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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건 조회 1,650회 작성일 2010-07-23 12:01
‘거인(巨人)의 별’ 롯데 홍성흔(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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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巨人)의 별’ 롯데 홍성흔(86)
 

 

 

프로야구 올스타전은 잔치다. 잔치에는 언제나 주인과 손님이 있다. 초대한 이는 팬이고, 초대받은 이는 스타다. 팬은 좋아하는 선수를 보려고 초대장을 보낸다. 선수는 팬의 선택에 보답하려고 ‘별들의 축전’에 참가한다. 2010 프로야구 올스타 투표가 마감됐다. 과연 팬은 어느 선수에게 가장 많은 초대장을 보냈을까. 롯데 홍성흔(34)이다.

<스포츠춘추>에서 어떤 고난과 시련에도 희망의 새벽별을 노래했던 ‘거인(巨人)의 별’ 홍성흔을 만났다. 뛰어난 야구선수이자 훌륭한 성품을 지닌 시민으로서 그가 들려주는 솔직한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다.

# 세상은 그를 세 번 비웃었지만, 마지막에는 ‘그’만 남았다. 강원도 횡성 출신으로 가난한 야구소년이었던 그가 “대선수가 되겠다”고 꿈을 말했을 때 돌아온 건 격려가 아니라 차가운 비웃음이었다. 1999년 경희대 졸업 후 두산에 입단하며 “베어스의 주전포수가 되겠다”고 목표를 털어놨을 때도 그를 반긴 건 “김태형, 진갑용의 벽을 넘지 못할 것”이라는 조소였다. 2007시즌이 끝나고 “포수가 아니면 트레이드를 시켜달라”고 요구했을 때는 비웃음과 조소를 넘어 “이제 선수생활은 끝났다”는 비관적 전망이 줄을 이었다.

그러나 그는 2010년 7월 12일 한국야구위원회(KBO)가 발표한 프로야구 ‘올스타전 베스트10’에서 최다득표의 영광을 안으며 ‘별중의 별’이 됐다. 이스턴리그 지명 타자 부문에서 총 유효투표수 162만 2천472표 가운데 50.4%인 81만 8천269표를 획득하며 지난해 김현수(두산)가 기록한 종전 최다 득표 기록(76만 1천290표)을 훌쩍 뛰어넘으며 역대 최다 득표자가 된 것이다.

‘프로야구팬들이 가장 사랑하는 선수’ 홍성흔은 인고의 세월을 묵묵히 버텨온 이답게 올스타 최다득표의 영광을 팬과 팀에 돌렸다. 덧붙여 이내 환한 웃음을 지으며 “팬의 성화에 화답하는 의미로 깜짝 퍼포먼스를 펼칠 예정”이라고 털어놨다.

사실 홍성흔의 퍼포먼스는 이제 놀랄 일도 아니다. 대형 할인매장의 종업원처럼 친절과 미소로 팬 서비스에 온 힘을 다하는 그는 2009 올스타전에선 금발의 긴 머리 가발을 쓰고 타석에 나왔다. 그해 골든글러브 시상식 때는 가수 비의 ‘레이니즘’에 맞춘 멋진 춤을 선보이기도 했다. 과연 2010 올스타전엔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줄까.

지난해 광주구장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서 롯데 홍성흔(사진 맨 왼쪽)이 최다득표자로 뽑힌 두산 김현수(맨 오른쪽)의 기념패를 보고 있다. 올 시즌엔 김현수가 홍성흔의 기념패를 봐야할 판이다(사진=두산)

2010 올스타 팬 투표 최다 득표자가 됐다. 진심으로 축하한다.

(활짝 웃으며)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롯데 팬들께서 (마우스를 클릭하는 동작을 취하며) 열렬히 지지해주신 덕분이 아닐까 싶다. 팬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여기저기 취재해보니까 롯데 팬뿐만 아니라 다른 팀 팬들도 당신을 많이 뽑았더라. 특히나 친정팀 두산 팬들의 지지율이 높았다고 한다.

날 잊지 않으시고 지금도 응원해주시는 두산 팬들께 정말 감사한 마음이다. 다른 팀 팬들도 좋은 선수가 많았을 텐데 날 뽑아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당신의 시즌 성적이 뛰어났고, 팬서비스에도 늘 온 힘을 다했기에 최다 득표자가 된 듯싶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많은 이가 당신이 올스타전에 펼칠 퍼포먼스에 관심이 많다.

팬들이 원체 내 퍼포먼스에 관심이 많으시니까 부담이 큰 게 사실이다(웃음). 올스타 팬 투표 1위에 뽑힌 것도 ‘이번엔 홍성흔이 어떤 퍼포먼스를 선보일까’하는 팬들의 관심이 표로 연결됐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막상 최다득표자가 되고 나니까 (숨을 크게 내쉬며)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가능한 한 재밌으면서도 경기에 지장을 주지 않는 퍼포먼스를 준비 중이다.

지난해 광주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선 금발 가발을 쓰고 나왔다.

금발 가발은 사연이 있다. 2009시즌을 앞두고 미국 사이판으로 전지훈련을 갔을 때 동료인 조성환 선수와 함께 쉬는 날 마트에 갔다. 거기에 금발 가발이 있기에 둘이서 샀다.

남자 둘이 금발 가발을 샀다라, 이거 심상치 않다.

(양손을 흔들며) 불건전한 상상은 하지 마시라. 둘이서 금발 가발을 사면서 “누구든 올스타에 뽑히면 이걸 쓰고 나가자”고 다짐했다.

하지만, 지난해 올스타전 때는 당신만 가발을 쓰고 나왔는데.

난 잘 간직하고 있어서 쓰고 나올 수 있었다. 그런데 조성환 선수는 잃어버렸다고 했다. 지금도 진짜 잃어버린 건지 창피해서 잃어버렸다고 한 건지 의문이다(웃음). 어쨌든 난 쓰고 나와서 올스타전 때 좋은 반응을 얻었다.

2010 올스타전 때는 어떤 퍼포먼스를 펼칠 예정인가.

영업비밀이라 공개하면 안 되는데(웃음). 이 기사 언제 나오나.

7월 23일 올스타전 하루 전에 나간다. 부담되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된다.

숨길 게 뭐 있겠나. 약간만 공개하면….

공개하면?

유니폼에 주목해주기 바란다. 특히나 유니폼 상의 등 부분을 지켜봐 달라. 올스타전에 맞춰 유니폼 상의를 특별 주문제작했다. (주 : 홍성흔은 장시간 유니폼을 어떻게 디자인했는지 설명했다. 야구에 대해 말할 때만큼이나 그의 표정은 진지하고 해맑았다)

특별 주문제작? 기대가 된다.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다소 염려되는 게 있다.

뭔가.

올스타전에서 많은 선수가 나처럼 퍼포먼스를 펼치면 자칫 경기가 지저분해지고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나도 웬만하면 퍼포먼스를 하더라도 가능한 경기의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한다. ‘경기에 방해되지 않으면서 의미 있는 퍼포먼스가 뭘까’ 고민하다가 결국 유니폼 퍼포먼스를 생각해냈다.

