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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205회 작성일 2012-11-14 17:42
미소 짓는 승부사 "론스타의 흉터, 반드시 지운다"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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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소 짓는 승부사 "론스타의 흉터, 반드시 지운다"

  • 김홍수 기자
  •  
  • 입력 : 2012.11.13 22:03

[CEO & 리더십] 외환은행장 윤용로

론스타가 남긴 부끄러운 유산 - "외환은행 이익의 대부분을 론스타는 배당으로 빼갔어요
성장의 싹을 잘라낸 거죠… 영업점엔 발신자 확인도 안되는 전화기…
지폐 세는 기계엔 먼지 폴폴 고객들이 어떻게 생각했을지"

잃어버린 고객 100만명 - "론스타 시절 고객 대거 이탈 위험 관리는 철저했지만
소소한 위험에도 거래 끊어… 공격 마케팅으로 다시 뛸 것"

원정 강의 듣던 대학생 - 가난 딛고 일어나 행시 수석 끌어주는 선배 없어
재무부 때 비인기부서만 돌아 민원인들에게 친절했더니 "별종이 왔다" 소문 돌기도

"은행장 취임 후 겨우 9개월 지났는데, 몇 년은 한 것 같습니다."

잘나가는 경제 관료에서 국책은행장(기업은행장)으로 변신했다가 다시 시중은행장으로 탈바꿈한 윤용로(57) 외환은행장. 관료 시절부터 알고 지낸 그는 언제 만나도 여유와 위트가 넘치는 인물인데, 이날 표정은 과거의 그 표정이 아니었다.

그는 지난 2월 하나금융그룹이 우여곡절 끝에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로부터 외환은행을 인수한 뒤 첫 행장을 맡았다. 그는 론스타가 외환은행에 남긴 '상흔(傷痕)'을 지우고, 조직을 새로 추스르느라 고민이 깊은 듯했다.

"론스타가 경영하던 시절 외환은행은 속으로 골병이 많이 들었습니다." 그는 요란한 카리스마는 없지만, 솔선수범하는 리더십으로 직원들의 자발적인 헌신을 이끌어내 '부드러운 승부사'란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그는 론스타의 9년 집권 동안 외환은행의 성장 잠재력이 훼손된 게 못내 아쉬운 모양이었다.

◇외환은행 잠재력 훼손 아쉬워

―론스타가 어떤 악영향을 남겼나?

"이익의 대부분을 배당으로 빼갔다. 2006년부터 2011년까지 6조원의 당기순이익이 생겼는데, 이 중 3조원을 배당으로 돌렸다. 국내 은행은 자기자본의 25%까지만 특정 기업에 대출해 줄 수 있다는 동일인 여신한도 규제를 받는다. 만약 외환은행이 이익금으로 자본금을 2조원만 더 쌓았다면 20조원의 대출을 더 늘릴 수 있었는데 그렇게 하질 않았다. 이익을 배당으로 다 빼가는 바람에 성장의 기회를 제 발로 차버린 셈이다."

―재투자를 안 해 생긴 문제점은?

"예를 들어 영업점 전화기를 교체하지 않아 발신자 확인도 안 되는 구형 전화기가 남아 있고, 지폐를 세는 기계도 너무 낡아 돈을 세면 먼지가 풀풀 났다. 다른 은행에선 영업점 창구 직원 책상 위에 스캐너가 있어 고객이 내민 주민증을 바로 그 자리에서 스캔해 돌려줄 수 있는데, 외환은행 지점엔 스캐너가 한 대밖에 없어 직원이 고객 주민증을 들고 왔다 갔다 해야 했다."

―조직 문화에 남긴 폐해는?

"사업 부제로 조직을 잘게 쪼개 칸막이를 친 조직 문화를 10년 가까이 유지하다 보니 은행에 '모래알 문화'가 자리 잡았다. 행장이 된 직후에 대외 봉사활동 일환으로 남한산성에 직원들과 함께 쓰레기 줍기 행사에 갔다. 가면서 '나만 초면이니 좀 서먹하겠다'는 걱정을 하고 갔는데 가서 보니 전혀 안 그랬다. 120명쯤이 와 있었는데, 모두 20~30명 단위로 끼리끼리 모인 채 말도 잘 않고 있어서 내가 중간에 끼어도 전혀 서먹하지 않았다. 7월부터 사업 부제를 완화해서 지금은 조직 분위기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론스타의 긍정적인 유산은 없나?

