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원(중앙중 57회) - KB금융지주 회장 추대 > 교우소식


교우소식

댓글 0건 조회 1,811회 작성일 2009-12-04 22:12
강정원(중앙중 57회) - KB금융지주 회장 추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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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글로벌KB’ 구원투수…강정원 행장의 虎視牛步 

회장추천委 만장일치 추대…

선출과정 논란 딛고 조직안정 등

새 성장동력 마련 귀추



“호랑이의 눈으로 관찰하고, 소처럼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겠다.”

인생철학 ‘호시우보(虎視牛步)’를 견지하던 강정원 국민은행장이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KB금융지주의 차기 회장 자리를 거머쥐었다. 

30년 뱅커 인생의 화려한 피날레를 다짐하며 도전했던 꿈을 이루어낸 것이다.

외국계 은행 한국대표 등을 합쳐 금융 CEO 10년이란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지난 해 KB금융지주 초대 회장 자리를 놓고 황영기 전 회장과 경합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황 전 회장의 도중하차로 1년여만에 재도전의 기회를 맞았지만 회장 선출 과정의 공정성 시비가 불거지면서 이 역시 불발로 끝날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특유의 뚝심, 우보(牛步) 행진으로 위기를 돌파했다. 

시비 논란이 일었던 회장후보추천위원회 면접에 당당히 단독으로 참여했고, 회추위로 부터 만장일치로 차기 회장 후보에 추대됐다.


꿈은 이우렀지만 강 행장이 도전해야 할 길은 아직 험난하다. 

황 전 회장 퇴임 이후 우려되고 있는 조직의 안정과 융합을 추진하는 것이 첫째다. 

능력에 기반한 인사체계와 우수 인재 영입 및 육성의 과제가 남아있다. 

은행과 비은행간 균형 성장을 통해 미래성장기반을 확보하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과제다.

전문가들은 강 행장의 회장 내정으로 향후 KB금융그룹이 금융계의 인수합병(M&A)을 리드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강 행장은 M&A 전문가로 통한다. 씨티은행과 뱅크스트러스트그룹, 도이체방크를 거치는 동안 성실히 M&A 내공을 쌓으면서 실력가로 인정받았다.

2007년 9월 행장 연임에 성공한 뒤에는 증권사 인수를 성사시켰고, 금융지주 회사 전환 등 굵직한 현안을 깔끔히 처리하는 수완도 발휘했다. 

비록 불발로 끝나기는 했지만 2006년에는 외환은행 인수 작업을 진두지휘해 뉴브리지사와 투자양해각서(MOU)를 체결해 내기도 했다. 

현재 추진 중인 증권, 보험사 인수작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비은행 부문의 경쟁력을 배가시켜야 하는 책임이 그에게 있다.

강 행장은 “임기에 연연하지 않고 30년 금융 인생의 유종의 미를 거두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금융그룹인 KB금융그룹의 수장으로 도약한 그가 말 그대로 유종의 미를 발휘하면서 지금보다 훨씬 존경받는 뱅커가 될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윤재섭 기자/is@heraldm.com


강정원은 누구…외환위기 직후 서울은행장으로 `화려한 등장`

강정원 내정자는 은행권에서 30년간 일해온 대표적인 전문경영인이다. 

꼼꼼하고 실속 있는 경영 스타일로 평가받는다.

1979년 씨티은행 뉴욕 본사에 입사한 이후 뱅커스트러스트컴퍼니,도이체방크 한국대표를 거쳐 서울은행장을 역임했다. 

외환위기 후 도이체방크가 서울은행을 위탁경영할 때 당시 한국 대표로 서울은행 경영을 하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은행장으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런 경력으로 2004년 김정태 전 행장이 물러난 뒤 국민은행장에 선임됐다. 

노동조합 통합을 이끌어냈으며 2005년부터 2008년까지 3년 연속 2조원 이상의 당기순이익을 달성했다. 2007년 9월 연임에 성공한 뒤에는 증권사 인수,금융지주사 전환 등을 이끌어냈다.

