붙이게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저는 그 모습 보고 울었어요. 손을 흔들면서 억지로 올라갈 때 저 불 좀 붙이게 해 주세요 하면서 울었다니까요.

◇ 아버지...복싱 포스터를 볼 때마다 더욱 생각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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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에 굉장한 개구쟁이였을 거 같아요.

저는 유명했죠. 골목대장에다가 제 동생들이 밑에 많았어요. 4남 3녀였거든요. 저는 순서로는 넷째이고 아들로서는 둘째에요. 동생들이 맞으면 대신 나가서 싸워주곤 했어요. 어릴 때 주먹이 세지는 않았고 공부를 잘 했어요. 지금도 정의감이 있어서 바른 말 하는 사람 인정해 주기, 이런 운동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어렸을 때부터 불의를 보면 참지를 못했거든요.

▶ 친구들한테 소위 말하는 대장 같은 걸 하신 거예요?

대장도 하고 주로 리더십이 강했죠. 사실 아버지가 살아계셨으면 권투는 하지 않고 아버님도 권투를 시키시지도 않았을 거예요.

▶ 아버님은 몇 살 때 돌아가셨어요?

49살에 돌아가셨어요.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거든요.

▶ 아버님은 어떤 분이셨어요?

당시 황지에서 탄광을 하셨고 배우신 분이셨어요. 신의주에 계실 때는 동네 마라톤 선수였고 권투를 그렇게 좋아하셨어요. 둘째아들인 저를 데리고 권투구경을 자주 다니셨는데 아버지한테 특별히 사랑을 많이 받았어요. 그때 큰 형은 대학교 다니고 다 컸으니까 제 할 일이 따로 있겠거니 권투구경을 안 데리고 가셨겠지만 그 덕분에 저는 권투에 흥미를 갖게 되었죠. 제가 8,9살 때 본 권투시합이 강세철씨, 정복수씨, 그런 분들의 권투를 어린 눈에 봤어요. 눈으로 본 것이 굉장히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 중학교 2학년 때 돌아가셨으면 권투 하는 걸 전혀 못 보시고 돌아가셨겠어요.

전혀 못 보고 돌아가셨죠.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는데 우리 어머니가 너무 세셔서 아버님도 꼼짝을 못 하셨어요. 제가 어릴 때부터 가정교육을 잘 못 받은 거예요. 어머니가 아버지를 항상 이기니까 반드시 여자를 이겨야 한다는 게 있었죠. 아버님이 코너에 몰리니까 안 되겠다, 나는 장가를 가면 반대가 될 것이다. 그게 나중에는 실천까지 옮겼지만 안 좋은 걸 그때 배운 거죠.

▶ 7남매를 키우시느라고 어머님이 고생을 많이 하셨겠어요.

어머니가 고생을 많이 하셨죠. 그런데 제가 지금 생각해 보면 스스로 고생할 길을 찾으신 거예요. 아버지한테 왜 그렇게 지지 않고 이기셔서 말이죠.

▶ 어머니한테 그렇게 말씀드려 보셨어요?

그런 말씀은 안 드렸지만 아버님이 심장마비로 돌아가실 때 굉장히 술을 많이 드셨어요. 제가 아직도 기억나는 게 그날이 제 생일이었거든요. 사실 제가 6.25 때 태어났기 때문에 어머니가 제가 며칠에 태어났는지 몰라요. 대충 맞춰서 8월 4일이 둘째아들 홍수환이 생일로 해 주자 그랬는데 그날 아버지가 술을 많이 드셨어요. 왜냐하면 아버님이 을지로 4가에 땅을 사놓으셨는데 어머니가 몰래 파셨거든요. 그래서 아버지가 화가 나서 누구를 믿고 사느냐는 말을 들은 것 같아요.

같은 이불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신 거예요. 잠을 자는데 아버지 다리가 너무 무거워서 발 좀 치워달라고 하는데 안 치워줘요. 보니까 아버지가 돌아가셨더라고요. 제가 마지막으로 아버지하고 같이 잠을 잔 사람이 되어버렸어요. 지금 돌아가셨으면 더 충격이겠지만 그때는 나이가 어려서 잘 느끼지 못하다가 학교를 다니면서 동네에 붙은 복싱 포스터를 볼 때마다 아버지 생각이 더 났었죠.

▶ 권투를 몇 살 때 시작하셨어요?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시작했어요.

▶ 어머니가 반대는 안 하셨어요?