"외국계 회사라 규정을 준수하는 건 철저히 지켰으며 위험 관리가 철저했다. 하지만 이런 점이 결과적으로 은행에 도움이 안 됐다. 2008년 금융 위기 때 조금이라도 위험해 보인다 싶은 기업들은 거래를 모두 끊었는데 이것이 은행의 성장 잠재력을 많이 훼손했다."

300억원 돈다발 앞에… 윤용로 행장이 외화 더미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 촬영을 돕던 한 직원은 “많지 않아 보이지만 달러·유로·엔화가 모두 고액권이라 우리 돈으로 치면 300억원쯤 된다”고 설명해줬다. /이태경 기자
◇다른 은행들 대출 줄일 때 오히려 늘려

―외환은행장으로 오게 된 배경은?

"기업은행장을 그만둔 지 얼마 안 됐을 때 김승유 회장의 제안을 받았다. '(국책은행과 달리) 제약이 없는 시중은행장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환은행은 특별한 인연이 있기도 했다. 1989년 재무부 사무관 시절 은행과에 배속됐을 때 처음 받은 임무가 특수법인이던 외환은행을 시중은행으로 만드는 민영화 작업이었다. '불교 신자로서 이것도 인연인가보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직 하나금융그룹과의 시너지 효과가 잘 안 보인다는 지적이 있다.

"은행은 거대한 항공모함 같아 방향을 바꾸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CD·ATM(현금입출금기) 공동 사용, 카드 가맹점망 공동 이용, 금융상품 교차판매 등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외환은행이 5년간 독립경영을 하기로 돼 있고,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이 조직 문화가 워낙 다르기 때문에 융합에 시간이 필요하다. 최근엔 두 은행과 동시에 거래하는 기업을 하나은행장과 함께 방문하고 있고, 외화 조달창구 단일화 등 시너지를 내는 방법을 다각도로 찾고 있다."

―기업은행장 시절 글로벌 금융 위기가 닥쳐 다른 은행들이 중소기업 대출을 줄일 때 대출을 공격적으로 늘려 4위 은행으로 도약했다. 외환은행에서도 2X카드, 고금리 적금 등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는데, 불황기에 무리수 아닌가

"외환은행이 새롭게 뛰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론스타가 주인이던 시절 마지막 3~4년간 고객이 100만명이나 이탈했다. 잃어버린 고토(古土)를 회복하는 게 급선무다. 2X카드나 고금리 예금은 직원들에게 영업 마인드를 다시 일깨우는 마중물 같은 의미가 있다."

◇명문대 떨어진 후 고시 수석 합격으로 인생 반전

―명문대 출신도 아니면서 고시에 수석 합격했다.

"명문대에 떨어졌을 때 어머니가 방바닥에 주저앉아 우셨다. 40세에 혼자가 된 어머니는 아들 둘 뒷바라지를 위해 중국집, 당구장 등 안 해본 일이 없으셨다. 장학금을 받고 외대 영어과에 진학해 독학으로 고시 공부를 했다. 처음엔 외무고시를 생각했는데, 장남으로서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야겠기에 행정고시로 진로를 바꿨다. 1977년 경제학 공부를 위해 연세대에 가서 미시·거시경제 수업을 청강하기도 했다. 기업은행장을 하던 2009년에 연세대에서 재학생을 상대로 강연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수업료 안 내고 청강을 했으니 오늘 빚 갚는 기분으로 왔다'고 말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행시 수석으로 모두가 선망하던 재무부 공무원이 된 후엔 승승장구했다. 명실상부한 모피아의 적통이 아니냐.

"한국외대 영어과 출신이라 나는 '가짜 모피아'다(웃음). 행정고시에 합격했는데도 끌어주는 동문 선배가 없어 재무부에 들어가서도 오랫동안 비인기 부서만 돌았다. 변방만 돌다 공무원 입문 10년 만에 실세 부서라는 이재국 은행과로 옮겼다. 은행과로 옮기니 똑같은 일을 하는데도 엄청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당황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도약의 발판이 거기서 마련됐나.

"국고국에서 늘 하던 식으로 민원인들에게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하면서 친절하게 대하니까 금융가에서 '이번에 은행과에 별종이 왔다'는 식의 소문이 돌았다. 경제부처 공무원은 맨날 군기만 잡는 사람들로 생각하다 나 같은 사람이 들어오니 인상적으로 봤던 모양이다. '공무원은 항상 대안을 갖고 말해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규성 전 장관을 롤 모델 삼아 열심히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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