유니폼 말고도 비장의 퍼포먼스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안다.

음, 내 턱에 집중하길 바란다.

턱?

그렇다. 넥센 마스코트 ‘턱돌이’가 올스타전에 맞춰 뭘 준비 중이라고 했다. 턱돌이와 상관없이 나도 (턱을 만지작거리며) 이 턱에 포인트를 줄 예정이다.

지난 시즌엔 금발 가발을 썼으니 이번엔 수염을 길러 거기다 염색을 하면 재밌겠다.

(갑자기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

홍성흔은 '긍정적인 오버맨'으로 유명하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해 팬들을 기쁘게 하면서도 절대 상대팀 선수들을 자극하는 법이 없다(사진=롯데)

간혹 ‘우리가 야구를 너무 엄숙하게 대하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당신의 퍼포먼스는 야구가 얼마나 유쾌한 공놀이인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생각한다.

같은 생각이다. 어느 정도 성적을 내는 선수라면 적당한 선에서 퍼포먼스를 펼쳐 팬들을 기쁘게 해야 한다. 관건은 수위조절이다. (입맛을 다시며) 하지만, 그게 참 어렵다.

좋은 말이다. 퍼포먼스가 지나치면 ‘오버’가 되고, 오버에는 대가가 따르게 마련이다. 과거 강귀태(넥센)가 홈런을 치고 기쁜 나머지 ‘방방’ 뛰면서 홈플레이트를 밟은 적이 있다. 다음 타석에서 예외 없이 빈볼이 날아왔다. ‘긍정적 오버맨’으로 유명한 당신도 빈볼의 위기가 있었을 듯싶다.

다행히 한 번도 없었다. 좀 오버해도 상대팀 투수들이 빈볼을 던진 적은 없었다. 솔직히 프로 1, 2년 차 때는 뭘 모르고 오버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눈치가 보이더라. 두산에 있을 때 미 메이저리그 출신 외국인 선수들이 ‘해도 되는 오버’와 ‘해선 안 되는 오버’를 조언해준 것도 도움이 됐다. 그때부터 상대 투수를 자극하지 않는 선에서 오버했다. 아마도 그런 이유 때문에 상대 투수들도 “쟤는 오버는 확실한데 우릴 자극하려고 하는 건 아니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여기다 프로 경력 12년 차가 되면서 내 본심을 잘 아는 선·후배가 늘어난 것도 오해를 사지 않는 이유 같다.

당신의 뒤를 잇는 ‘긍정적 오버맨’이 많아질수록 야구팬은 늘어나고 야구는 더 재밌어질 것이다. 당신이 생각하는 ‘긍정적 오버맨’의 후계자는 누군가.

글쎄. (한참 생각하다가) 삼성의 오정복? (오)정복 이는 신인답지 않게 무척 활기차다. 뭐랄까. 도마 위에 올려진 생선처럼 몸놀림이 ‘파닥파닥’하다고나 할까. 눈빛도 늘 살아있다. 앞으로도 상대 선수를 자극하지 않는 범위에서 팬들을 즐겁게 해줬으면 한다.

홍성흔이 프로에 입단한 뒤 좋은 포수로 성장하기까지 김경문 감독(사진 왼쪽)은 코치시절부터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트레이드 문제로 둘 사이가 멀어지긴 했지만, 진실 앞에서 오해는 오래가지 않았다. 홍성흔은 김경문 감독의 혜안에 감사해한다(사진=두산)

# 2007년 겨울은 추웠다. 목에 커다란 아이스크림 덩어리가 걸린 기분이었다. 그때 홍성흔은 모교인 경희대에 있었다. 그곳에서 후배 야구부원들과 합숙하며 차디찬 겨울을 보냈다.

유명 프로야구 선수가 대학 야구부에서 합숙한 이유는 간명했다. 이전의 기량을 회복하기 위해서였다. 그해 홍성흔은 타율 2할6푼8리, 5홈런, 39타점을 기록했다. 1999년 프로에 데뷔하고서 최악의 시즌이었다. 무엇보다 문제였던 건 경기수였다. 그해 홍성흔은 고작 80경기밖에 출전하지 못했다.

하지만, 정작 홍성흔이 합숙을 결정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주전 포수 자리를 되찾기 위해서였다. 그해 홍성흔은 후배 채상병(현 삼성)과의 주전 경쟁에서 밀려 포수 마스크를 벗었다. 2004년 이후 해마다 도루저지율이 낮아진 게 화근이었다. 잔부상이 문제였지만, 송구 스트레스로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이유도 있었다.

그러나 2005년부터 외야수 전향을 권고했던 김경문 감독은 “홍성흔은 타격에 전념하는 것이 팀이나 자신을 위해 더 유익하다”며 더는 포수로 쓸 계획이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홍성흔은 김 감독의 권고에 동의하기 어려웠다. 야구를 시작한 이래 줄곧 포수만 맡던 그였다. 뒤늦은 외야수 변신이 선수생활에 득 보단 실이 될 게 자명했다. 김 감독을 만난 홍성흔은 트레이드를 요청했다. “두산에서 외야수로 뛰느니 다른 팀에서 포수로 뛰고 싶다”고 솔직한 속내를 털어놨다. 하지만, 김 감독은 코치 시절 자신이 가르친 제자의 요구를 ‘못 들은 것’으로 했다.

결국, 홍성흔은 2008년 2월이 되도록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되지 못했다. 두산과의 재계약도 차일피일 미뤄졌다. 이즈음 홍성흔은 은퇴를 생각했다. 그의 야구인생에 가장 큰 위기가 닥친 때였다.

2007년 겨울, 당신이 경희대와 배재고에서 혼자 연습하던 때가 기억난다.

(길게 숨을 내쉰 뒤) 정말 힘들었던 때다. 경희대 야구부에서 후배들과 합숙하고, 히터 하나 없는 그 추운 배재고 비닐하우스에서 혼자 스윙과 송구연습하면서 세월을 보냈다. 하루는 몸도 마음도 지쳐 아내한테 “아무리 생각해도 탈출구가 없어. 여기서 야구 그만둬야 할 것 같아. 우리 장사나 하자”하고 말했을 정도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그때까지 쌓아올린 게 정말 아까웠다. 그즈음 아내가 들려준 조언이 큰 힘이 됐다.

무슨 조언이었나.

“여보,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당신은 떳떳하니까 지금까지처럼 열심히 사는 것만 보여주면 돼요. 맛있는 거 먹고 아이도 갖으면서 우리 마음 편하게 살아요”라고 했다. 그런데 세상에! 그 기간에 정말 첫 애를 가졌지 뭔가(웃음).

2007년 연말 두산에 트레이드를 요구했다. 프랜차이즈 스타의 갑작스러운 트레이드 요구로 두산이 발칵 뒤집혔던 게 기억난다.

