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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건 조회 2,033회 작성일 2010-05-28 19:33
이광환(58회)교우, 만년 꼴찌 서울대 야구팀 감독 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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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환씨, 만년 꼴찌 서울대 야구팀 감독 맡아


프로야구 OB 베어스(1989~90년)와 LG 트윈스(1992~96년, 2003년), 한화 이글스(2001~2002년), 히어로즈(2008년) 감독을 역임한 이광환(62)씨가 순수 아마추어 팀인 서울대 야구부 감독으로 내정됐다.

이광환씨는 "서울대로부터 감독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수락했다"고 밝혔다. 

중·고교 시절에 선수로 등록한 경력이 없는 일반 학생들로만 구성된 서울대 야구팀에 프로 출신 지도자가 부임하는 것은 처음이다. 

서울대는 1977년 야구부가 재창단된 후 27년간 1무199패를 당하다가 2004년 대학야구 추계리그 예선에서 송원대를 상대로 국내 무대 첫 승을 거둬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현재 야구부원은 20명이며, 2005년부터 다시 56연패 중이다.

이씨가 서울대 야구부를 맡게 된 것은 한국야구위원회(KBO)와 서울대가 공동으로 설립하는 야구 전문 지도자 육성 프로그램인 '베이스볼 아카데미'의 초대 원장에 선임된 것이 계기가 됐다. 

이날 서울대와 KBO 간 협약식에 참석한 이광환씨는 "보수는 전혀 받지 않는다. 어차피 서울대에 자주 오게 된 만큼 성의껏 학생들을 지도할 생각"이라며 "국내 최고 엘리트 학생들이 야구를 더 사랑하게 된다면 야구인으로 더 바랄 게 없다"고 했다. 

KBO 육성위원장과 여자야구연맹 부회장을 역임하며 야구 저변 확대에 열정을 쏟아온 이씨는 "서울대는 교내 야구장이 협소하고 맨땅이어서 지도에 어려움이 많다. 기업 등 각계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했다



[박동희의 야구인] 

이광환과 인사이드 피치

야구계를 떠나 야구의 씨앗을 뿌리는 일에 전념하고 있는 이광환 전 히어로즈 감독
(사진=스포츠춘추)


남을 때와 떠날 때를 아는 것. 현자(賢者)는 알지만, 범인(凡人)은 모른다. 현자는 남아야 할 때 남고, 떠날 때 떠난다. 

범인은 남아야 할 때 남고, 떠나야 할 때도 남는다. 

감투가 써진 자리나 애착이 가는 일이라면 더 극명하다.

여기 떠나야 할 때 떠난 이들이 있다. 이광환과 인사이드 피치. 야구계의 유명인사다. 제 분야에서 최고였던 이들이다. 

한 이는 감독으로, 다른 한 이는 야구전문기자로 이름을 날렸다. 

먼저 이광환이다.

2008년 가을이었다. 

히어로즈 초대 감독이었던 이광환은 시즌 종료를 앞두고 몹시 바빴다. 

팀 재정비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당시 그런 그에게 팀이 내민 건 해임통지서였다. 

1990년 OB(두산의 전신) 감독에서 물러난 뒤로 생애 5번째 해고였다.

이광환은 묻지 않았다. 

따지지도 않았다. 

묵묵히 팀의 결정을 받아들였다. 

그리곤 홀연히 떠났다. 

떠나서는 다시 야구계에 기웃하지 않았다. 

그를 다시 만난 건 다음 해였다. 

그라운드가 아닌 학교 운동장에서였다. 

그는 명함 대신 손을 내밀었다. 

다른 야구인이었으면 급조한 명함이라도 내밀었을 터. 

그러나 ‘폼에 죽고 폼에 사는’ 일부 야구인의 허세를 그는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는 만나서 헤어질 때까지 ‘티볼’ 이야기만 했다.

“자네. 야구의 씨앗이 뭔지 아나? 

