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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790회 작성일 2012-11-14 07:45
[인터뷰… 그]스타플레이어 출신 김주성(74회) 대한축구협회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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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그]

스타플레이어 출신 김주성 대한축구협회 사무총장
 


"세계 축구대열 합류 위해 경기도가 힘 실어줘야"

데스크승인
2012.11.14


 

"경기도민의 뜨거운 축구 열기에 부응하기 위해 A매치를 열게 됐다."

지난 8일
경인일보 본사를 방문한 대한축구협회 김주성 사무총장은 14일 국가대표팀의 호주 국가대표팀과의 평가전을 화성종합운동장에서 개최하게 된 사연을 소개했다. 김 사무총장은 "선수와 팀 수의 광역 시·도협회 분포를 보게 되면 수도권이 60~70%를 차지하고 있다. 이 중 서울을 제외한 경기권역의 비중은 상당히 크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축구가 발전하는 동반자적인 입장에서 경기도를 바라보고 있다.
세계축구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경기도가 중심이 되어 힘을 실어 줘야 한다"고 했다. 김 사무총장은 축구계에서는 선수출신 행정가 1호다.

지난 1999년
부산 대우 로얄즈에서 은퇴한 후 다음해인 2000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에 선임되며 행정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올해 초 그가 한국 축구를 이끄는 중심 기관인 대한축구협회의 사무총장에 선임됐을 때 국내 스포츠인 모두가 깜짝 놀랐다.





경기도민 위해 호주팀과 오늘 평가전

A매치 열기반영 내년에도 국제이벤트

지금은 한국축구 발전 좌우 중요시점

협회 임직원·전문가 합심 최선의 노력


김 사무총장은 "해외에 진출, 다양한 경험을 쌓은 것이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됐다. 축구 지도자와 행정가가 상반된 분야라고 보지 않는다"고 말을 꺼냈다.

그는 "거창한 이유보다는 선수 출신이 꼭 지도자로만 가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접고 다른 방향으로 생각했다. 축구가 발전하기 위해 선수와 지도자도 중요하지만 행정가들이 마음껏 정책을 펼칠 수 있는 환경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도전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어 김 사무총장은 "행정가도 아마추어 협회에는 아마추어에 맞는 행정이 있고, 프로에는 거기에 맞는, 대한축구협회에는 협회에 맞는 행정이 있다. 성인 대표팀에 발탁되려면 20년 이상 운동을 해야 한다. 행정
가로서도 행정가에 맞는 지식과 소양을 쌓기 위해 일정 기간 트레이닝이 필요하다"며 스포츠 행정 관련 학위를 취득한 이유를 설명했다.

김 사무총장은 "제가 현장에 대한
전문지식은 풍부할지 모르겠지만 행정적인 부분은 배워야 할 게 많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으로 석·박사 학위 취득과 어학연수, FIFA국제스포츠관리자 과정 등도 밟게 됐다"고 귀띔했다.

현역 축구 선수로서, 그리고 축구 행정가로서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는 그에게도 어려움이 있었다. 바로 편견이다.

   

김 사무총장은 "인식이다. 모든 사람들이 운동선수는 행정가로 성장할 수 없다는 편견이 있다. 특히 남들의 인식도 힘들었지만 내 자신의 인식에 대한 탈바꿈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사무총장은 "가장 적성에 맞는 게 축구 선수였기 때문에 수십 년을 했고 거기에 맞게
습관화됐다. 그런데 정반대의 일에 도전하게 됐다. 운동선수는 경기장에서 활동적인 부분이 전부라면 행정가는 자리에 앉아서, 결국은 머리 싸움을 한다. 그런 부분에 대한 트레이닝이 어린 시절부터 익숙지 않았고 성인이 돼서 바꾸려고 하다 보니 힘들었다"고 덧붙여 설명했다.

하지만 김 사무총장은 "선수 생활을 하며 어려움을 극복하는 걸 배웠다. 선수 시절 겪었던 고난과 역경이 다른 분야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이 됐다"고 밝힌 후 "여기에다 주위 분들이 많은 조언을 해주셔서 힘든 과정을 슬기롭게 이겨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1980~90년대 최고 스타플레이어 출신인 김 사무총장은 국내외 리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김 사무총장은 2005년부터는 대한축구협회 이사로 선임되며 축구 행정가로서 남아공월드컵 16강 진출, 2012런던올림픽 동메달 획득 등 행정가로서도 한국 축구사에 길이 남을 성과물을 만드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축구 선수가 아닌 축구 행정가 김주성으로서 최근 한국 축구 부흥기를 바라보는 느낌에 대해서도 물어봤다.

"선수 때의 성취감은 자기만의 것이었지만 행정가 입장에서 성취감은 나만이 아닌 온 나라의 성취감이다. 한 사람이 누리는 기쁨이 아닌 전 국민이 함께 누리는 감격이나 스릴, 만족감은 비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김 사무총장은 "오히려 기쁨과 희열을 많은 분들과 함께 나눌 수 있어 선수 때보다 더 값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할 때는 내가 현역 선수로 뛸 때보다 더 아픔이 온다"고 덧붙였다.

