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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891회 작성일 2009-11-03 10:41
김치수(50회) 문학평론가(이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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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문인들이


이렇게 모였나보다

  • 고창=김태훈 기자

 

입력 : 2009.11.02

6일부터 질마재문화축제
미당시문학관에서 '미당 시 읽기 행사' 열려…
김후란·허영자·김치수씨 등 작품 낭독·강연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1915~2000) 시인의 고향이자 그가 영원히 잠들어 있는 전북 고창 질마재 일대의 공기는 지금 코로 마시는 국화차다. 오는 6일부터 30일까지 열리는 질마재문화축제를 앞둔 이곳은 온통 국화의 노란빛과 진한 꽃향기로 물들고 있다. 한국문인협회(이사장 김년균)와 조선일보·문화체육관광부가 함께 진행하는 연중 캠페인 '책, 함께 읽자'가 31일 미당의 시혼(詩魂)이 서린 고창 미당시문학관을 찾았다.

김후란·박정희·허영자·김년균·김송배·홍신선 시인과 문학평론가 김치수 이화여대 명예교수, 수필가 김병권 문협 부이사장 등은 미당시문학관에서 대시인이 남긴 주옥 같은 작품을 낭독했고, 문학관을 찾은 주민과 청소년들에게 미당의 문학세계를 알려주는 강연을 했다.

행사에 앞서 시인들은 국화밭 가운데 자리잡은 미당의 묘택을 찾아가 참배하고 그 자리에서도 시를 낭독했다. "한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시인협회장을 지낸 허영자 전 성신여대 교수가 〈국화 옆에서〉를 암송하자 국화밭 사이에 서 있던 동료 문인들도 조용히 따라 읊었다.

미당시문학관에서 열린 '미당 시 읽기' 행사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호남의 문인들과 지역 중·고생들로 열기가 가득했다. 전북예총 회장을 지낸 진동규 시인은 〈선운사 동구(洞口)〉를 낭독했다.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시방도 남았습디다"라고 낭독한 진 시인이 "어려서 읽을 때는 몰랐는데 나이가 좀 드니까 뜻이 절로 나를 찾아왔다. 이 시가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면 아직 어리다는 뜻"이라고 재치있게 설명하자 웃음이 터졌다.

단상에 오른 낭독자 대부분이 눈을 감은 채 기억 속에서 저마다 시를 꺼내 읽었다. 미당 시문학관 홍보이사인 김정웅 시인은 '국화 옆에서'를 암송했고, 연극배우 이부열씨는 미당의 애송시인 〈자화상〉 〈푸르른 날〉을 공연 발성법을 활용하며 멋지게 암송해 박수를 받았다.

시 낭독에 앞서 열린 강연에서 김후란 시인은 영국의 셰익스피어 생가를 방문했던 경험을 통해 이야기를 풀어낸 뒤, "국화꽃 가득 핀 이곳이 셰익스피어 생가 같이 한국 시의 명소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치수 교수는 "미당처럼 한국어를 다감하고 아름답고 풍요롭게 사용한 시인은 신시(新詩) 100년의 역사에서 다시 유례를 찾기 힘들다"고 말했다. 미당의 친일(親日) 문제와 관련한 일부 비판에 대해서는 "시 이외의 분야에 나타난 흠집은 그의 독보적인 시 세계에 비하면 하나의 티끌이다. 삶은 유한하고 덧없는 것이지만 시는 무한하고 미당의 시어는 한국어의 보고(寶庫)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질마재의 국화향(香)은 미당 10주기를 맞는 내년에 더욱 진해질 전망이다. 미당 기념사업회 발기인 모임이 지난 20일 열린 데 이어 12월 23일 기념사업회 창립대회가 예정돼 있다. 미당의 제자인 문학평론가 윤재웅 동국대 교수는 "미당 10주기를 맞아 미당전집과 미당문학사전 출간, 미당학회 발족 등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당이 생의 마지막 30년을 살았던 서울 관악구 남현동 봉산산방도 내년 하반기 중 '미당 서정주의 집'으로 새단장해 일반에 공개된다. 