티볼일세. 티볼을 통해 아이들에게 야구가 얼마나 재밌는 스포츠인지 알릴 수 있고, 재능 있는 야구선수도 발굴할 수 있다네. 미국은 조지 H.W. 부시(시니어 부시)전 대통령, 일본은 가이후 도시키 전 수상이 티볼협회장을 맡고 있네. 

그네들은 티볼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았던 셈이네. 

우리도 말로만 ‘야구발전’을 외치지 말고, 당장 티볼 같은 야구의 씨앗을 뿌리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네.”

불순한 시선으로 본다면 한국티볼협회에서 대단한 감투라도 씌어줬을 듯싶다. “얼마나 받아먹었느냐?”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아니었다. 

무보수 고문(顧問). 

그것이 ‘티볼 전도사’ 이광환의 유일한 감투였다. 

게다가 그가 티볼에 관심을 기울인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었다. 

2007년 한국야구위원회(KBO) 육성위원장 시절부터 티볼 보급에 앞장섰다.

당시 그는 “야구도 아니고 무슨 티볼에 유소년 야구기금을 쓰느냐?”라는 주변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나 물러서지 않았다. 

티볼 도구를 일선 학교에 무료로 전달했다. 

초등학교 선생님들을 초청해 티볼 강습을 열었고, 자신이 직접 티볼 지도에 나섰다. 

그와 티볼협회의 노력이 통한 것일까. 

2008년부터 티볼은 초·중등 체육 정규과목으로 채택됐다. 

누구 하나 엄두도 내지 못했던 야구의 씨앗을 60살 야구소년 이광환이 뿌린 것이었다.

1월 23일 일본 와세다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아시아티볼연맹’ 창립식에 이광환은 협회 고문 자격으로 참석했다. 

1년여의 준비 끝에 어렵게 닻을 올린 국제연맹이었다. 

창립을 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뛴 그였다. 

언론을 이용해 자신의 업적을 과시할 만도 했다. 

하지만, 그는 달랐다. 일언반구도 없었다. 

우연히 참석한 <스포츠춘추>에 연맹의 필요성과 티볼이 얼마나 중요한 스포츠인지를 재차 설명할 뿐이었다.

 '이태일의 인사이드 피치' 262호 칼럼. 중앙일보에 마지막으로 연재된 칼럼이다

이번엔 인사이드 피치다. 인사이드 피치는 인명(人名)이 아니다. 

이태일 전 중앙일보 기자의 칼럼 꼭지명이다. 

정확히는 ‘이태일의 인사이드 피치’다. 20대 이상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인사이드 피치를 보며 감탄사를 터트린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인사이드 피치가 세상과 처음으로 만난 건 2000년 6월 13일이었다. 

첫 칼럼 제목은 ‘찬호 형, 나이트클럽 데려가 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의 김병현이 LA 다저스의 선배 박찬호에게 “나이트클럽에 데려가 달라.”라고 장난기 섞인 부탁을 했다는 내용의 칼럼이었다. 

언뜻 보면 가벼운 이야기였다.

그러나 전개와 주제는 딴판이었다. 이 칼럼에서 이태일은 메이저리그에서 활동하는 젊은 두 투수의 화려함 이면에 존재하는 외로움을 세밀하게 그렸다. 

외로움을 극복하고 대투수가 되려는 젊은이들의 노력과 의지 역시 감동적으로 표현했다. 

‘야구계의 숨은 이야기나 흐름을 독자들에게 소개, 프로야구의 깊은맛을 제공하려 한다.’라는 중앙일보의 취지에 적격인 칼럼이었다.

이후 인사이드 피치는 야구계의 숨은 이야기를 넘어 폐부까지 들춰내는 날카로운 칼럼으로 한국야구 언론의 새장을 연다. 

그즈음 야구관계자들과 야구팬들 사이에서 인사이드 피치가 반드시 읽어야 하는 칼럼으로 통한 건 당연한 터.

언제고 계속 될 것 같던 인사이드 피치는 그러나 2006년 11월 10일 자 칼럼을 끝으로 중단된다. 

이태일의 퇴사와 함께 인사이드 피치의 운명도 262호로 막을 내린 것. 

