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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건 조회 2,512회 작성일 2013-05-15 09:39
[내 인생을 바꾼 스승]<1>김재홍 차관의 중앙고 3년 담임, 故 정남수 선생님 <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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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시간 항변 들어준 선생님 “제 인생 바뀌었어요”

[내 인생을 바꾼 스승]<1>김재홍 차관의 중앙고 3년 담임, 故 정남수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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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편집자주|우리는 모두 잊지 못할 스승이 있다.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16년 동안 배움의 길에서 우리를 인도해준 분들이다. 학교가 무너지고 스승을 찾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는 한탄이 많지만, 우리 사회가 이만큼 발전한 것은 우리의 삶을 옳게 이끌어 주신 진정한 스승 덕분이다. 오는 5월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나의 인생을 바꾼 스승'을 찾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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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앙고 3학년 3반 1976년 졸업앨범 단체사진. 사진 왼쪽에서 일곱번째가 故 정남수 담임 선생님.

"고등학교 3학년 3반 때 담임이셨던 고(故) 정남수 선생님은 행동하시는 게 의연하시고 멀리보시는 분이었다. 기억나는 것은 고3 제자들이 졸업하던 날 졸업식이 끝난 후 다시 교실에 모인 제자들에게, 칠판에 큰 글씨로 '사별삼일(士別三日)에 괄목상대(括目相對)요, 붕정만리(鵬程萬里)에 기불탁속(飢不啄粟)'이라는 말씀으로 제자들을 일깨우셨다."(김재홍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

이 말은 '선비는 사흘을 떨어져 있으면 눈을 부비고 바라볼 정도로 자신을 정진해야 하고, 큰 새는 만리 먼 길을 날아가는 도중에 배가 고파도 조(粟)는 쪼아 먹지 않는다'는 뜻이다. 꾸준히 학문에 정진하고, 큰 길을 가는데 있어서 비리와 불의에는 타협하지 말고 올바른 길을 걸으라는 '까까머리' 제자들에 준 가르침이었다. 관련기사☞ [내 인생을 바꾼 스승]<2>박인규 SK임업 대표의 스승 故조태환 건국대 교수

1975년에 서울 중앙고 3학년 3반이었던 김재홍 차관은 늘 이 같은 가르침을 가슴 속에 품고 산다. 혈기왕성한 청춘들에게 인생의 스승이 남긴 이 한마디는 인생의 지표가 됐다.

◇정남수 담임 3학년 3반 졸업생들
정남수 선생님을 기억하는 학생들로는 김 차관 외에도 강병국 법무법인 한민 대표변호사, 강영호 서울서부지방법원장, 김경환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김형률 숙명여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성태경 경기대 경상대학장, 안현호 무역협회 상근부회장(전 지식경제부 제1차관), 유석진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인용 삼성 미래전략실 커뮤니케이션팀 사장, 이재우 보고펀드 공동대표, 허태수 GS홈쇼핑 사장, 황순택 주 르완다 대사, 황인태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가나다순) 등 많다. 이들은 모두 1975년 중앙고 3학년 3반 정남수 선생님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들이다.

특히 정 선생님과의 깊은 추억이 있는 사람으로는 김형률 숙명여대 교수가 꼽힌다. 김 교수는 38년전인 1975년 봄, 서울 계동 중앙고 구관 교정의 한 벤치에서 정 선생님과의 3시간여의 대화를 잊지 못한다.

김 교수는 당시 역사학에 관심이 많았던 학생이었지만, 학교에 가기 싫었다. 자신이 배우고자 하는 것과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게 달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학교에 가는 날보다 가지 않은 날이 더 많았고, 이런 문제아(?)인 자신을 불러 정 선생님은 이유를 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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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정남수 선생님/출처 중앙고 76년 졸업앨범 中.

김 교수는 정 선생님께 "학교수업에 대한 의미를 찾을 수 없으니, 집에서 고등학교 교과서 이외의 다양한 책들을 혼자 읽고 사색하고 싶다"고 했다. 또 "대학은 갈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지만 인류의 역사를 마음껏 공부하고 싶다"는 말을 봄기운을 빌어 '뜨겁고 서럽게' 흐느끼듯 고백했다고 한다.

정 선생님은 그 모든 얘기를 3시간이나 넘게 듣고, 끝까지 공감하면서 선생님 자신의 인생 전 과정을 18살의 젊은 청춘에게 솔직하게 얘기했다.

이런 대화 이후 김 교수는 1주일 정도 학교에 나간 것은 물론 방과 후에 자청해서 교무실로 사랑의 매를 맞으러 갔다. 정 선생님은 학생들이 잘못하면 "이 놈 몇 대를 맞을래?"라고 물었고, 스스로 말하는 만큼 아프지 않는 사랑의 매를 줬다고 한다. 김 교수는 토요일에는 일요일 것을 합해 2배를 맞았다고 한다.