김 감독님을 찾아가서 “감독님께서 내년에 저를 포수로 기용할 생각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만약 감독님 의중이 그러시다면 저를 트레이드해주십시오”라고 말했다. 김 감독님께선 “성흔아, 너와 팀이 모두 잘되자고 하는 거니까 이참에 외야수로 포지션을 변경해라. 내가 최대한 밀어주겠다”면서 설득하셨다.

사실 트레이드 요구는 김 감독님과 나만 아는 비밀스런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게 ‘김경문 감독과 홍성흔 불화’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실리면서 확대 재생산됐다. 그 때문에 감독님과의 사이도 어색해졌다. 지금 생각해도 불화는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당시 포수에 집착한 결정적인 이유는 역시 포수로 FA(자유계약선수) 계약을 맺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 아니었나.

부정하지 않겠다. 외야수보단 포수로 FA 계약에 성공하는 게 현실적으로 큰 이익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그래 욕심이 있었다.

욕심이 아니다. 2006년 진갑용(삼성)이 3년 계약을 맺으며 계약금 8어ㄱ 원, 연봉 5어ㄱ 원씩 15어ㄱ 원, 매년 옵션 1어ㄱ 원씩 최대 26어ㄱ 원을 받았고, 조인성(LG) 역시 2007년 LG와 4년 계약을 하면서 최대 34어ㄱ 원을 받는 초대형 계약에 성공했다. 통산 올스타 베스트 10에 5번이나 뽑힌 당신으로선 당연한 생각이었다. 어쨌거나 얼마 지나지 않아 김 감독이 당신의 트레이드 요구를 받아들였다.

김 감독님이 나를 설득하려고 애를 쓰셨다. 하지만, 내 뜻이 원체 확고하다 보니 “알았다. (트레이드를) 한번 시도해보자. 그런데 쉽진 않을 거야”하며 내 의사를 존중해주셨다.

하지만, 트레이드는 이뤄지지 않았다.

2008년 시범경기를 앞두고 두산 김태룡(현 본부장) 부장이 찾아오셨다.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걸 알면서도 작은 희망을 걸었는데 “성흔아, 아무리 찾아봐도 마땅한 트레이드 카드가 없다”면서 “이제 1군에 합류하라”고 조언했다. 당시 두산에서 넥센과 접촉해 나와 이숭용 선배를 트레이드하는 안을 고민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그 역시 불발로 끝났다.

 홍성흔은 2001년과 2004년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리그 최고의 포수였다(사진=두산)

트레이드 불발 뒤 팀에 합류했다.

생각해보니까 이러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결국, 전해 연봉 3억 1천만 원에서 40%나 삭감된 1억 8천만 원에 재계약했다.

그때부터 다시 신인이 된 것처럼 뛰었다. 지금도 기억나는데 아마 2008년 4월 15일이었을 거다. 2군에 있는데 1군에 포수가 없다고 나를 1군으로 불렀다.

코치진에서 “주말 문학 SK 3연전의 세 번째 경기에 투입될 예정”이라고 했다. 토요일 밤 경기도 이천 베어스타운에서 인천으로 쏜살같이 갔다.

김광수 수석코치님이 그날 밤 “열심히 하라”는 의미에서 장어를 사주셨다. 그런데 이게 웬걸. 장어가 먹는 족족 목 안에서 걸리는 거다. 전혀 소화가 안 됐다.

그토록 바라던 1군행이었는데 어째서….

다음날 선발로 포수로 출전할지 외야수로 나갈지 걱정이 돼 도통 소화가 되지 않았다.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그때 내 몸무게가 몇 킬로그램이었는지 아나? 83킬로그램이었다. 지금보다 10킬로그램이나 빠진 상태였다. 그렇게 마음고생이 심했다.

그래 포수로 출전했나.

다행히 포수였다.

결과는?

(환하게 웃으며) 안타 3개 치고, 도루도 3개나 잡았다. 경기가 끝나고 김 감독님이 “정말 대단하다. 열심히 하라”고 등을 두들겨 주셨다.

단번에 주전포수 자리를 되찾았을 것 같은데.

끝까지 들어봐라. 하루 쉬고 다음 경기에 주전포수로 출전했는데 (한숨을 내쉬면서) 에이고, 4타수 무안타에 도루를 5개나 허용했지 뭔가. 이때부터 자신감이 ‘확’ 떨어졌다.

음.

경기 끝나고 김 감독님께 찾아갔다. 찾아가서 “감독님 죄송합니다. 포수 그만두겠습니다”하고 말씀드렸다.

포수를 그만두겠다고? 체력이 문제였나.

체력은 전혀 문제가 없었다. 투수 리드, 블로킹도 자신 있었다. 그러나 송구가 안 됐다. 송구 걱정이 되니까 투수 리드, 타격 전부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경기 집중도도 떨어지고.

김 감독이 뭐라고 하던가.

“그래 나도 포수 해봐서 아는데 나이 먹고 포수 하기 정말 어렵다. 가뜩이나 넌 발목수술과 팔꿈치 뼛조각 수술까지 했기 때문에 더 어려울 수 있다. 넌 타격자질이 뛰어나니까 지금부터 방망이 쳐라”고만 하셨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포수에서 지명 타자로 완전히 전향하면서 그해 지명 타자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한 시즌만 뛰면 FA였다. 실망이 컸을 법도 하다.

돈 욕심을 부릴 처지가 아니었다. 계속 포수를 하다간 내 야구인생이 바보로 끝날 것 같았다. 주변에선 “너는 계속 포수를 봐야 한다.” “김 감독이 널 죽이려 한다”는 소리가 있었지만, 그건 자세한 정황을 모르고 하는 소리였다. 돌아보면 더는 포수를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김 감독님과 나만 알고 있던 거다. 오히려 지체하지 않고 빨리 결정한 게 이후 선수생활에 큰 도움이 된 것 같다. 만약 그때 결정을 미뤘다면 지금쯤 어정쩡하게 선수생활을 끝냈을지 모른다.

2008시즌이 끝나고서 드디어 FA가 됐다. 많은 이가 두산 잔류를 점쳤으나, 현실은 달랐다. 일부에선 두산이 당신을 잡는 데 소극적이었다는 평을 하기도 한다.

다 지난 일이지만, 사실 내게 몸값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두산에 아쉬운 게 있다면 FA를 신청하고 소속구단과의 우선협상 마지막 날에야 비로소 두산 관계자가 나를 찾았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날 잡을 의사가 있었다면 우선협상 마지막 날 오후 6시가 돼서야 불렀겠는가. 만약 좀 더 일찍 날 찾았다면 지금도 두산 유니폼을 입고 있을 거다. (헛기침을 한 뒤) 역시 지난 일이지만, 당시 두산에서 제시한 옵션도 상당히 마음에 걸렸다. 그 옵션은 배리 본즈가 아니면 따낼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래도 난 마지막까지 “조용히 다시 대화를 통해 계약을 조율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두산의 연락은 없었다.