2006년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와 외환은행 인수 본계약을 체결했지만 결국 무산돼 성장 기회를 놓쳤다는 지적도 받는다.

1950년 12월 서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중앙중(57회),

경기고(65회)를 다녔다. 

졸업은 홍콩외국인학교에서 한 뒤 미국 다트머스대와 플레처대 대학원을 나왔다. 

평소 말이 많지 않지만 탄탄한 인맥을 구축하고 있으며 지금도 회의 석상에서 

담배를 피우는 체인스모커.



금융위기 극복의 `구원투수' 캠코 이철휘 사장


-40조원의 부실채권정리기금 운용 성공 여부 관건 -"캠코 직원들과 노하우 믿기 때문에 큰 부담 없다" *그림1* (서울=연합인포맥스) 이규창 기자 = 지난 1997년 IMF 당시 111조원 규모의 부실채권 인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함으로써 외환위기 극복에 큰 역할을 했던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가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또다시 `구원투수'로 등장했다.

40조원이라는 막대한 돈을 손에 쥐고, 금융권이 떠안고 있는 부실채권은 물론 기업들이 내놓을 부동산이나 선박을 매수하는 등 경제 전반의 구조조정을 무리 없이 이끌어내야 한다.

캠코는 과거 외환위기 이후 39조2천억원의 부실채권정리기금으로 111조3천억원의부실채를 인수했고 43조2천억원을 회수했다. 결과적으로 외환위기 극복에 크게 일조함은 물론 4조원을 남기는 장사를 한 셈이다.

이번에도 글로벌 금융위기 상황이 국가경제 전체로 번지는 것을 막는 한편으로,부실채권의 인수.정리 등을 통해 과거처럼 이문을 남겨야 하는데, 여건이 그렇게 녹록지만은 아닌 듯 싶다.

부실채권은 문제없이 처리하겠지만 부동산과 선박인수에는 보다 정교한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공장이나 기업을 통째로 인수해야 하는 상황이 올지도 모른다.

이철휘(55.사진) 캠코 사장의 행보에 금융권은 물론 경제계 전반의 눈길이 모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당장 오는 6월부터 가동되는 기금운용을 앞두고 이 사장본인도 큰 중압감을 느끼고 있는 듯, 최근 강남 본사 집무실에서 만난 이 사장은 지난해 말보다 부쩍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재정확대, 금융완화정책 계속 유지" = 이 사장은 그러나 매사 그렇듯이 자신감을 잃지 않으려는 듯 "우리 직원들과 노하우를 믿고 있기 때문에 큰 부담이 없다"며 자신감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 사장은 지난해 캠코 수장으로 임명되자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 부실채권(NPL)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공언해 주위를 놀라게 했었다. 흔히 부실채 투자는 금융선진국이나 세계적 투자은행(IB)이 후진국의 부실채를 사주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러나 자신의 `선진국 NPL 투자사업' 공언이 지난해 9월 리먼사태로 무산된데 대해 무척이나 아쉬워 했다. 그는 이날도 "해외에 맛있는 먹거리(부실채)가 널려있다"며 의욕을 나타냈다. 부실채권 인수와 운용, 처리 노하우에 있어선 누구보다자신이 있다는 표정이다.

이 사장은 재경부 국고국장을 지내면서 장기국채 발행을 확대하고 외국환평형기금 채권의 국고채 전환, 국내 장내거래 의무 등의 기초를 닦았고, 지난 2003년에는 한.중.일 국고국장 회의를 주도하며 역내 채권시장 육성에도 기여했다.