미당 서정주의 고향인 전북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 질마재에 국화꽃이 활짝 핀 가운데 미당의 작품을 읽는 책읽기 행사가 미당문학관에서 열렸다./김영근 기자 kyg21@chosun.com

옛날 다방·술집은 문학공간이자 사교장
[Special·작가들의 아지트]
광화문 '아리스 다방' 명동 '은성' 대표적… 80~90년대 인사동·안국동으로 둥지 옮겨



이윤주 기자 misslee@hk.co.kr

위-카페 '귀천'에서 만난 문단의 세 가인. 왼쪽에서부터 故중광스님, 故천상병, 이외수
아래-계간 '문학과 지성' 창간 직후동료 비평가들, 김현, 김치수, 김병익, 김주연씨와 함께(왼쪽부터).
위-시인학교 정동용 교장 / 류효진 기자
아래-종로구 명륜동 학림다방의 개업 50주년을 기념해 공연. / 고영권 기자
2004년 ‘명동백작’이란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다. 김수영, 전혜린 등 1960년대 내로라하는 문인들의 삶과 문학을 소재로 한 이 드라마는 EBS에서 조용히(?) 전파를 탄 프로그램임에도 불구하고, 문학 마니아 사이에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이 드라마의 배경은 명동에 밀집한 술집과 다방. 자욱한 담배연기 속에 작가들은 문학과 사회, 인간의 존재에 대해 고민한다. 술집과 다방은 일종의 문학 공간이자 작가들의 사교장이었던 셈이다. 그 많던 술집과 다방은 어디로 갔을까? 수십 년 전 낭만을 찾아 떠난다.

한국문학의 산실, 다방과 주점

소설가 이외수 씨가 청년 시절 춘천다방 DJ였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다방 DJ를 하며 밥을 벌었던 그는 글도 쓰고 잠도 잤던 자신의 구석진 테이블에 처음 본 여성이 앉자 ‘내 자리’라고 말하다 가벼운 실랑이가 벌어졌고, 이를 계기로 그 여성과 연애를 했다. 미스 강원출신의 이 여성은 지금의 부인 전영자 씨다.

이외수 씨뿐만 아니라 그 시절 작가들에게 다방과 술집은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지인을 만나는 ‘업무 공간’이었다. 대표적인 곳이 광화문에 있는 ‘아리스 다방’과 명동의 ‘은성’이었다.

아리스 다방은 김종삼 시인의 아지트. 출판사와 신문사 문학 담당 기자들은 김 시인에게 원고를 청탁하고 원고비를 주기 위해 그곳을 들렀다.

드라마 명동백작에도 자주 등장했던 ‘은성’은 연기자 최불암 씨의 어머니가 운영했던 막걸리집. 이봉구와 전혜린, 박인환 등 문인들이 자주 들렀던 곳이다. ‘은성의 풍경화’로 불릴 만큼 이곳을 자주 들렀던 소설가 이봉구의 별명이 명동백작이었다.

명동이 금융 중심가로 번화하면서 80~90년대 문인들은 인사동과 안국동으로 아지트를 바꾼다.

인사동에 자리했던 ‘시인학교’는 시 동인 ‘두레’의 회원이었던 정태승 시인이 1983년 문을 열었는데, 87년 정동용 씨가 인수해 20여년 운영하다 지난해 문을 닫았다. 96년 경영난으로 첫 번째 문을 닫고 이듬해 다시 문을 열었다가 2004년 두 번째 경영난으로 문을 닫았다. 시인들의 도움으로 2006년 문을 열었는데 지난해 세 번째 폐점한 것이다.

시인학교란 이름 때문에 이 주점의 사장은 곧잘 ‘교장’으로 불렸는데 신경림, 이행자, 강형철, 함민복, 박형준 시인과 현기영, 전성태, 조헌용 소설가 등이 시인학교의 단골손님이었다.

인사동 초입에 있던 ‘이화’는 소설가 김주영 씨와 요절한 시인 기형도 등이 자주 드나들었다.

인사동에 있는 카페‘귀천’역시 한국문학이 탄생한 명소다. 카페 이름을 유심히 보면 알 수 있듯 천상병 시인의 부인 목순옥 여사가 운영해 자연스럽게 문인들의 아지트가 됐다. 특히 중광 스님, 천상병, 이외수 씨가 이곳에서 주로 활동하면서 많은 시인들의 안식처로 자리 잡았다.

그곳에는 김현이 있었다

문학평론가 고명철 씨는 지난 가을 술자리에서 “스무 살 제주에서 상경하자마자 곧장 반포치킨으로 달려갔다”고 말했다. 학창시절부터 문학평론가를 꿈 꿨던 그는 어느 책에서 김현 평론가가 매일 저녁 퇴근 후 반포치킨에 들러 문청들의 글을 봐준다는 대목을 읽었던 것이다. 그는 수소문 끝에 찾아갔던 상황을 설명하며 반포치킨에 관한 추억을 오랜 시간에 걸쳐 말했다. 고명철 평론가뿐만 아니라 문학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반포치킨은 일종의 ‘성지’같은 곳이다.