누가 뭐래도 당신은 두산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10년간 정들었던 팀을 떠나며 감회가 남달랐을 텐데.

2001년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게 두고두고 생각났다. 프로에서 몇십 년간 뛰면서 우승반지 한번 못 끼고 은퇴하는 선수들이 좀 많은가. 그런 점에서 난 행운아였다. 그 좋은 팀에서 10년이나 있었으니 행운이 아니고 뭐겠는가.

홍성흔의 매력은 거칠면서도 부드럽고, 낙천적이면서도 전투적이란 데 있다. 그라운드 안에서만큼은 누구보다 파이팅이 넘친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굿바이 두산! 프랜차이즈 스타의 인생유전

두산에서 자유계약선수(FA)가 된 홍성흔이 ‘거인 군단’으로 둥지를 옮겼다.

롯데는 27일 홍성흔과 올해 연봉 1억 8천600만 원에서 50% 인상된 2억 7천900만 원에 1년 계약했다고 밝혔다.

롯데 관계자는 “팀의 공격력을 강화하기 위해 홍성흔을 영입했다”며 “지명 타자나 포수, 1루수로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롯데는 출전 경기와 타율, 타점 등에 따른 세부 옵션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옵션을 달성하면 1억 원이 넘는 보너스를 지급하고 내년 연봉에 이를 반영하기로 했다.

홍성흔은 “나의 가치를 인정해 준 롯데에 감사한다. 야구 도시 부산을 연고로 하는 롯데의 일원이 돼 영광이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내년에 롯데의 4강 진출은 물론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이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홍성흔에게 부산은 낯설지 않다. 아내 김정임(35) 씨의 고향이 부산 영도구이기 때문. 파이팅 넘치는 플레이로 ‘오버맨’으로 불리는 그는 “원정 때 사직구장의 열띤 응원에 매료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1999년 두산에 입단한 홍성흔은 통산 타율 0.291에 107홈런 594타점을 기록 중이다. 올 시즌 정들었던 포수 마스크를 벗고 지명 타자로 뛴 그는 타율 0.331(타격 2위)에 8홈런 63타점으로 녹슬지 않은 실력을 과시했다. 시즌 초 마해영의 ‘깜짝 활약’ 이후 내내 마땅한 지명 타자를 찾지 못한 롯데로서는 홍성흔의 영입이 반갑다.

반면 구단에 “홍성흔은 꼭 잡아 달라”고 부탁했던 김경문 두산 감독은 그의 이적 소식에 적잖이 실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 2008년 11월 28일 자 동아일보 황태훈 기자 -


10년간 정들었던 두산을 떠나 롯데로 유니폼을 갈아입었다. 롯데는 어떤 팀이었나.

롯데란 팀을 잘 알지 못했기에 입단 초반엔 분위기를 익히는데 열중했다. 따라서 롯데가 어떤 팀인지 차분히 분석할 겨를이 없었다. 다만, 프로경력 10년 차 선수로서 느낌을 말한다면 당시 롯데는 야구 잘하는 선수들은 많지만, 자기 잘난 맛에 야구하는 선수들이 더러 눈에 띄는 팀이었다. 물론 지금은 전혀 그렇지가 않지만(웃음).

두산에 있을 때 팀의 리더로서 후배들을 잘 이끈다는 평을 들었다. 롯데가 당신을 영입한 주요 배경도 리더십을 높이 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적한 팀에선 베테랑도 기존 선수들과 동화하는 게 쉽지 않다. 그런데 놀랍게도 당신은 오자마자 팀의 리더가 됐다.

난 솔직히 후배 가운데 이대호, 박기혁, 김주찬한테만 뭐라 한다. 그 가운데 (이)대호한테만 화를 낸다. 누가 잘못해도 대호한테 뭐라 그러고, 대호가 잘못하면 또 대호한테만 뭐라 그런다(웃음). 왜냐? 대호만 다그치면 다른 선수들도 다 따라 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호는 특별히 잘해주고 싶은 정말 좋아하는 후배다.

지난해 6월 7일까지 롯데는 꼴찌였다. 6월 중순 들어 상승세를 탔으나 6월 말부터 7월 초까지 6연패를 기록하며 4위 삼성에 6경기 차로 뒤진 5위에 그쳤다. 당시만 해도 롯데가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리라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어느 롯데 선수에게 들으니 당신과 조성환이 6연패를 기록한 직후 선수들을 모아 미팅을 했다고 한다. 그 자리에서 당신이 불같이 화를 냈고, 그 미팅이 약이 됐는지 이후 롯데가 기적 같은 연승행진을 펼쳤다고 한다.

그즈음 팀을 한 번 뒤집은 적이 있다. 아직 포기하기 이른 데 선수들의 마음이 나약해진 것 같았다. 올 시즌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롯데이고,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팬들이 사랑과 관심을 주는데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때도 대호에게 “네가 언제부터 롯데의 4번 타자였느냐”라면서 따끔하게 한마디 했다. 조성환 선수도 후배들에게 충고를 잘해줘 다시 한번 팀이 똘똘 뭉칠 수 있었다.

등번호 10번의 이대호와 등번호 49번의 홍성흔. 우리는 먼 훗날 두 타자가 함께 뛰었던 롯데 자이언츠를 역대 최강의 중심타선으로 기억할 것이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일전에 조성환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롯데도 이제 후배들이 선배들의 눈치를 보는 팀이 됐다”고. “건전한 위계질서가 확립됐다”고 말이다. 조성환은 그 공을 당신에게 돌리던데.

(단호한 표정으로) 야구는 선수가 홈런 많이 치고 타율이 높다고 팀 성적이 좋아지는 게 아니다. 야구단 같은 단체생활에선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것들이 뭉치고 화합을 이뤄야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선참들의 역할이 바로 그런 작은 것들을 뭉치게 하는 것이다. 롯데를 잘 보라. 선참들이 후배들을 잘 잡아주고 후배들이 선참을 잘 따라주니 팀이 얼마나 강해졌나. 롯데 성적이 갑자기 떨어지지 않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당신이 강조하는 팀워크를 듣자니 두산이 생각난다.

두산 선수들은 선참 어려운 걸 안다. 롯데 와서 보니까 여기는 야구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이 팽배한 것 같았다. 물론 프로는 자기만 잘하면 그만이지만, 그보다 우선하는 건 결국 팀이다. (잠시 말문을 닫았다가) 한번은 그런 소릴 들었다.

어떤?

“홍 선배는 왜 두산에서 하던 걸 롯데에 와서 하려는지 모르겠다”고. “우리는 우리식이 있는데 왜 자꾸 두산 스타일을 적용하려는 것이냐”고. 처음엔 섭섭했다. 나 역시 개인 성적만 잘 나오고, 옵션만 달성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솔직히 난 나보다 소속팀이 잘돼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는 사람이다. 팀원은 팀에 헌신적일 때 비로소 자신의 야구도 잘할 수 있다고 믿는 선수다. 이건 빈말이 아니다. 개인이 잘한다고 팀까지 잘 될 순 없지만, 팀이 잘되면 개인도 덩달아 잘 되는 게 야구다. 후배들한테 섭섭한 소릴 듣는 걸 두려워했다면 팀이 쉽게 무너지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은 어떤가.