1주일 동안 사랑의 매를 드신 정 선생님은 "이제 더 이상 매가 필요 없으니 학교공부가 의미가 있다고 느낄 때 등교하라"고 했다. 그 후 김 교수는 졸업을 위한 학업일수를 채우지 못할 정도로 결석을 많이 했다. 학교공부에 의미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정 선생님이 "집에서 역사를 공부하는 것도 수업을 듣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다른 선생님들을 설득해 퇴학을 막아주신 덕분이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고3 담임이 제자들을 대할 때 대학입시를 코앞에 앞둔 입시생이 아닌 인생의 큰 꿈을 앞에 둔 한 인격체로 보고, 시야를 넓고 멀리 펼칠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진짜 꿈을 펼칠 수 있도록 퇴학을 막아주는 스승의 보호막이 없었다면 현재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김 교수가 있었을까.

당시 정 선생님이 3학년 3반 학생들을 얼마나 인격적으로 대했는지는 당시 학생들의 행동에서 알 수 있다.

정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밀린 공납금(학교 수업료)을 내라는 말씀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 스승이 제자들에게 '돈' 얘기로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던 것. 1970년대 여느 학교에나 있을 법한 일이지만, 선생님들에 대한 학교 측의 평가 중에는 그 학급의 공납금 납부율이 얼마나 높은지가 잣대가 되기도 했다.

3-3반이 납부율이 꼴찌인 것은 당연한 결과였고, 교무실에서 혹여 공납금 독촉과 같은 지적을 받더라도 정 선생님은 반 학생들에게는 아무 말씀을 안했다고 한다.

당시 반장(이인용 삼성 미래전략실 사장)은 이런 사정을 알고 "선생님께서 이런 형편이니 우리 다음 주까지 공납금을 모두 납부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했다. 결과는 놀랍게도 그 다음 주 3-3반 공납금 납부율이 전체 1등을 했다. 그만큼 제자들이 선생님을 따랐던 결과다.

또 모든 국민이 외환위기로 금모으기를 하며 허리띠를 졸라매던 1998년. 정 선생님은 은퇴 후 암으로 투병했다. 이 소식을 들은 친구들이 반장의 편지 한통에 십시일반으로 800만원이라는 병원비를 모았다. 적지 않은 돈을 거리낌 없이 내놓았던 것도 정 선생님의 가르침에 대한 제자들의 고마움의 한 단면이었다.

3학년 3반 제자들은 "정 선생님은 스스로 의미 있게 공부를 해 보고, 또 먼저 삶을 살아 보고 그 긴 삶의 의미라는 노정에 있는 18세 어린 제자들에게 한 치의 속박도 없이 그 제자의 삶과 공부의 깊이와 넓이를 용감하게 지켜주셨다"고 기억한다.

그래서일까. 76년 졸업생인 중앙고 3학년 3반 48명의 친구들은 정 선생님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각자의 분야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붕정만리에 기불탁속'을 가슴 속에 새기고. 선생님은 가셨지만 그의 가르침은 후생(後生)으로 이어져 이 나라의 동량이 되고 있다.


※. 님에 의해 복사(이동)되었습니다. (2014-06-20 19:17:50)

댓글목록

no_profile 박정관(高066) 개인프로필 프로필 차단하기게시글 차단하기 작성일
於平(어평) 丁南洙선생님~!
제게도 특별한 인연으로 결코 잊지 못하는 스승입니다.

1972년에 1학년 10반의 담임으로 시작해서, 2학년 5반, 3학년 2반...3년 연속 담임이셨습니다.(저와 이준순 수도여고교장겸 서울시교총연합회장, 오직 2명이 같은 인연...)
저도 고3때 인생에 대한 회의감으로 일주일씩 무단 결석을 총 45일 했음에도 선생님의 배려로 졸업이 되었습니다.(학적부에는 결석일수가 11일로 처리되어 있음을 후일 발견했지요)

문제는 대학입시 원서를 쓸 때, 법대를 지망해서 S대 사회계열을 희망했으나, 선생님은 안전하게 S대 교육계열을 권하는 과정에서,
"선생님께 3년동안 '초지일관'하는 정신을 배웠는데, 왜 대학입시에서 소신을 굽히게 하십니까?!!"라고 당돌한 답변으로 선생님의 분노를 유발, 코피 터지게 맞으면서도 제 소신을 굽히지 아니하여, 다른 선생님이 원서를 대신 써주었던 사건?이 발생했었지요.ㅜ.ㅜ
결국, 전기대에서 낙방하고, s대 법대에 진학...

그럼에도 불구하고, 졸업 7년후인 1982년에 취업과 동시에 결혼할 때 주례선생님으로 모셨었지요. ㅎㅎㅎ

그러한 인연으로 매년 스승의 날이나 명절에는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인사드렸었지요.

1986년경 정년퇴임하셨을 때에, 3학년 담임 맡으셨던 다섯 회기(66회, 67회, 70회, 72회, 73회) 제자들에게 제가 연통을 날리고, 십시일반으로 성금을 모아서, 정년퇴임 축하연회도 열어드리고, 대만부부여행을 보내드리기도 했었지요.(어평회)

다만, IMF사태가 시작되던 1997년 12월에 선생님께서 갑자기 별세하셨을 때에는, 제가 울산에서 근무하고, 소식을 듣지도 못해 어평회 제자들에게 연락은 커녕, 저도 장례식 이후에 알게된 점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선생님, 예전처럼 찾아 뵙고 약주 한잔 대접해드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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