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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925회 작성일 2009-10-19 20:13
최광식(62회), 국립중앙박물관장-개관 100주년 특별전 대히트

본문

[조선 인터뷰] 

"휴대폰·자동차에 고려청자 디자인 더하면 

세계적 명품(名品)될 것"

  • 입력 : 2009.10.18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특별전 '大히트'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

"몽유도원도에 가려졌지만 전시된 국보 40점도 흥행에 큰 역할"

"서너시간씩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관람객들 보고 놀라"

"대중 스스로 와 즐기도록 박물관은 유물창고 아닌 미래를 
담는 그릇이어야"

최광식(56) 국립중앙박물관장은 6척(尺) 장신이다. 장대한 기골과 부리부리한 눈매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막 튀어나온 무인(武人) 같다. 저돌적인 추진력과 기획력으로 소문난 최 관장이 최근 큰일을 냈다. 지난달 28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개막, 11월 8일까지 계속되는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특별전-여민해락(與民偕樂)'에 인파가 몰려, 인산인해를 이룬 것이다. 지난 17일까지 전시장을 찾은 관객만 7만7700명. 특히 안견(安堅)의 '몽유도원도'가 9일간의 전시일정을 마무리한 7일 하루에만 1만2900명이 몰려왔다. 관람객들은 몽유도원도를 1분 남짓 보기 위해 너덧 시간씩 줄 서는 것을 마다하지 않았다.

'몽유도원도 신드롬'을 만든 주역인 최 관장을 17일 만났다. 그는 포도줄기에 매달려 노는 아이들이 그려진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지금 특별전에 전시되고 있는 '청자상감포도동자문동채주자(靑磁象嵌葡陶童子文銅彩注子)'를 모티브로 만든 겁니다. 화가 이중섭 그림의 소재가 된 청자이지요. 이중섭이 이 동자 그림을 그렇게 좋아했대요."

―사람이 이렇게 많이 올 걸 예상했습니까.

"어느 정도는 예상했지만, '몽유도원도' 덕분에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이 왔습니다. 전시 첫날부터 사람들이 엄청나게 몰려서 '몽유도원도' 위치를 바꿔보려고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림을 소장하고 있는 일본 덴리(天理)대 관계자들이 한번 전시장에 자리 잡은 유물을 옮길 때는 일본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고급 전통문화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관심이 정말 높은 것 같습니다.

"서너 시간씩 참을성 있게 기다려 주시는 걸 보고 저도 놀랐습니다. 모사품이 박물관 상설전시실에 있으니 바쁘신 분은 그걸 보시라고 안내했는데도 꼭 진품을 봐야 한다는 욕구가 강하더라고요. 올 상반기에 열린 이집트 문명전에도 45만명이 왔습니다. 외국 것은 외국 것대로, 우리 것은 우리 것대로 우리 국민들의 문화에 대한 욕구가 높아진 것이라 봅니다."

―이번 전시회를 본 분들이 '명품 중의 명품'만 모아 놓았다는 얘기를 하더군요.

"'몽유도원도'에 가려졌지만 걸작들이 정말 많습니다. 메트로폴리탄 소장 '수월관음도', 보스턴 미술관 소장 '은제금도금 주전자', 올해 초 출토된 미륵사지 석탑 사리구와 봉안기…. 하나하나가 다 명품이지요. 천마총 천마도도 보존과학이 이만큼 발전했기 때문에 적외선 사진을 찍어서 학계에 새로운 논쟁거리를 만든 것이죠. 국보만 19건, 40점이었습니다. 대학박물관, 사립박물관, 사찰박물관 등 전국 곳곳의 박물관들이 참여한 것도 큰 성과입니다. 국내외에 흩어져 있는 1급 문화재를 한자리에 모아 '명품 종합세트'를 마련한 거죠."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은“박물관은 문화콘텐츠의 보고이자 대중들이 스스로 찾아와 즐기는 놀이터 같은 곳이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의식주에 전통문화를 입히는 시도를 통해 우리 문화유산의 활용 가능성을 넓혀가고 있다./이태경 기자 ecaro@chosun.com
―'한국 박물관 100주년'이라는 의미를 직접 찾아내셨지요. 초기엔 논란도 있었습니다. 불과 4년 전 '국립중앙박물관 60주년' 행사를 했는데요.