지금은 선수들이 내 진정성을 알아주는 것 같다. 대호를 비롯한 후배들도 잘해주고 있다. 일전에 어느 인터뷰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 “이대호가 정말 달라졌다. 지난해보다 더 좋은 선수가 됐다”고 말이다. 막연한 덕담이 아니었다. 입에 발린 칭찬은 더욱 아니었다. 실제로 대호는 더 많이 겸손해지고, 이제는 솔선수범해서 후배들을 잘 챙기는 선배가 됐다. 특히나 요즘 대호를 보면 팀의 1패, 1패를 굉장히 아까워하는 게 한눈에 보인다.

선참의 목소리가 힘을 얻으려면 솔선수범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여기다 좋은 성적은 말할 것도 없다.

전적으로 맞는 말이다. 어느 팀이든 야구 잘하는 선참이 있어야 한다. 나도 성적이 나빴으면 목소리조차 내지 못했을 거다. 음, 나 같은 경우는 성적도 성적이지만, 로이스터 감독님과 코치님들 그리고 조성환 선수가 큰 힘을 실어줬기 때문에 목소리에 더 힘을 얻지 않았을까 싶다.

홍성흔과 조성환(사진 왼쪽에서 두번째)은 서로 다른 리더십으로 팀을 이끌고 있다. 롯데가 강한 이유는 존경받아도 마땅한 선참들이 있기 때문이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조성환의 이름이 나왔으니까 묻겠다. 조성환은 어떤 선수인가.

정말로 팀에 꼭 필요한 존재다. 조성환 선수는 팀원들이 정신적으로 해이해지지 않도록 매일같이 용기를 심어준다. 특히나 ‘포기’란 단어를 모르게끔 한다. 경기가 힘들고 지칠 때면 언제나 “괜찮다. 우린 할 수 있다”라며 동료를 격려한다. 내가 가끔 한 번씩 ‘펑’ 터트리면서 악역을 맡는 스타일이라면 조성환 선수는 어머니처럼 늘 다독거리는 스타일이다.

뜬금없는 질문 하나 하겠다. 조성환은 당신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꼬박꼬박 “홍성흔 선수”라고 한다. 당신 역시 조성환을 거론할 때 예외 없이 “조성환 선수”라고 부른다. 두 선수가 동기인 것으로 안다. 어째서 친구 사이인데 다른 팀의 낯선 선수를 대하듯 매번 ‘선수’자를 붙이는지 이유가 궁금하다.

조성환 선수와 나는 스타일이 다르다. 그러나 서로 장단점을 정확히 파악하면서 팀이 어려울 때마다 잘 뭉친다. 요즘도 조성환 선수가 날 불러 “팀이 어려운데 너와 내가 앞장서서 이렇게 해보자”하는 식의 말을 많이 한다. 정직하게 말하면 친구지만, “야, 오늘 우리 술 한잔하자”하는 사이보단 서로 최대한 존중하는 사이라고 보면 된다. (목소리에 힘을 주며) 조성환 선수는 내가 본 선수 가운데 최고의 리더다.

구도(球都) 부산은 모든 야구선수가 꿈꾸는 도시다. 부산에서 산 지 2년째다. 당신에게 부산은 어떤 도시인가.

부산은 ‘세상에 스포츠는 야구밖에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뭐랄까. 그래 부산팬에게 롯데 선수들은 게임캐릭터다. 진짜다. 우리는 부산팬이 만들어가는 선수다. 무슨 말인지 감이 오나? (감이 온다고 하자) 정말이다. 우리가 못하면 게임캐릭터를 대하듯이 “야! 이거밖에 못 해”하는 말이 나오지만, 조금만 잘하면 세상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만큼 우리를 소중하게 대한다. (흐뭇한 표정으로) 부산분들은 참 정이 많다.

‘롯데 선수는 부산팬이 만들어가는 게임캐릭터다.’ 의미심장한 표현이다.

사실 두산에 있을 땐 부산이 어마어마하게 큰 도시인 줄 알았다. 그러나 막상 부산에 오니까 도시 전체가 가족 같은 분위기였다. 가족이 날 가운데 두고 지켜보는 기분이랄까. 웃자고 하는 소리지만, 부산에선 어딜 가나 다 “홍성흔”이다. 처음 보는 분도 “홍성흔 니 좀 잘해라”라고 하시고 심지어는 어린 아이들도 날 보면 “홍성흔”하고 부른다.

그런 부산도 당신이 롯데에 입단하고 시즌 초 부진했을 땐 가차없었다.

2008년 4월만 해도 부산분들이 “반쪽짜리 선수를 뭐하러 데려왔느냐”는 소릴 많이 했다. 하지만, 그런 질책 때문에 살아남으려고 더 노력한 게 아닐까 싶다.

부산에선 어딜 가나 당신을 알아볼 것 같다.

서울에선 못 알아보는 분들도 계시지만, 부산에선 거의 다 알아보신다. 올해 들어선 더 많이 관심을 두고 봐주시는 것 같다.

어느 야구팬이 당신에게 꼭 물어달라는 질문이다. 혹시 부산에서 잘 가는 맛집이라도 있나.

맛집이라, 그게 궁금하시구나(웃음). 보자, 어디가 있을까. (잠시 생각한 뒤) 해운대 쪽에 ‘해성막창’이란 곳이 있다. 쉬는 날이면 간혹 그 집에 가곤 한다.

홍성흔은 후배 강민호에게 "그라운드 안에서 다른 팀 선수들과 지나치게 친하게 지내지 말 것"을 조언했다. 그의 경험에 비출 때 상대 선수와 지나치게 친하면 몸쪽 공을 던져야 할 때 주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진은 강민호가 대낮에 별을 세고 있는 장면(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5대5에서 만루홈런을 맞아 9대5로 패식이 짙은 상황 선두타자인 승화가 아웃되면서 1아웃..누가봐도 경기는 기울었던 상황이죠. 기적이라는 것이 일어날 수도 있겠지만 극히 낮은 확율...하지만 홍성흔은 그 상황에서도 살아있는 눈빛으로 공을 고르고 커트해내면서 볼넷을 얻어냈고 그리고 2루 도루를 감행하면서 투수를 괴롭히려고 애썼습니다.

저는 그장면을 보면서 아직 경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고맙기도 했지만 그 플레이를 통해서 팀 동료들에게 포기해선 안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자리에서 홍성흔이 그냥 휙휙 위두르고 삼진을 당한다해서 비난을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홍성흔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포기하는 것을 거부하고 최선을 다했죠.