비평문학의 거장, 김현은 생전 이집에 외상장부를 트고 월급날에 외상값을 갚았다. 주인 아주머니가 아직 그의 미결 외상장부를 갖고 있다는 소문이 들릴 만큼 그와 반포치킨은 떼놓을 수 없는 관계다. 황지우 시인이 김현을 추모하며 쓴 시 ‘비로소 바다로 간 거북이’에 등장하는 맥주집이 바로 반포치킨이다.

이밖에 신사동의 ‘고선’역시 문학평론가 김현, 김치수, 오생근 씨를 비롯해 소설가 이청준, 김원일, 복거일, 시인 황동규, 김광규 등이 자주 들렀던 대표적인 아지트였다.

대학로에 있는 ‘학림다방’은 50여년의 역사를 지닌 카페다. 서울대 문리대가 동숭동에 있던 시절부터 학림다방은 문청들의 아지트였다. 1956년부터 명륜동을 지켜온 이 곳에 소설가 김승옥부터 이인성까지 서울대 문리대 출신의 작가들이 학림다방을 거쳤고 이청준, 김지하, 박태순 등 한국문학의 거장들이 즐겨 찾던 곳이다. 벽을 꽉 채운 LP판이 운치를 더하는 이 곳은 지난 2006년 개점 50주년을 맞아 콘서트로 열었다.

<김승현의 文化데이트>
“문자문화 외면… 생각없이 즐거움만 추구”
 
김치수 문화예술委 2기 위원·원로 불문학자
 
김승현기자 hyeon@munhwa.com
 

사진 = 김선규 기자
원로 불문학자 김치수(68) 이화여대 명예교수가 2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이 됐다. 김 교수는 1970년 문학평론가 김병익, 김주연, 김현 등과 함께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계간지 ‘문학과 지성’을 창간, 참여적 경향의 ‘창작과 비평’과 양대축을 형성하며 한국 문화예술계를 풍요롭게 한 문학평론가.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한 김 교수는 “은퇴 후 강의를 하지 않고, 마감이 있는 글을 쓰지 않겠다”며 “혹시 나이가 들어 외로워져 노욕(老慾)이 생겨서 부탁하더라도 ‘안하겠다고 했다’는 것을 상기시켜달라”고 제자 교수들에게 부탁까지 할 정도로 자유로운 개인생활을 원했다.

지금까지 그는 그렇게 자유로운 삶을 살며 스스로 말하는 ‘하찮은 이야기들의 감동’을 즐기고 있다. 그런데 김 교수가 예술위원이라는 직함으로 문화예술계의 중심으로 컴백(?)했다. 예술위원회라는 곳은 만만찮은 곳이다. 이 위원회는 전 정부가 문화예술 정책과 지원을 분리, 지원의 대부분을 맡겨 놓은 핵심 기관으로 지금 전 정권의 ‘대못’ 논란의 한 가운데 있기도 하다.


25일 오후 인터뷰 요청 전화를 한사코 ‘거부’하는 그의 사무실로 ‘쳐들어’갔다. 그는 “예술위원이 10명이고 나는 그 중 한 명일 뿐 대표성이 없는데다가 아직 한번도 회의를 한 적도 없어 할 말이 없다”면서 이야기를 극구 피했다. ‘예술위원 자격이 아니라 원로 문화예술인으로서 후학에게 도움을 좀 주시라’고 간곡하게 같은 말을 되풀이하며 버티고 앉아 있자 그가 마침내 항복, “아래층 카페의 에스프레소가 맛있으니 한 잔 마시고 가라”고 제안했다. 역시 한국인은 인정에 호소하는 ‘떼’에 약하다.

쌉쌀 구수한 에스프레소 향기에 얹어 은퇴 후의 생활을 물었다.

“정말 좋습니다. 다른 분들은 일이 없어 괴로워도 하시는데 저는 읽어야할 책이 쌓여있고, 쓰고 싶은 글의 주제가 잔뜩 있어 행복할 뿐입니다.”

정년퇴직 후 강의도 안맡는 그가 어떻게 예술위원직을 승낙했는지 궁금했다.