그러고 보니 그가 부실채권 인수를 주로 다루는 캠코의 수장이 된 것은 어찌 보면 예견된 수순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이제는 채권 발행자가 아닌인수자가 됐고, 그것도 정확한 신용평가를 통해 부실채권을 인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사장은 최근 경기가 회복될 조짐을 보이면서 부실채권 인수에 사용할 구조조정기금의 규모가 작아질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으나 결코 긴장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지난해 메릴린치 부실채권에 투자하기 위해 협상을 진행하던 중 미 금융위기의 심각성을 예상하고 곧바로 중단했듯이 상황판단이 그만큼 중요하다. 자칫 잘못하다간수백억원, 수천억원의 손실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캠코로서는 큰 충격 없이 완만하게 나마 경제와 금융시장이 살아난다면 좋겠지만, 일단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 대책을 강구할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 사장은 "최근 대규모 무역흑자가 나오고 일부 지표가 좋아지고 있지만 안심할단계는 아니다. 기업이 지난해 말 재고를 밀어낸 후 올해 초 빈 창고를 채우기 위해생산을 늘렸고. 원자재도 수입보다는 재고를 사용했다"면서 "환율까지 떨어지게 되면 기업실적에 대한 부담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어떤 형태의 금융 충격이 올지 모른다. 만약 지난해 리먼사태와 같은 충격이 다시 나오면 투자자.소비자들은 마음 속 깊이 잠재하던 대추락의 공포에 압도당할 것이다. 정신없이 넘긴 1차 충격 때와는 달리 그 공포는 길고 깊어질 수 있다.

따라서 재정 확대와 금융 완화 정책은 계속 유지해야 한다. 과잉 유동성 얘기가 나오는데 정말 섣부른 진단"이라고 강조했다.

기금의 규모와 인수대상, 자금 조달 등 모든 것을 정부와 협의해야 하고 때로는정부의 지침을 받아야 하지만 일각에서 과잉 유동성 문제와 함께 기금 축소문제가 거론되고 있는데 대해 못마땅해 하는 듯 보였다.

그는 "기금 운용에는 큰 걱정을 하지 않는다. 정부와 협의하며 급한 자산부터 차곡차곡 인수해주면 그만이다. 오히려 적절한 타이밍에 인수 자산을 되파는 것이 관건인데 경기 회복이 빨라진다면 당장 내년부터라도 내다 팔 수 있다"고 말했다.

인수 대상을 확대할 계획이 없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생각 같아서는 M&A나 구조조정 전문가를 더 많이 뽑아서 외국계 펀드에 넘어갈 공장이나 기업도 다 사주고 싶다. 그러나 현재의 캠코 인력으로 공장이나 기업을 인수해 운영까지 맡을 수는 없는것도 사실이다. 기금의 역할을 제고하고 캠코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정부와 계속 협의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캠코채 발행에 대한 채권시장의 우려가 있다고 전하자 "내가 국고국장 출신"이라며 웃었다. 채권 수급을 잘 알고 있고 필요에 따라, 또 시장 상황에 따라 발행과 조달을 할 것이라는 의미다. 뻔한 대답이 나올 것을 알면서 괜히 물어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 `괴짜' 같은 기질, 자신감에 일조 = 이렇듯 이 사장은 오는 6월 구조조정기금의 본격적인 가동을 앞두고 일면 중압감을 느끼면서도 자신에 차있는 모습이었다. 이 사장 특유의 이런 자신감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물론 채권분야에 대한 그의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경험이 뒷받침이 됐겠지만 그의 주변에선 일반인과는 무언가 다른 그만의 독특한 캐릭터도 일조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는 재무부 사무관 시절, 한 한국외국어대 대학원생을 만나게 된다. 현재 보고펀드 대표인 변양호씨의 소개로 재무부 직원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게 된 임시선생님이었던 이 대학원생이 바로 이 사장의 부인이 된 황미옥 인천대 일어일문학과 교수다.

그는 그러나 신혼초인 1981년 예상치 못한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미국 정부가 우수한 인재를 하버드 케네디스쿨로 보내달라는 요청이 왔고, 당시 금융정책과의 젊은 사무관이었던 그가 뽑혔다. 생활비까지 보조해주는 파격적인 조건도 붙었다.

그는 그러나 이를 마다하고 배우자를 따라 1982년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이 때문에 주위에서 '바보'라는 소리까지 들어야 했지만 결국 부인과 일본을 택했고, 그의 선택은 국내에서 손꼽히는 일본 전문가가 되는 계기가 됐다.

