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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적 리얼리즘의 선구자, 김정한>
김정한은 일제 강점기 일제와 친일파들에 의해 핍박받는 민중들, 특히 농민들의 비참한 삶을 리얼리즘 정신으로 조명하여 민족민중문학의 기수요, 개척자가 되었다.
그에 의해서 일제 강점기의 혹독한 현실과 민초들의 비참한 삶이 낱낱이 드러났다.
그런 점에서 그는 민족적 리얼리즘의 선구자였다.
김정한(1908-1996)은 경남 동래생으로 중앙고보를 2년 수료하고 동래고보를 거쳐 와세다대 제1고등학원 문과에서 수학했다.
대표작 <사하촌>이 1936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작가활동을 시작한다.
<사하촌>은 궁핍한 농촌현실과 친일파 승려들의 잔혹행위를 고발한 작품이다.
첫 출발부터 민족주의 리얼리즘 작가의 면모를 드러냈던 것이다.
귀국 후 경남에서 교편을 잡았는데 식민지 교육을 거부하고 학생들에게 민족주의 정신을 고취하고자 했던 ‘조선인 교원동맹’을 조직하다 여러 차례 옥고를 치룬다.
1932년에 지주계급에 대항한 양산농민 봉기사건에 피검되어 학업을 중단하고 만다.
1940년 동아일보가 강제 폐간되는 상황에서 치안유지법으로 체포되어 다시 옥고를 치뤘다.
끝까지 민족언론의 기수이던 동아일보를 지키려 했던 것이다.
이처럼 김정한은 온몸을 바쳐 항일운동의 선봉에 섰던 것이다.
광복 후 건국준비위원으로 있으면서 저널리스트로 활동했다.
해방공간에서 민주신보 논설위원을 지냈고, 1959년에는 부산일보 논설위원으로 활동했다.
1950년에 부산대에 발령받아 오랫동안 부산대 교수로 재직했다.
문인협회 부산지부장, 예총 부산지부장을 역임하며 지역 문학발전에도 기여했다.
그의 대표작 <항진기>, <기로>, <장대풍>, <월광한>은 민중을 선동하는 반식민주의 작품으로 규정되어 불령선인의 감시대상이 되었다.
그의 민족민중주의가 행동에서 뿐 아니라 작품으로 구체화 되었던 것이다.
대표작 <사하촌>은 왜놈들에게 빌붙어 사는 친일파 지주들이 농민을 잔혹하게 괴롭히는 죄상(罪狀)을 고발하고 있다.
<낙일홍>(1940)은 학생들에게 민족적 각성을 일깨우다 벽지로 좌천되는 교원이 주인공이다.
전반적으로 그의 작품은 일인들과 친일파로 학대받는 민초들의 고난상을 리얼리즘 정신으로 형상화하였다.
그의 문학은 토속적인 소재와 배경, 낙동강 유역의 농민들의 순박한 언어를 통하여 역사현실을 고발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그는 민족적 리얼리즘 대표작가로 평가된다.
그가 편찬한 『우리말 사전』과 『식물도감』 역시 우리의 민족언어와 민족혼을 지키려는 신념에서 나온 것이다.
해방 후에도 이러한 민족적 리얼리즘 작풍(作風)은 계속 이어진다.
또 하나의 대표작 <모래톱 이야기>(1966)는 왜놈들과 광복 후 국회의원이나 유력 권력자들에세 농지와 재산을 빼앗기고 살다가 홍수 때문에 섬이 폐허화 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수라도>(1969)는 일제 탄압하에서 농민을 포함한 민중들이 몰락해 가는 과정을 고발하고, <인간단지>(1970)는 권력가들에게 핍박받는 민중들의 영웅적 항쟁과정을 그리고 있다.
이처럼 김정한은 일제강점기, 해방공간, 그 이후에 전개되는 현실상황에 정면으로 맞서는 민족적 리얼리즘 정신을 끝까지 지켜낸 작가였다.
김정한은 단연코 한국문학사에서 민족적 리얼리즘 작가로 헌정될 것이다.
*2006년 부산에 김정한 문학관
설립되고 매년 문학축전도 열립니다.
부산 가시면 꼭 한번 들러 보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