그렇게 한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지지는 않았지만 모든선수가 홍성흔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경기에 임한다면 자이언츠는 강해질 수 있습니다. 부디 어제 홍성흔의 그 모습을 보면서 자이언츠의 다른 선수들이 많은 부분을 느꼈으면 좋겠네요. 수많은 자이언츠 팬들이 보고싶어하는 모습이 바로 그모습이었으니까요.

- 2010년 4월 21일 둠씨의 취미생활 -


1999년 프로에 첫발을 내딛고 지난해까지 11년 동안 당신의 통산 홈런은 119개였다. 20홈런을 친 적이 한해도 없었다. 그러나 올 시즌엔 벌써 22개의 홈런을 치고 있다. 7월 21일까지 장타율이 무려 6할5리다. 팀 동료 이대호 다음으로 높은데. 갑자기 장타가 늘어난 배경이 무엇인가.

음, 올 시즌 전까지 나도 나 자신을 잘 몰랐다.

나도 나 자신을 몰랐다라?

지난 시즌까지 난 그저 나 자신을 그저 잘 맞추는 타자 정도로만 알았다. 하지만, 로이스터 감독님과 김무관 타격코치님의 생각은 달랐다. 두 분은 틈만 나면 내게 “넌 장타자”라고 말했다. 특히나 김 코치님은 “성흔아, 넌 한해 홈런 20개 이상은 충분히 칠 수 있는 타자”라고 강조하셨다. 하지만, 난 장타를 욕심내면 큰일이 날 줄만 알았던 선수다.

10년 이상 같은 타격 스타일을 유지해온 타자라면 당신처럼 새로운 변화를 경계하게 마련이다.

결국, 김 코치님의 생각을 따르기로 했다. 실제로 연습 때 장타를 노리면 타구가 ‘펑펑’ 나갔다. 그런데 실전에 들어가면 ‘영’ 아니었다. 올 시즌 시범경기 때 기억나나? 얼마나 부진했나. 언론에서 “전해 타율 3할7푼1리를 기록한 타자가 뭐가 아쉬워서 변화를 주느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 것도 이해할만 했다. 심지어는 다른 팀 타격코치분들도 “너는 도대체 홈런을 몇 개나 치려고 스윙을 그렇게 크게 하느냐”며 고개를 갸웃하기까지 했다. 그래도 ‘언젠간 하나 맞겠지’하는 심정으로 스윙을 크게 했다.

위험한 도전일 수 있었다. 대타자 가운데 갑자기 타격 메커니즘이 바뀌면서 밸런스가 무너진 통에 오랫동안 고생한 이들을 자주 봤다.

나도 고민을 많이 했다. 타격폼은 큰데 공은 안 맞지, 설령 맞아도 하늘로 뜨기만 하지. 진짜 죽을 맛이었다. 그런데도 로이스터 감독님은 여전히 초구부터 자신감 있게 배트를 돌리라고 주문했다. 그러다 시즌 초 KIA전이었을 거다. 훈련했던 데로 크게 스윙을 했는데 약간 공이 빗맞았는데도 타구가 시커멓게 뜨는 거다. 그때부터 조금씩 감이 왔다. 뭐라고 할까. 숨어 있던 내 힘을 발견했다고 할까. 그러다 4월 7일 사직 LG 전에서 만루홈런을 치면서 자신감을 얻었다.

올 시즌 홍성흔은 타점기계다. '타격기계' 두산 김현수에 이어 새로운 기계가 출현했다(사진=롯데)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타자로서 타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진지한 표정으로) 타격은 물음표다. ‘이렇게 치면 잘 되겠구나’ 싶은데 실제론 잘 안 맞을 때가 있다. 어린 타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자기체형에 맞는 스윙을 하라는 거다. 그러려면 우선 자기가 어떤 타자인 줄 알아야 한다. 체구가 작은 타자가 홈런 스윙을 하면 안 되듯이 자기 체형과 스타일에 맞는 스윙궤도를 알아야 한다. 덧붙여 타석에 섰을 땐 볼 카운트에 맞는 스윙 역시 할 줄 알아야 한다. 좋은 타자가 되려면 2스트라이크에선 삼진을 당하면 안 된다. 욕심을 버리고 스윙을 짧게 해야 살아나갈 수 있다. 물론 상대 투수 연구도 많이 해야 한다.

당신은 당신에게 맞는 스윙을 찾았나.

앞에서도 말했지만, 나도 내가 어떤 타자인지 최근에야 알았다. (혼잣말을 하듯) 그래 타격이야말로 진정한 자아를 찾는 탐구의 길인지 모른다.

당신의 말을 들을수록 역시 좋은 타자가 나오려면 좋은 지도자가 옆에 있어야 할 것 같다.

(고개를 끄덕이며) 세상에서 완벽한 개인은 없다. 나도 마찬가지다. 로이스터 감독님과 김무관 타격코치님은 나 자신도 몰랐던 자아를 찾아주신 분들이다. 나 역시도 노력해서 진정한 자아를 발견했다. 하지만, 지금도 완성단계라고는 보지 않는다. 그저 어느 정도 변신에 성공한 정도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만족하면 더 나은 내일은 없다. 야구나 인생이나 1cm도 다르지 않다.

고타율은 그렇다손 쳐도 고타점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7월 22일 현재 당신은 97타점으로 이 부문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지금 흐름이라면 2003년 이승엽(요미우리)이 기록한 한 시즌 최다타점인 144타점 경신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한 시즌 56홈런과 144타점은 한국프로야구에서 20년 이내 깨지기 어려운 대기록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7월 20일 대전 한화전에서 타점을 기록하고 1루에 있는데 장성호가 그러더라. “형, 이러다 타점기록 깨겠는데요”라고. 그래서 내가 그랬다. “성호야, 나도 왜 이렇게 타점이 많은지 모르겠다”고(웃음). 프로야구 선수라면 누구나 야구사에 한 획을 그었으면 하지 않나. 나도 (이)승엽이 형의 대기록을 깨면 좋겠다. 하지만, 그 기록에 지나치게 집중하면 되레 타격 밸런스가 무너지는 등 역효과가 날 수 있다. 만약 144타점의 근사치까지 간다면 그때 욕심을 내 볼 참이다.

당신의 타점생산력을 보면 입이 쫙 벌어진다. 올 시즌 득점권 상황에서 당신은 107타수 47안타로 득점권 타율 4할3푼9리를 기록 중이다. 이렇게 득점권 상황에서 강한 이유는 무엇일까.

예전엔 득점권 상황에서 다소 머뭇거렸다. 그래서 커트 되는 공도 많았다. 하지만, 올 시즌은 득점권 상황일수록 자신 있게 휘두르다 보니까 타점이 많아진 게 아닌가 싶다. 득점권 상황에서 집중력이 더 높아지는 것도 있고.

득점권 상황에서 집중력이 높아진다는 게 정확히 무슨 뜻인가.