학비와 생활비 충당을 위해 아르바이트까지 하며 일본 히토쯔바시대 대학원을 어렵게 마친 후 일본 대장성 파견, 일본 노무라종합연구소 객원연구위원, 주일본대사관재경관 등 일본과 질긴 인연을 맺게 된다. 일본이 주도하고 있는 ADB 상임이사까지포함하면 공무원 생활 13년을 일본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된 업무를 수행한 셈이다. 승진을 생각해야 시기에 예고 없이 웃분으로부터 조심스럽게 일본 근무 제의를 받으면 그 때마다 주저하지 않고 가겠다고 대답했다. 어느 장관은 '일본이 그렇게 좋으냐'고 되묻기까지 했다.

이 사장은 "일본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을 아는 것이 좋다"고 말한다. 우리나라 공직사회에서 소위 미국 전문가는 많아도 가깝고도 먼 나라인 일본을 제대로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희소성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선진국 NPL 시장에진출하기 위해 일본계 투자자금 유치에 직접 나서기도 했다.

앞서 이 사장은 경기고 재학시절 평생 지기인 친구를 만나게 되는데 그가 바로 현재 대법관인 박시환씨라고 했다. 이 사장과 박 대법관은 당시 음악과 물리를 매개로 교분을 쌓았는데, 교내 클래식 음악클럽을 이끌었던 이 사장은 음악을, 그리고 우등생이었던 박 대법관은 물리학에 대한 지식을 전수해 줬다는 것이다.

*그림2* - 학창시절 비원에서 이 사장은 지금도 우주과학 얘기만 나오면 눈을 번뜩인다. UFO(미확인비행물체)부터 우주철학까지 관련 서적을 탐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구조조정기금의 운용문제 등과 관련한 인터뷰를 위해 만난 이날도 이 사장은 우주질서가 기독교적 사상에 어떻게 접목되는지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이번에도 '이철휘표 우주철학' 강의가 길어질 조짐을 보여 "그것 말고 잘 알려지지 않은 다른 취미가 없느냐"고 화제를 돌렸더니, 대뜸 "대학 수능 수학문제 풀기"라는 `엉뚱한' 대답이 나왔다.


유독 수학에 약했다가 대학 1학년 때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어느 날 갑자기모든 수학문제를 풀어냈다. 정확한 공식을 몰라도 '업어치고 메치다 보면' 답이 나오더라는 것이다.

이 사장은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거나 하면 이동중 차 안에서나 자기 전에 수학문제 풀면서 해소한다고 말했다. 이밖에 바둑실력은 아마추어 수준을 넘는 정도이나 '시간이 없고 같이 둘 사람도 없어' 잠시 접어두고 있다.

그는 대학시절 클래식 음악클럽을 이끌었듯이,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 서울대 무역학과 재학시 연극부에서 배경음악을 담당하기도 했는데 그가 박 대법관을 클래식의세계로 꾀게 된 사연이 재밌다.

경찰관이었던 아버지와 그리고 여섯 남매나 되는 가정형편상 전축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는데 당시 박 대법관 집에는 흔치 않았던 전축이 있어 용돈을 쪼개서 산 클래식 앨범을 옆구리에 끼고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 듯 음악감상을 핑계로 뻔질나게친구 집을 찾았다는 것이다.

당시 LP판은 초벌구이가 음질 면에서 으뜸이지만 상대적으로 비싸 몇 푼이라도 가격을 깎기 위해 청계천 바닥을 헤맬 정도로 클래식에 심취했었는데 이 덕분인지 지금도 70여곡에 이르는 슈베르트 가곡을 부를 수 있다. 이 사장은 그러면서 가정 형편때문에 직접 악기를 다뤄보지 못한 것이 평생 한이라고 했다.

