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길헌(61회, KAIST 수리과학과 명예교수) _대전일보 기고문 > 교우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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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422회 작성일 2022-01-26 10:47
권길헌(61회, KAIST 수리과학과 명예교수) _대전일보 기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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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의 양식은 화가나 시인의 그것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워야 한다. 이 세상에 못난 수학을 위한 영원한 자리는 없다."


'한 수학자의 변호'에서 이렇게 말하고 자신의 연구 결과가 결코 어떤 쓸모도 없기를 바랐던 20세기 전반 영국을 대표하던 순수수학자 하디는 1908년 한쪽 분량의 짧은 논문을 사이언스지에 발표했다. '왜 열성유전자는 세대를 거듭하며 사라지지 않을까?' 하는 캠브리지대 동료의 소박한 의문에서 비롯된 이 짧은 논문은 하디의 바람과 달리 나중에 하디-바인베르크 원리로 불리우는 유전학에서 매우 유용한 업적이 됐다.


이 원리는 2022학년도 수능 생명과학 II 마지막 문제에 등장하며 출제 오류 시비를 일으키고 결국은 법원의 판단을 통해서야 끝을 보게 됐다. 입시문제 오류 파동은 멀리는 1964년 중학 입시에서의 무즙 파동을 비롯해, 수능에서만도 이미 아홉 차례나 반복됐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2014년 수능 세계지리 문제 오류에 대해서는 '교과서에 나온대로 문제를 냈으니 문제가 없다'거나 '이번에는 문항의 조건이 완전하지 않다고 하더라도 학업 성취 수준을 변별하기 위한 평가 문항으로서 타당성이 유지된다'라는 납득할 수 없는, 수준 이하의 변명으로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를 넘어 법의 테두리로 끌어드린 후에야 고개를 숙였다. 2014년은 교과서, 이번에는 전문가의 권위에 기대어 조직의 권위를 지키려던 평가원의 억지는 논리의 구차함을 넘어 교육의 연장이어야 할 수능을 반교육적으로 만들었다.


작년 12월 교육부는 앞으로 유사한 출제오류를 막기 위해 출제·검토 기간 및 인원, 문항 검토 방식, 이의심사 절차 등을 재검토하겠다는 '수능 출제 및 이의심사 제도개선 추진계획'을 발표했지만 이는 2014년, 2016년 출제오류 사태에 대한 대처 방안의 복붙이다. 교육부의 재발방지 대책에도 불구하고 같은 문제가 되풀이됨은 근본 문제가 다른 곳에 있음을 의미한다. 문제의 뿌리를 덮어두고 가지만 건들다 말면 같은 문제가 되풀이된다. 아인슈타인은 "어리석은 자는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현자는 매번 다른 실수를 한다"고 했다. 왜 우리는 매번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가? 출제오류는 출제자의 전문가로서의 과신, 선입견, 부주의 등 여러 요인이 있을 수 있겠으나 특히 주목되는 것은 변별을 위한 소위 말하는 킬러 문항의 출제이다. "현 수능 체제 안에서는 상위권 변별력을 갖추기 위해 고난도 문제를 내지 않을 수 없다"는 한 출제위원의 고백은 문제가 기술적 미숙함을 넘어 제도적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시험의 일차적 목적은 개개인의 학업성취도 측정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알아내어 더 높이 성장하고자 함이요 평가 대상자들을 구별짓기는 부차적이어야 함에도, 우리 초중고 교육에서 대부분 평가의 최우선(또는 유일한) 목적은 줄세우기다.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마저 수학능력 측정은 뒷전이고 변별을 앞세우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고 있다.


수능은 1-2점짜리 문항 하나마다 세상이 뒤집힐 것 같은 과잉 민감도를 낮추고, 극소수의 킬러 문항으로 변별력을 높여 모든 수험생을 한 줄로 세우겠다는 망상을 거둬야 한다. 높은 변별력의 수혜자는 몇 안되는 상위 대학뿐이고 피해자는 50여만 명의 수험생과 그들의 학부모, 교사들을 포함한 우리 모두다. 변별만을 위해 특화된 킬러 문항을 맞추면 수학능력이 있고 아니면 부족하다는 믿음도 근거가 없거니와, 상위 대학들마저도 변별의 진정한 수혜자인지조차 알 수 없다. 변별은 교육이 아니다. 교육의 목적은 줄세우기를 통한 선발이 아니라 성장이다. 교육이 아닌 변별을 국가 주관 평가시험의 주목표로 삼을 수는 없다. 왜 선발을 위한 변별을 개별 대학이 아닌 국가가 걱정하는가? 선발을 앞세울 때 같은 문제는 되풀이 될 수밖에 없다. 킬러 문항을 킬하고 변별이라는 주술에서 벗어나, 수능의 본면목인 수학능력 측정으로 돌아감이 문제 해결의 시작이다.


http://m.daejonilbo.com/mnews.asp?pk_no=1504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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