월드컵, 올림픽 등 중요한 이슈가 있을 때를 제외하곤 한 주도 거르지 않았던 최장수 야구칼럼의 연재중단을 독자들은 크게 아쉬워했다.

이태일이 다시 펜을 든 건 그로부터 5개월 후였다. 2007년 3월 18일 <중앙선데이> 창간호에 ‘이태일의 인사이드 피치 플러스’란 이름으로 돌아온 것이다. 야구 현장을 떠났지만, 그의 오랜 경험은 유효했다. 야구팬들은 과거와 같이 그의 칼럼을 읽었고, 한 주마다 찾아오는 즐거움을 놓치지 않았다.

그러던 지난해 12월. 이태일은 ‘인사이드 피치를 언제까지 쓸 것인가?’를 두고 고민했다. 

어쩌면 그이기에 가능한 고민이었다. 

‘기사든 칼럼이든 취재가 수반되지 않는 글은 글자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믿던 그였다. 

기자 시절 누구보다 바쁘게 뛰어다닌 ‘현장주의자’인 그였다. 

그런 그에게 현장과 호흡하지 않는 인사이드 피치는 ‘기억’이라는 인공호흡기에만 의존하는 식물인간과 같았다.

주변에선 말렸다. “지금 칼럼도 좋은데 어째서 중단을 생각하느냐”는 소리가 대번 나왔다. “중앙일보 시절 인사이드 피치와 중앙선데이의 인사이드 피치 플러스를 합해 총 402호까지 왔으니 꼭 500호를 달성해달라”는 요청이 잇달았다. 

“당신이 아니라 당신 칼럼을 좋아하는 야구팬을 생각해달라”는 말로 연재중단을 만류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스스로의 존엄과 품위를 지켰다. 

결국, 2009년 12월 27일 자 칼럼을 마지막으로 연재를 중단했다. 

언제 다시 돌아오겠다는 말을 남기지 않은 채 인사이드 피치는 정확히 10년 만에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이광환은 떠나야 할 때 떠나, 새로운 곳에 남아 야구의 씨앗을 뿌렸다. 

인사이드 피치는 남아도 될 때 떠났고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반면 야구계엔 떠나도 한참 전에 떠났어야 할 이들이 아직도 진을 치고 있다.

 심지어는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돼 떠났다가 총재 잘 만나 다시 돌아온 이도 있다. 

부정부패를 저지르고도 요직에 앉아있는 이가 있다. 

야구인 출신으로 좋다는 자리는 다 차지하고서도 무슨 욕심이 남았는지 야구계의 이익은 뒤로 하고 아직도  자리 지키기에만 정신이 없는 인사도 있다.

먼훗날. 야구는 떠날 때 떠난 이와 남아도 될 때 떠난 이만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가리켜 '현자(賢者)'라고 부를 것이다. 

어째서 이 나라 야구계는 이다지도 범인(凡人)들로 가득하단 말인가.

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The U.S. Field Artillery March(미육군 야전포병 행진곡) / John Phillip Sousa







※. 님에 의해 복사(이동)되었습니다. (2014-06-20 19:17:36)

댓글목록

(中) 작성일
서울대학교에 가면 만나뵐수 있겠네요 ?
no_profile 김희범(高072) 개인프로필 프로필 차단하기게시글 차단하기 작성일
중앙고 감독으로 계실 때 선수들 지도하던 열정으로 보면 어쩌면 이 광환 선배님은
프로보다 아마야구 지도자로 본인의 가치를 더 크게 발휘하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네요!
no_profile 이병설(高058) 개인프로필 프로필 차단하기게시글 차단하기 작성일
상당히어려운일에 손을잡으셨군요!!! 훌륭한지도력발휘하여 좋은성과 많이 기대하고,,,
본인도 즐거음을 만끽하시길 빌어마지않습니다.  제자가 잘하면 내가 잘하는 것이상으로 즐거움이 있는법이니까요!!! 기회가 되면 연습장에도 가보도록하겠습니다...58회이병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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