*그림3* - 그는 대학시절 연극 배경음악을 담당했었다 ▲노력하는 금융통, 이번엔 어떤 아이디어로 = 그렇다고 이 사장을 '엉뚱한 천재' 정도로 여기면 안될 것 같다. 그는 내외부 회의로 아무리 바빠도 하루에 1시간 정도는 집무실에 설치된 연합인포맥스 단말기 시세표와 뉴스를 본다. 국제금융시장 움직임과 이슈, 전문 서비스된 보고서, 차트 등을 꼼꼼히 살핀다.

이 사장은 "일본 재경관 시절부터 몸에 배인 습관"이라며 "시장 돌아가는 상황을하루라도 놓치면 뭔가 크게 빠진 것 같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또 일본의 유력 금융기관들로부터 아직도 따로 경제.금융 관련 보고서를 받고 있다.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일본에 전화를 걸어 직접 물어보거나 즉석 토론을 한다고 했다.

그는 일선 금융시장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인다. 

여기엔 중앙중학교 출신 금융기관 CEO들이 큰 도움이 되고 있다. 

강정원 KB국민은행장은 중앙중학고 3년 선배고 

윤용로 기업은행장은 2년 후배다. 

하영구 씨티은행장과는 중학교부터 경기고, 서울대무역학과까지 

같이 다닌 절친한 사이.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도 중.고교 시절 친구다. 

금융기관 CEO 선.후배로부터 얻는 정보는 이 사장의 또 하나의 

경쟁력이다.

이 사장이 금융통으로 불리게 된 시발은 재무부 금정과 사무관을 무려 7년 동안지내면서다. 금정과에서 주로 한국은행의 재무부 파트너로서 금융 실무를 담당했고사무관 말년에는 한국은행 자금부를 혼자 상대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한은이 통화량으로 은행의 `군기'를 잡던 시절이었는데 어느날 한은이통화량을 조이면서 은행이 자금운용에 압박을 받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현 상황에서 오히려 규제를 완화해 시중에 자금을 공급해야 하는데 자금압박을 주는 것은 말이안된다며 한은의 반발에도 불구, 자금조정 업무를 빼앗았다는 것이다. 

주변에서 혼자 자금조정 업무를 수행하기란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겼으나 시중은행들과 계속 대화하며 재무부의 금융기조를 밀고 나갔다는 것이다. 

나중에는 통화량조정업무를 다시 한은에 넘겨줬지만 이 사장의 금융 내공을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고 당시 은행 자금담당자들은 회고했다.

그렇다고 이 사장이 한은과 갈등만 빚은 것은 아니다. 가급적 큰 정책 기조만 훼손하지 않는다면 일상적인 자금운용 관련 보고를 생략하도록 하는 등 한은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줬다고 했다. 

그는 웃으면서 "난 親한은 인사"라고 말했다. 

비록 금정라인으로 오르지 못해 관세청에 승진 발령되기도 했지만 이후 일본 재정금융연구소 연구위원, 노무라종합연구원 객원연구위원 등을 지내면서 경제.금융분야에 대한 이론적 보강도 했고, 이러한 실력을 인정 받아 문민정부 시절에는 대통령재정경제비서실 행정관과 총괄국장을 지내기도 했다.

그가 국장 시절 주무과장이었던 한 인사는 "모르는 척하지만 상황을 꾀고 있고 핵심을 집어내는데 상당히 날카로웠다. 보고할 때마다 긴장했다"고 전했다.

그는 애창곡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뜻밖에 클래식이 아닌 1993년 강변가요제 대상곡인 `숨어우는 바람소리'라고 했다. 

그러면서 높은음자리표 하나만 그려넣은 악보에이 노래처럼 쉽고 단순한 음표만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의 말에는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해법도 이처럼 단순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이 깔려있는 듯 했다.

그러나 제반 상황이 그렇게 녹록지 않다는 점을 그도 잘 알고 있다. 

현재 우리 경제와 금융시장 상황이 길고 복잡한 음표로 얽히고 설킨 교향곡처럼 난해한 상황에서 그가 어떤 진단과 아이디어로 이를 풀어나갈 수 있을지 주목된다.

scoop21@yna.co.kr



금융권 중앙中 동문 4인방 주목
강정원 행장ㆍ하영구 행장ㆍ이철휘 사장ㆍ윤용로 행장

 

 
 
 
 
금융권에 올해 개교 100주년을 맞는 중앙중학교 출신 4인방이 두드러진다. 