“1기 위원장이 김병익 선생이었잖아요. 김 선생이 예술위 산하의 ‘문학나눔추진위원회’를 도와달라고 하는데 혼자 고생하는 것을 보니 안갈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2007년 1월부터 12월까지 이 일을 맡았습니다. 이후 다시 안일한 생활로 돌아왔는데 두 달 전인가 노(무현)정권에서 이(명박)정권으로 넘어오면서 양쪽이 너무 극단적으로 나가는데 균형을 잡아야 한다면서 주위에서 지원서류를 만들어와 억지로 동의를 하라는데 거절하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문학나눔위’ 활동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1기 예술위의 활동을 평가해 달라고 하면 다른 말을 할 것이 뻔해 에둘러 물었다. 뛰어난 비평가인 그는 예상대로 주변을 평가하며 본질을 놓치지 않았다.

“만족합니다. (경기 여주) 세종대왕릉에서 무용, 음악과 문학행사를 했는데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성황을 이뤘어요. 우리말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행사를 이렇게 예술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현대자동차와 함께한 작가와의 대화, 시낭송회, 문학작품을 대본으로 한 단막극 등의 행사를 했는데 작가와 독자가 직접 부딪치는 계기를 만든 좋은 행사입니다. 또 소설 무대를 찾아가는 프로그램도 참 좋았습니다. 젊은 작가에 대한 우수작 지원도 작가의 생계를 도와주며 창작력을 높이는 지원으로 긍정적으로 봤습니다.”

김 교수는 그러나 “명성에 따라 지원하지 않고 작품에 지원했는데 이름있는 작가들이 항의해 곤혹스러웠다”며 “작가에 대한 직접지원보다는 시스템에 대한 간접지원 체제를 확립하는 게 필요해 보였다”고 평가했다.

“(경남) 하동 최참판댁 가보셨어요?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 나오는 집만 덩그러니 있지 내용물이 아무것도 없어요. 축제 비슷한 게 있는 데 모조리 이벤트입니다. 품위와 질을 갖춘 내용을 찾기 어렵습니다. 관광효과를 노린다는데 내용이 없는데 무슨 관광이 있겠습니까. 독자들이, 관광객들이 인내하면서 찾아갈 수 있도록 작가를, 예술가를 키우고, 살아있는 내용물을 채워야 합니다. 그런 자립기반이 확보됐을 때 비로소 관광자원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문화복지에는 어느 정도 성과가 있었지만 수월성, 질에 있어서는 아쉽다는 지적으로 들린다. 이벤트와 품위 및 질을 갖춘 축제, 예술행사의 차이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일시적인 즐거움만 노리는 자극적인 것이 이벤트입니다. 두고두고 생각하는 게 품위이고 질이지요. 품위와 질을 갖춘 문화예술에는 ‘절제’가 전제됩니다. 그런데 요즘 무조건 한꺼번에 폭발시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 예술이 질이 떨어진다고 비판하는 것은 그런 ‘절제’가 부족한 데서 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말씀의 내용이 좀 깊어졌다. 좀 심각한 문제로 질문을 돌렸다. 노정권과 이정권의 극단적 대립에서 균형을 잡기 위해 김 교수를 주변에서 억지로 떠밀었다고 했는데 노정권의 공과(功過)에 대한 평가를 부탁했다.

김 교수는 어쩔 수 없이 걸려들었다는 듯 빙긋이 웃다가 이내 엄숙하게 표정을 고치고 “노정부뿐 아니라 김대중 국민의정부 이후 제일 큰 공은 권위주의를 타파한 것”이라면서 “그러나 그들은 권위주의뿐 아니라 권위 자체를 없애는 우를 범했다”고 단호히 평가하고 다음과 같이 조심스럽게 반문했다.

“권위주의와 권위는 분명히 다릅니다. 권위는 품위나 질과 직결됩니다. (권위까지 잃어버린) 이런 것은 긍정적으로 대답하기 어렵지 않겠습니까.”

이번에는 이 정부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자 그는 “아직 정해진 것이 없고 진행중”이라며 평가를 유보했다.

문화의 품위와 질을 중요시하는 것을 보면서 문득 그의 문화예술론이 순수, 고급예술을 지향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는 이에 대해 단호히 부정했다.

“문화예술을 고급문화와 저급문화, 순수예술과 대중예술 이분법적으로 나눠서는 안됩니다. 지금 세계는 그 어느 시대에도 볼 수 없었던 격변의 시기입니다. 고급, 순수예술을 지키기 어렵고, 그렇다고 문화가 저질스럽게 대중쪽으로 넘어가는 것을 그냥 지켜 볼 수도 없습니다. 두 개가 어떻게 맞아떨어져야 보다 많은 국민들이 향유하고 즐기는 문화가 될지 고민입니다. 한 쪽으로만 가서는 안됩니다. 균형을 잡아야 합니다. 전통을 지켜야 하겠지만 시야를 넓혀서 변화에 대해 촉수를 세워야 합니다. 변화가 가져올 결과도 내다볼 수 있는 통찰력을 갖고 이른바 순수 고급예술이 갖고 있는 인류의 전통을 현대에 접목할 방법을 찾아내 그것을 지원해야 합니다.” 김 교수는 원로 비평가답게 본질을 질타하는 날카로운 말로 정곡을 찔렀다.