우리가 흔히 ‘자기암시’라고 하지 않나. 주자가 없을 때보다 득점권 상황일 때 난 더 잘할 수 있다는 자기암시를 나도 모르게 하는 것 같다.

롯데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모두가 회의적으로 봐도 한 사람, 홍성흔만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똘똘 뭉쳤다. 스윙을 한 뒤 사진처럼 오른손을 들어 환호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롯데의 한국시리즈 우승은 현실이 될 것이다(사진=롯데)

올 시즌 타격 전 부문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이것만은 꼭 손에 거머쥐고 싶다는 개인타이틀이 있다면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역시 타점이다. 그것도 144타점 이상으로 타점왕에 오르면 좋겠다. 생각해보라. 지금 같은 기회가 언제 또 찾아오겠나. 몇십 년 만에 한번 찾아올까 말까 한 기회다. (이)대호도 타점을 꾸준히 올리고 있기 때문에 선의의 경쟁을 통해서 팬들께 좋은 장면을 보여 드리고 싶다. 단, 타점왕이 아무리 욕심나도 팀에 해가 되는 행동은 절대 하지 않을 거다. (단호한 어조로) 타점 욕심 때문에 팀 배팅을 해야 하는데 삼진이나 먹고 더그아웃으로 걸어오는 일은 절대 없을 거다.

당신을 볼 때마다 ‘참 자기관리가 철저한 선수’라는 생각이 든다. 그 때문에 성적도 좋은 게 아닌가 싶은데.

프로선수라면 누구나 자기관리에 신경 써야 한다. 아니 신경 정도가 아니라 집중을 해야 한다. 올 시즌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보기엔 꽤 술을 좋아할 듯싶다.

(손사래를 치며) 나와 술은 궁합이 잘 맞지 않는다. 이상하게 술만 마시면 배가 아프다. 물론 마음먹고 마시면 곧잘 마신다. 시즌 끝나고는 가끔 즐기는 편이다. 그러나 가볍게 한잔할 순 있지만, 내 몸이 아프면서까지 마시고 싶진 않다.

롯데의 막강 중심타선. 카림 가르시아(사진 왼쪽부터), 이대호, 홍성흔(사진=롯데)

# 한 사람의 힘으로 팀이 얼마나 변화할 수 있는지 눈으로 확인했다. 홍성흔이 롯데로 오지 않았다면, 롯데는 지금의 롯데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 롯데 주장 조성환 -


정수근과 절친한 사이로 알려졌다. 요즘도 그런가.

(굳은 표정으로) 그렇지 않다. 근간에는 통화도 해본 적이 없다. 친한 사이였지만 인간적으로 나와 코드가 맞지 않는 것 같다. 그 정도로 하자.

대타자마다 롤모델이 있더라. 당신의 롤모델은 누구인지 궁금하다.

딱히 롤모델은 없다. 왜 그렇지 않나. 내가 존경하는 사람도 어느 순간 실망을 ‘확’ 느낄 수 있고, 아니다 싶었던 사람이 내일이면 존경스럽기도 하지 않나. 나는 존경하는 대상은 선후배를 가리지 않는다. (입술을 만지작거리다) 솔직히 난 후배 김현수를 보고 많이 배웠다. 타석에서의 사소한 동작부터 참 배울 게 많은 친구다. (뭔가 생각난 듯) 아, 요즘 들어 롤모델이 있긴 있다. 박정태 롯데 2군 감독님이다. 만나뵈면 뵐수록 참 배울 게 많은 분이다. 사람들한테 잘하는 것도 그렇고, 여러모로 인생에서 닮고 싶은 분이다.

지금껏 선수생활을 하면서 인상깊었던 타자가 있다면 누굴까.

내 주위엔 항상 무시무시한 타자들만 있었다(웃음). 김현수, 김동주(이상 두산), 이대호 등 최고의 타자들과 함께 뛰어왔다. 그 가운데 이대호가 참 대단한 타자가 아닐까 싶다.

이유가?

이대호의 스윙을 보라. 얼마나 부드러운가. 여기다 어느 코스로 공이 오든지 멀리 보낼 수 있는 강한 손목힘을 타고났다. 무엇보다 기복이 심하지 않다. 같은 타자로서 참 부러운 친구다.

갑자기 든 생각이다. 다시 포수를 해보고 싶은 생각은 없나.

왜 없겠나. 하고 싶다. (말끝을 흐리며) 정말 해보고는 싶은데….

해보고는 싶은데?

(조용한 목소리로) 망신만 당할 것 같다.

당신을 가리켜서 ‘감독감’이라고 하는 이들이 많다. 야구에 대한 열정이나 학습, 리더십을 높이 평가한 까닭이다. 반면 어느 코치는 “홍성흔이 은퇴하고 연예계에 진출하면 강호동 못지않은 스타가 될 것”이라고 했다. 만약 은퇴한다면 어느 쪽 길을 가고 싶나.

당연히 지도자다. 은퇴하고 나면 꼭 지도자의 길을 걷고 싶다.

그렇다면 타격코치와 배터리 코치 가운데 무엇을 선택하고 싶나.

음, 어려운 질문인데, 생각 같아선 다 해보고 싶다(웃음). (오랫동안 생각하다가) 사실 타격코치 쪽이 더 관심이 있긴 하다. 요즘 들어 ‘타격이 이런 맛이구나’하는 걸 느꼈기 때문인지 지금껏 타격코치님들이 내게 전수해준 것과 그간 축적해둔 작은 지식을 모아서 후배들에게 나름의 타격이론을 전달하고 싶다.

감독에 대한 꿈도 있을지 싶다.

물론 감독 욕심도 있다. 만약 감독이 된다면 선수들을 육성하는데 모든 정열을 바치고 싶다.

어떤 스타일의 감독이 되고 싶나.

아직 야구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아 함부로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기회를 주면 감독수업에 올인을 하고 싶다. 나는 지금껏 ‘믿음의 야구’ 김인식, ‘냉철한 승부사’ 김경문, ‘자율의 야구’ 로이스터 감독님 등 최고의 지도자들에게서 야구를 배웠다. 그분들 가운데 어느 한 분의 스타일을 따르기보다는 장점만을 빼내 새로운 유형의 감독이 되보고 싶다.

김경문 감독과 로이스터 감독님은 공통점도 많지만, 큰 관점에서 보면 다른 점이 더 많은 지도자다.

그런 것 같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김 감독님은 선수들이 운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외부의 영향을 철저히 차단해주는 스타일이다. 반면 로이스터 감독님은 그 차단은 철저히 선수가 하는 걸로 생각한다.

두산과 롯데는 감독의 성향이 다른 만큼 팀 색깔도 다르다. 가령 가족 가운데 누가 아프거나 아내가 출산했다고 치자. 두산은 ‘우리는 프로이기 때문에 팀이 먼저’라는 생각으로 묵묵히 그라운드에서 제 할 일을 한다. 정말 정신력이 강한 팀이다. 그러나 롯데는 병원에 가도록 한다. 로이스터 감독님이 원체 가족을 중시하는 까닭도 있지만, ‘프로야구 선수면 성인이고, 프로는 자기 할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경기에 출전하지 않고 출산 장면을 옆에서 지켜봐도 절대 뭐라고 하지 않는다. 어느 팀이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라 ‘다름’의 차이라고 본다.