강정원 국민은행장과 하영구 씨티은행장에 이어 최근 윤용로 기업은행장과 이철휘 자산관리공사 사장이 가세했다.

이들은 일제강점기 3ㆍ1운동과 6ㆍ10만세운동 등 항일운동을 주도했던 선배들의 뜻을 이어 선후배 간에 돈독한 정을 나누고 있다. 

금융권 현안에 대해 서로 의견을 구하고 조언하면서 한국 금융시장을 이끌고 있다.

최고참은 리딩뱅크인 국민은행을 이끄는 강정원 행장. 

1966년 중앙중 57회로 졸업했고 경기고에 입학한 뒤 미국으로 건너가 대학을 나왔다. 

뱅커스트러스트그룹 한국지사장, 도이체방크 한국지사장, 서울은행장을 거쳐 2004년 국민은행장을 맡았고 경영성과를 인정받아 지난해 10월 연임에 성공했다.

하영구 씨티은행장과 이철휘 자산관리공사(캠코) 사장은 1969년 중앙중 60회로 졸업한 뒤 경기고, 서울대 무역학과를 함께 다니면서 12년간 우정을 쌓은 막역한 친구 사이. 

하 행장은 오랜 기간 씨티그룹에서 일하며 쌓은 국제적 감각과 선진금융시장에 대한 높은 이해도로 신설되는 금융위원장에 거론되고 있다. 

하 행장은 모교사랑이 남달라 일일교사로 변신해 중앙중 전교생을 대상으로 금융교육을 하기도 했다.

지난 3일 취임한 이철휘 자산관리공사 사장은 행정고시 17회 출신으로 재경부 공보관, 국고국장, 대외부문 부총리특별보좌관, 아시아개발은행(ADB) 상임이사 등을 지냈다. 

그는 공직생활 중에 일본 히토쓰바시대 대학원에서 공부했고 일본 대장성 파견, 주일재무관을 역임해 일본 전문가로 손꼽힌다.

강 행장, 하 행장, 이 사장은 중앙중, 경기고 코스를 거친 반면 윤용로 기업은행장은 중앙중ㆍ고교를 졸업한 소위 `6년근`이다.

 윤 행장은 1971년 중앙중 62회로 졸업했고 중앙고(65회)와 한국외대 영어과를 나왔으며 행정고시 21회로 재경부 은행제도과장을 거쳐 금감위 공보관, 감독정책2국장, 증선위 상임위원, 금감위 부위원장 등을 거쳤다.

중앙중ㆍ고교는 인촌 선생 등 선각자들이 뜻을 모아 만든 민립학교로 오는 6월 1일 개교 100주년 기념식을 가질 예정이다.

[윤상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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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1.31



(2010 금융의 꿈★)

⑨불모지서 캔 다이아몬드 은행
금융위기때 자산 30% 성장..뱅크런예금 대거 흡수

KB 인수로 평판 `업그레이드`...리스크 관리 강화

금융위기에 강한 은행 M&A...21년 연속 흑자 행진
 

입력 : 2009.11.26


[카자흐스탄 알마티=이데일리 좌동욱기자] 카자흐스탄 알마티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파이낸셜 디스트릭트(Financial District). 

알마티시를 중앙아시아 최대 금융 중심지로 만들기 위해 뉴욕 맨하탄 월스트리트가를 본따 조성하는 복합 금융센터 부지다.

남쪽으로 중앙아시아의 알프스라 불리는 톈산산맥이 자리잡고 있고, 정면에는 알마티 신시가지를 상징하는 누를리 타우(Nurly Tau·빛의 산) 빌딩이 보인다. 

서쪽으로는 43층 높이의 메리어트 레지던스 타워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건물들은 공사가 현재 진행 중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 때문이다. 