화제를 문화예술 전반으로 옮겼다. 문학보다 어학에 방점이 찍히는 등 순수문화예술이 과거만큼 힘을 갖지 못하는 것 같다. 이에 대해 그는 “문명사적 문제”라고 심각하게 받았다.

“20세기까지만 해도 문화라는 게 대개 책을 중심으로 움직였습니다. 책에는 명상과 반성이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20세기 후반 매체가 다양화하면서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게 너무 많아졌습니다. TV, 비디오, DVD에 휴대전화, 위성방송 등에 사람들이 빠지면서 문자문화에 쓸 시간을 찾지 못합니다. 분명 순간적인 재미를 전달하는 능력에서 문자문화는 이들 매체를 따라가지 못합니다. 문자문화는 기본적으로 시간을 요구합니다. 즉각적이지 않습니다. 문자는 반성하는 시간을 주고, 비판하는 이야기를 줍니다. 그런데 다른 매체에는 그런 것들이 없습니다.”

이같은 문제의 해결을 위해 그는 교육의 혁신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프랑스에서 최근 초등학생들에게 인터넷을 금지했다는 뉴스를 주의깊게 봐야 합니다. 컴퓨터는 중독성을 갖습니다. 반성적 사유를 하지 않고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합니다. 생각하는 습관을 없애는 겁니다. 프랑스는 정보화에 가장 앞선 나라 중의 하나였습니다. 인터넷 시대 이전에 전화로 주요한 정보를 주고 받는 미니텔을 생활화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미니텔이 너무 강력해 퍼스널 컴퓨터 시대로 진입이 늦었고, 또 퍼스널 컴퓨터 시대의 중독성을 본 프랑스 사회가 어린이들이 생각하는 습관을 잃게 되자 금지하기에 이르게 된 거지요.”

그는 “시집이 세계에게 가장 많이 읽히는 나라가 우리나라”라며 “소설도 여전히 베스트셀러 목록에 꾸준히 오르는 등 문학이 살아있는 우리나라는 아직 희망이 있다”고 강조했다.

◆ 김치수 교수는…

▲1940년 전북 고창 출생 ▲1959년 중앙고 졸(50회) ▲1964년 서울대 불문과 졸 ▲1968년 서울대 불문과 석사 ▲1976년 프랑스 프로방스대 문학박사 ▲부산대 사범대 불어교육과 전임강사·조교수(1972~1974년) 한국외국어대 불어과 조교수(1977~1979년) 이화여대 인문대 불어불문과 교수(1979~2006년) ▲현대문학상, 프랑스 문화학술공로훈장 기사장, 팔봉비평문학상 ▲저서 :‘한국소설의 공간’ ‘문학사회학을 위하여’ ‘구조주의와 문학비평’ ‘박경리와 이청준’ ‘문학과 비평의 구조’ ‘공감의 비평을 위하여’ ‘현대기호학의 발전’ ‘표현인문학’ ‘삶의 허상과 소설의 진실’ ‘문학의 목소리’ ▲번역 :‘누보 로망을 위하여’ ‘새로운 소설을 찾아서’ ‘러시아 형식주의’ ‘기원의 소설 소설의 기원’‘낭만적 거짓과 소설적 진실’

문화부장 hyeon@munhwa.com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신임위원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신임위원들

【서울=뉴시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9일 오전 세종로 문화체육관광부 청사에서 열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신임위원 임명식에 앞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조운조(이화여대 한국음악과 교수), 오광수(전 국립현대미술관장), 김치수(한국현대문학과 이사) , 백병동(서울대 명예교수), 신달자(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교수),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김복희(한양대 예술학부장), 최상윤(동아대 명예교수), 정중헌(서울예술대학 방송영상과 교수) 신임위원. /이동훈기자 photoguy@newsis.com


기사 게재 일자 2008-09-27


*** 김치수 교수님은 70년대 중앙고 불어선생님으로도 재직하셨습니다

※. 님에 의해 복사(이동)되었습니다. (2014-06-20 19: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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