그는 "사무총장의 역할에 대한 평가도 제
개인적인 평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조직이 평가받는 부분이기 때문에 함께 대한축구협회를 이끌어 가고 있는 분들의 의견도 경청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며 "제 역할에 대한 비중이 클지 모르지만 모든 의사결정은 대한축구협회 임직원, 전문가들의 능력과 생각을 모아서 결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사무총장은 "현재 선수들이 축구 선수로서 국민들로부터 사랑 받는 것은 과거 선배들께서 이뤄놓으신 것이다. 2002년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부터는 선수들이 부와 명예를 누리고 있다. 하지만 지금 축구계는 무한 성장할 수 있느냐 아니냐 기로에 서 있다. 축구계가 발전할 수 있는 뿌리를 다지는 중요한 시점이다"고 말했다.

도내 축구계에 논란이 일었던
수원시시설관리공단 여자축구단(수원FMC) 해체 문제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수원FMC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닌 여자 축구 전반에 어려움이 표출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며 "대한축구협회에 여러
종목의 연맹이 있는데 유기적으로 대화를 통해 축구 전 분야가 발전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한 거 같다"고 말했다.

이어 김 사무총장은 "수원FMC 문제와 관련해서는 염태영
수원시장을 찾아뵙고 사회적 약자층인 여성들의 입장을 설명하며 팀 운영 문제를 건의할 계획"이라고 말한 후 "수원지역 프로야구 10구단 유치를 축구와 연계해 보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덧붙였다.

김 사무총장은 "이번 A매치의 열기를 반영해 더 많은 경기도민들이 축구를 즐길 수 있도록 내년에도 국제 이벤트를 통해 도를 찾고 싶다. 대표 팀이 활약할 수 있도록 응원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글/김종화기자

사진/김종택기자 



'아시아의 삼손' 애칭 대표팀 공격수 활약


김주성 축구협회 사무총장은


김주성 사무총장은 강원도 양양군에서 태어났지만 서울 성수중과 중앙고를 거쳐 조선대에서 활약했다. 1987년 대우 로얄즈(현 부산 아이파크) 유니폼을 입으며 프로에 데뷔한 김 사무총장은 1992년까지 대우에서 100경기에 출장해 31골을 넣었다. 데뷔 첫해 소속팀 대우를 K리그 우승으로 이끌며 신인상을 수상했고 1990년에도 소속팀에 두 번째 K리그 정상을 안겨줬다.

1992년
독일 분데스리가의 VfL 보훔으로 이적해 활약했지만 1992~1993시즌 결과 팀은 16위를 기록해 2부리그로 강등되는 아픔을 겪었다. 1993~1994시즌 VfL 보훔의 2부리그 우승과 1부리그로의 승격을 이끌며 '2부 분데스리가 베스트 11'에 선정되기도 했지만 국내로 복귀했다. 1994년 친정팀 대우로 복귀해 1997년 소속팀을 K리그 3번째 우승으로 이끌며 K리그 MVP로 선정됐다.

1999년 11월 25일 속초시에서 은퇴 경기를 가졌는데 K리그에서 은퇴 경기가 열린 건 이때가 처음이다. 대우는 K리그 구단으로는 처음으로 김 사무총장의 선수시절 번호 16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K리그에서 뿐 아니라 국가대표로 한국 축구의 해외 활약을 이끌었다.

1988년 AFC아시안컵에서 2골을 넣으며 팀의 준우승을 이끌며 MVP를 차지했고 1986년과 1990년, 1994년 FIFA월드컵 대표팀으로 활약했다. A매치 77경기에 출전해 14골을 득점했다.

현역 선수시절 소속팀 대우의 K리그 3회 우승, 2회 준우승을 이끌었고 컵대회는 4회 우승을 일궜다. 개인상도 K리그 신인상과 체육훈장을 비롯해 18회에 걸쳐 각종 상을 받았다.

오른발잡이이면서도 왼발 슈팅을 많이 사용할 정도로 자유자재로 양발을 사용했다. 측면 공격수와 공격형 미드필더, 중앙수비수 등 다양한 포지션에서 활약한 그는 그라운드를 종횡무진하며 끈질기게 득점 기회를 노리는 모습으로 인해 팬들로부터 '야생마', '아시아의 삼손' 등의 애칭을 얻었었다.

행정가로서의 도전은 2000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에 선임되면서 시작됐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2003년 FIFA 국제스포츠관리자 과정을 이수했다.

2005년에는 대한축구협회 이사에 선임됐고 같은 해 10월에는 대한축구협회 국제부장으로 선임됐다.

지난 1월부터는 대한축구협회 사무총장으로 선임돼 축구 행정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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