알마티 시내에서는 공사가 중단되거나 중단한 경험이 있는 건축물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아르켄 아리스타노프(Arken Arystanov) 알마티 지역금융센터(RFCA) 위원장(장관급)은 "카자흐스탄은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 여파로 2007년 하반기부터 금융위기가 시작됐다"며 "금융위기가 글로벌 위기보다 1년 먼저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이로인해 카자흐스탄 경제 성장을 떠받치는 3대 축인 자원, 금융, 건설산업 중 금융과 건설 산업이 무너졌다. 2000년 이후 매년 9~10%씩 성장하던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은 2008년 3.2%로 뚝 떨어진 후 2009년 상반기 마이너스로 돌아섰다.(그래프 참조)

◇ 국민은행 BCC, 금융위기때 자산 30% 성장 

국민은행은 금융위기가 전방위로 확산되던 2008년초 현지은행 BCC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국민은행이 BCC 경영에 참여한 후 1년간 BCC는 위기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결과를 보면 놀랍기 그지 없다. BCC의 총자산은 2008년 3월 8470억 팅게(카자흐스탄 화폐, 1달러=150.43 팅게)에서 2009년 9월 1조1016억 팅게로 30% 가량 늘었다. 이 기간 BCC는 자산 기준 은행권 순위가 6위에서 5위로 올라갔다.(그래프 참조)
 
은행의 자산 건정성을 따져보면 그 변화는 더욱 드라마틱하다. BCC의 90일 이상 연체대출금 비율(부실채권비율)은 2008년 9월말 2.24%에서 2009년 9월 4.74%로 2.5%포인트 높아졌다.
 
하지만 이는 1~4위 은행 평균 부실채권비율 15%의 3분의 1수준이다. 같은기간 다른 대형 은행들의 부실채권비율은 10%포인트 가량 급등했다. 2008년 당시 4위 은행이었던 알리안스 뱅크는 부실채권비율이 10.38%에서 56.72%로 무려 40%포인트 이상 높아졌다.(아래 그래프 참조)

티무르 이시무라토프 BCC 국제본부장은 "카자흐스탄 대형 시중은행들이 대규모 해외 차입으로 자산 불리기 경쟁을 하다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차입금을 회수하자 은행들이 위기를 맞았다"고 설명했다. 
 
◇ BCC로 흡수된 `뱅크런` 예금

카자흐스탄 1위 은행인 BTA와 4위 은행인 알리안스뱅크는 올해 초 모든 채무에 대해 디폴트(지급불능)를 선언했다. 현재 채권단과 채무재조정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당시 BTA의 해외차입금 규모만 120억달러에 육박했다고 한다. 
이런 은행들에서 고객들이 돈을 찾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했고, 급기야 뱅크런(대규모 예금인출)까지 터졌다. 말리크 누그마노프 BCC 알마티 지역본부장은 "BTA의 겨우 한달간 30억달러의 예금이 빠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BCC는 올해 들어서만 개인예금이 35%, 법인예금은 50% 증가했다. BTA와 알리안스 뱅크에서 빠진 예금이 대부분 BCC와 같은 외국계 대주주가 있는 은행으로 들어왔다. 이 같은 BCC의 예금 증가속도는 현지 언론과 금융가에서도 화제가 되고 있다고 누그마노프 지역본부장은 전했다.
 
◇ 국민은행 인수로 평판 `업그레이드`

BCC가 위기에 이렇게 성장할 수 있었던 원인은 뭘까. 새로운 대주주인 국민은행의 역할일까, 아니면 원래부터 BCC가 위기에 강한 은행이었을까.

▲ 티무르 이시무라토프 BCC 국제본부장
BCC측은 새로운 대주주의 역할을 인정했다. 이시무라토프 국제본부장은 "한국계 대주주가 새로 들어오면서 글로벌 은행이라는 BCC 이미지가 부각됐고, 믿을 수 있는 은행이라는 평판(레퓨테이션)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측 요구로 BCC 여신에 대한 신용평가리스크관리 시스템도 더욱 정교해졌다.
 