반대하셨죠.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인데 말을 들었겠어요? 공부 잘 하면 권투도 더 잘 한다고 밀고 나간 거죠. 처음 학생 선수권 대회에 나가서 졌고 아마추어 나가서도 졌고, 선생님이 너는 프로로 나가라고 해서 나갔는데 데뷔전에서 비기고 그때까지만 해도 못 이겼었거든요. 어머니가 바로 탈의실로 들어오시더니 한 번은 이기고 관두라고, 그 다음부터는 어머니가 서포터가 되어주셨어요. 어머니가 미군부대에서 식당을 하고 계셨는데 제가 힘이 없으니까 맞는다고 버터를 배에 차고 나오셨어요. 그때는 뜨거운 밥에 미제버터에 간장에다 비벼먹으면 얼마나 맛있었어요.

◇ 진정한 챔피언은 사각의 링이 아닌 인생의 챔피언

▶ 돈도 많이 버셨고 옥희씨와 사랑에 빠지셨다가 헤어지고 오랫동안 있다가 또 만나셨어요.

제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권투선수로 링을 정복은 했지만 가정에서는 성공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리고 가정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참 불쌍한 사람이에요. 그러나 내가 이 링 위에서 끝내 이긴 모습을 보여 준 것만큼 조금 슬프고 어렵더라도 여러분들에게 끝까지 잘 사는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사실 제 이야기는 미화할 수 없는 이야기에요.

저는 미국에 가서 살면서 성공을 못 하고 미국에서 고생 많이 하고 또 인생을 알게 되었죠. 한국에서 링 위에서 알았던 인생은 아무 것도 아니에요. 정말 세상에 나가서 살다 보고 맞다 보니까 진정한 챔피언은 인생의 챔피언이지 링 사각의 챔피언은 아무 것도 아니더라 이겁니다. 제 본처하고 정식으로 이혼을 하고 여기에 나와서 서로 홀로 된 사람들끼리 다시 만났다고 보시면 되죠. 서로가 못 잊고 있었다기보다는 마지막 헤어진 부분에서 너무 못 해주고 헤어졌으니까 남자로서의 양심의 가책이라는 게 계속 남아있었던 것 같아요.

▶ 권투는 배고픈 스포츠라고 하는데, 지금은 먹고 살기 편해져서 권투를 잘 안 하려고 하지는 않나요?

그건 틀립니다. 일본이나 미국이 우리보다 더 잘 살잖아요. 그들이 배불러서 권투를 안 하는 건 아니죠. 그들에게 복싱은 아직도 인기 좋은 스포츠입니다.

▶ 권투의 매력이 뭘까요?

일단 한 번의 시련이 있습니다. 내 체중을 맞춰야 하니까요. 시합하기 전에 계약된 체중에 나를 맞춰야 합니다. 자신과의 싸움이죠. 그 다음에 상대와 싸워야 하고. 제일 어려운 게 상대와 부딪쳐 봤더니 내가 아직도 약하더라. 그러면 또 자기 자신에게 도전을 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1:1의 싸움에서 지는 선수가 과연 세상에서 이길 수 있겠는가 이런 걸 느끼는 분들은 정말 복싱에 매력을 느끼고 많은 분들이 체육관에서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지요.

▶ 권투는 특별히 머리를 쓰지 않아도 힘만 좋으면 되는 스포츠인 줄 알았는데, 말씀을 듣다 보니까 권투야말로 머리가 좋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가 싫어하는 말 중의 하나가 권투선수치고 똑똑하다는 말인데, 모교자랑이지만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했고 권투선수가 머리가 좋지 않으면 맞습니다. 승리자가 될 수 없죠.그리고 좋은 머리를 더 좋게 하려면 평상시 연습을 많이 해야 합니다. 때려야 머리를 쓸 수 있지, 맞고서야 머리를 쓸 수 없죠. 권투선수야말로 신체나 머리나 다 연습을 통해서 단련을 하고 좋은 밸런스를 이루어야 챔피언도 되는 것이죠.

◇ 인생은 4전 5기, 제 2의 홍수환을 키우고파

▶ 앞으로 하시고 싶은 일이 뭔가요?

저는 권투선수였기 때문에 여러분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 같아요. 그래서 복싱을 보다 더 사회 쪽으로 저변 확대를 해서 멋있는 후배를 많은 복싱 인구 가운데 탄생하는, 제 2의 홍수환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지금은 너무 복싱이 외면당하고 있으니까 제가 다시 복싱계로 들어와서 우리나라가 가장 어려웠을 때 효자 스포츠인 복싱을 다시 살려야하지 않겠느냐, 많은 복싱인들이 제 2의 출발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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