로이스터 감독은 한국야구의 큰 틀을 3년 사이에 바꿔놓았다. 그는 재임 때보다 퇴임 이후 더 큰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프로야구 감독 가운데 누가 타자들의 배팅볼을 주워담는단 말인가(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일부에선 로이스터 감독을 ‘훈련을 등한시하고, 감독의 역할마저 선수에게 떠넘기는 야구’라고 혹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현장에서 보면 로이스터 감독식의 야구야말로 선수 입장에선 타율야구보다 몇 배는 어려운 야구처럼 느껴진다.

정확한 평가다. 간혹 후배들한테 그런다. 로이스터 감독님이 뭐라고 하지 않는다고 무절제하게 생활하면 너뿐만 아니라 팀에 손해라고. 로이스터 감독님의 자율야구가 타율야구보다 몇 배나 힘든 건 결국 자신과 싸움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기다 로이스터 감독님의 신임을 받으려면 실력으로 뭔가를 보여줘야 한다. 그건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홍성흔에게 가족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다. 그는 힘들 때마다 노트북 배경화면 속의 아이들 사진을 보며 위안을 찾는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 턱은 1년에 몇cm 자라나요?  - 네이버 닉네임 동률 -


여담 몇 가지만 하자. 어느 야구팬이 “미남이라서 야구하는데 불편함을 겪은 적은 없나요”하고 물어달란다.

(한참을 웃다가) 글쎄, 내 외모가 연예인을 하기엔 부족하고, 그냥 사는 데는 지장이 없는 것 같다. 아직 야구하면서 불편함을 겪은 적은 없다.

다른 야구팬은 “홍성흔 선수만큼 잘 생긴 야구선수가 있다면 한 명만 뽑아주세요”하고 물었다.

워낙 잘생긴 선수들이 너무 많아서…. 보자.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강정호(넥센)가 나와 좀 비슷한 것 같다.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약간 이국적으로 생기지 않았나. 언뜻 보면 (강)정호나 나나 동남아시아 스타일이다(웃음).

지명 타자는 투수나 야수보다 여유시간이 많지 싶다. 다른 선수들이 수비훈련할 때 무얼 하나.

지명 타자는 확실히 여러 가지 면에서 이점이 있다. 야수들이 수비훈련할 때 상대 투수들이 뭘 던지는지 지켜볼 수 있다는 것도 크나큰 이점이다. 대개 야수들이 수비훈련을 나가면 주로 실내연습장에서 스윙한다. 지명 타자라고 더그아웃에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나름 꽤 바쁘게 시간을 보낸다(웃음).

‘이 투수는 정말 상대하기 싫다’하는 투수가 있나.

(기다렸다는 듯) 정우람(SK)과 안지만(삼성)이다. 난 정말 두 투수가 너무 싫다. 왜냐? 정말 지나치리만큼 잘 던지기 때문이다. (정)우람이는 제구가 뛰어나다. 실투가 거의 없을 정도다. (안)지만이는 공 끝이 정말 좋다. 변화구는 그나마 치겠는데 직구는 직구인 줄 알면서도 치기가 어렵다.

올 시즌 왼손투수를 상대로 타율 3할2푼1리를 기록 중이다. 그래서 하는 질문이다. 한국프로야구 최고의 왼손투수 3인인 류현진(한화), 김광현(SK), 양현종(KIA) 가운데 누가 최고의 왼손투수라고 생각하나.

아, 어려운 질문인데…. 정말 세 투수 모두 뛰어난 왼손투수들이라 우열을 가리기 어렵다. 굳이 한 명을 꼽으라면 역시 류현진이 아닐까 싶다. (류)현진이는 타자와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아는 투수다. 투구폼도 매우 부드럽다. 정말 놀라운 건 7회를 넘겨도 1회와 같은 구속과 구위를 유지한다는 점이다. 체인지업의 우월함은 말할 필요도 없다.

롯데 유니폼을 입고 나서 두산만 만나면 ‘펄펄’ 난다. 올 시즌 두산을 상대로 타율 4할7푼6리, 7홈런, 22타점을 기록 중이다. 많은 두산 팬이 어째서 친정팀만 만나면 신들린 타격을 보이는지 궁금해한다.

(억울하다는 표정으로) 그런 지적, 참 스트레스다(웃음). 혹여라도 병살타 쳐서 죽으면 ‘이대호 타점을 말아먹었다’고 뭐라 하시고, 두산 만나서 타점을 치면 ‘넌 왜 두산만 만나면 잘하느냐’고 하시고(웃음). 두산을 억지로 의식하거나 반드시 잡아먹어야지 하는 생각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웃음). 가끔 농담조로 “두산 투수들이 과거 동료였다고 좋은 공을 주시는 것 같다”고 하는데, 그저 두산 투수들이 뭘 잘 던지는지 다른 팀 투수들보다 많이 아니까 그것에 맞게 타격하는 통에 좋은 성적을 내는 게 아닌가 싶다.

2008년부터 롯데는 2년 연속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다. 그러나 번번이 준플레이오프에서 패하며 더 높은 단계까지 오르지 못했다. 올 시즌 많은 롯데 팬은 “준플레이오프 진출에 만족하지 말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노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올 시즌 롯데의 우승 어떻게 전망하나.

2001년 두산에 있을 때 10승 투수 한 명 없이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했다. 물론 운도 따랐겠지만, 정작 하고 싶은 말은 ‘야구는 그런 스포츠’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 팀을 객관적으로 분석하면 우승전력은 아니다. 확실한 마무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류현진처럼 연패를 끊어줄 수 있는 에이스가 있는 건 더욱 아니다.

하지만, 지난 2년간 4강에 들면서 선수들이 큰 경기의 흐름이나 이길 때의 짜릿한 맛을 알게 됐다. 그게 바로 경험이다. 포스트 시즌에서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는 선수가 한두 명만 나온다면 우승도 꿈같은 일은 아니라고 본다. 포스트 시즌에 진출한 뒤 로이스터 감독님이 마운드 운용만 잘하신다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항상 자신감이 넘친다. 당신의 자신감을 부러워하는 이들도 많다. 어떻게 하면 당신처럼 늘 자신감 있게 살 수 있나.

자기관리를 잘하면 자신감은 자연히 따라온다. 가정이 화목하고, 야구장 나와서 동료관계가 깔끔하고, 선배로서 자기 역할에 충실하다 보면 정말이지 자신감은 자연스럽게 표출된다. 반대로 가정과 팀에서 흔들리면 의식적으로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감이 따르지 않는다. 올 시즌 자기관리를 잘해선지 뇌가 무척 깨끗한 상태다. 그래서 요즘 야구를 잘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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