국민은행은 BCC에 

최동수 상임이사(前 국민은행 부행장,중앙중 62회,중앙고 65회
)와 

최고재무책임자(CFO), 리스크담당 부행장을 파견하고 있다.

BCC CFO인 윤재관 부행장은 "예금이 단기간에 급하게 늘어나도 자금 운용측면에서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서는 오히려 예금을 가려서 받거나 대출금리를 인하하는 방안 등을 살펴보고 있다"고 말했다.
 
◇ 위기에 강한 현지은행 선택 

하지만 BCC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BCC 자체의 보수적인 은행 경영전략이라고 현지인들은 평가한다.

카자흐스탄 은행권이 위기를 겪게 된 근본 원인은 단기로 해외에서 자금을 빌려 카자흐스탄 내에서 장기로 자금을 운용했기 때문이다. 디폴트를 선언한 BTA와 알리안스 뱅크는 해외 차입금이 전체 차입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60%에 달한다. 반면 BCC의 해외 차입금 비중은 28% 정도다.

특히 외화 차입금 중 3년 이상 장기 외채 비중이 80%를 넘는다. 당장 해외로 빼낼 수 있는 여유자금도 20억달러를 갖고 있다. 대출 구조를 따져봐도 가계대출이 40%, 중소기업 비중이 40%로 대형 건설업체에 주로 자금을 빌려줬던 다른 시중은행들과 차이가 있다.

누그마노프 지역 본부장은 "BCC는 설립 후 21년간 한번도 손실을 낸 적이 없는 은행"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이시무라토프 국제본부장도 "국민은행이 대주주가 아니었다고 해도 BCC는 금융위기를 헤쳐나갈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국민은행이 잘한 점은 카자흐스탄에서 좋은 은행을 잘 선택해 인수·합병(M&A)에 나선 것"이라고 평가했다.

카자흐스탄내 최고 경영대학인 키맵대의 이상훈 경영대학장은 "금융위기 이후 BCC는 카자흐스탄에서 다이아몬드 은행으로 평가되고 있다"며 "국민은행의 투자로 BCC 퀄러티(질)가 더 좋아지게 되면 앞으로도 더 큰 투자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민은행 카작BCC 경영참여 본격화 

최동수 前부행장
 (중앙중 62회,중앙고 65회)

BCC 이사회 파견

이달 말 인수대금 지급·핵심역량이전 착수 

입력 : 2008.08.11
 
[이데일리 하수정기자] 국민은행이 이달 말부터 카자흐스탄 센터크레디트은행(BCC) 경영에 본격적으로 참여한다.

11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민은행(060000)은 이달 말 BCC 지분 30%에 대한 인수대금 6억3400만달러(약 6213억원)을 지급하고 총 6명의 경영진과 실무자들을 파견할 예정이다.

BCC 이사회에 참여할 상임이사에는 최동수 전 여신관리그룹 부행장(사진)을 선임키로 했다.

최 전 부행장은 대우그룹 출신으로 한국신용평가와 서울증권, 한일투자신탁운용, 하나은행, 삼성증권 등을 거쳤다.

그는 강정원 행장과 2000년 서울은행에서 함께 일한 뒤 2004년 강 행장이 국민은행장으로 선임되면서 여신관리그룹 부행장으로 영입됐다가 지난해 사퇴한 바 있다. 

현재 메리츠화재해상보험 사외이사로 있다.

국민은행은 BCC에 IT와 리스크관리, 상품, 업무프로세스 등 핵심역량을 이전해 카자흐스탄 6위인 BCC를 선두권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특히 앞으로 2년6개월내 BCC의 지분 20.1%을 추가로 사들여 경영권을 최종 확보키로 했다. 이를 통해 중앙아시아 뿐 아니라 러시아동유럽 진출을 타진할 방침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이달 말 국내 금융기관 중 가장 규모가 큰 해외투자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게 된다"라며 "이번 BCC 사례는 국내 금융사의 독립국가연합(CIS) 진출에 대한 중요한 시험무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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