"지금까지는 1945년 개관한 국립박물관에만 초점을 맞춰왔는데, 이번에 그 기원을 훨씬 앞당겼습니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왕인 순종이 1909년 11월 1일 창경궁의 양화당과 명정전, 부속 회랑 등을 전시실로 꾸민 제실(帝室)박물관을 열고 백성들에게 공개했습니다. '여민해락(與民偕樂)', 귀한 자료를 백성과 함께 나누겠다는 그 뜻이 중요합니다. 왕조사회가 끝나가고 시민사회가 시작되는 상징적 사건이자 근대박물관의 탄생이죠.

제실박물관이 중요한 이유는 또 있어요. 당시 수장품이 8600여점 있었는데, 금동반가사유상(국보 83호), 김홍도 화첩,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등 명품들이 거기 다 있었죠. 제실박물관이 없었으면 이들 유물은 아마 일본으로 흩어졌을 겁니다. 민족 문화유산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한 거죠."

최 관장은 1945년 미 군정이 서둘러 국립박물관을 개관한 것은 소련군이 평양에 중앙력사박물관을 먼저 추진 중이었기 때문이고, 1972년 한국 정부가 '국립종합박물관'이란 당초 명칭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고친 것은 북한의 '조선중앙력사박물관'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해방 후 정부가 수립되기도 전인 1945년 12월 3일 국립박물관을 개관한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북한이 이보다 이틀 앞서 조선중앙력사박물관을 연 것도 국립박물관이 국가 정통성의 상징이기 때문이죠. '한국 박물관 100년'은 단순히 시간 개념의 100년을 기념하는 것을 넘어 국립중앙박물관이 국가 정통성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문화콘텐츠의 보고(寶庫)로서 대중들이 스스로 찾아와 즐기는 곳으로 탈바꿈하는 계기가 돼야 합니다. 박물관은 더이상 '유물창고'가 아니라 '미래를 담는 그릇'이니까요."

―박물관이 과거의 문화를 추억하는 장소만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를 위한 콘텐츠의 보고라는 말입니까.

"지난 8월 말 열린 '뮤지엄 패션쇼'에서 큰 가능성을 봤습니다. 우리 유물을 콘텐츠 삼아 옷에 문화를 입힌 것이죠. 패션뿐 아니라 건축·일상용품·음식까지 무궁무진하게 개발할 수 있습니다. 휴대전화나 자동차도 비색(翡色) 바탕에 상감청자 문양을 넣어 해외 시장에 내놓으면 세계적 명품이 될 겁니다. 비색에 청자 문양을 담아낸 비행기가 하늘을 떠돌아다닌다고 상상해보세요. 그야말로 문화의 즐거움을 모든 사람이 누리게 되지 않겠습니까."

―박물관을 놀이터로 만들겠다는 말도 했었지요?

"경복궁 복원 때문에 이전해야 하는 국립민속박물관을 2014년까지 용산 미군기지 터로 옮기고 국립자연사박물관, 어린이박물관 등도 주변에 함께 지어 이 일대를 문화와 자연이 어우러진 '뮤지엄 콤플렉스'로 조성하고 싶어요. 지상에는 친환경적인 박물관을, 지하에는 갤러리·영화관·문화쇼핑몰·식당가 등이 배치된 복합공간을 만들어 시민들이 언제라도 와서 보고 즐기고 쉴 수 있는 곳으로 만들자는 것이죠. 전통과 현대, 예술과 레저를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이제 우리나라에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계 유수 박물관들과 비교했을 때 국립중앙박물관의 위상은 어느 정도 된다고 보십니까?

"건축 면적으로는 세계 6위인데, 소장 유물이 턱없이 부족합니다. 프랑스 루브르나 대영박물관, 미국 스미스소니언 박물관 등에는 자기 나라 유물뿐 아니라 세계 고대문명의 찬란한 유물이 다 있지만, 우리는 우리 것만 있다는 게 약점이라면 약점이죠. 하지만 해외 박물관에는 약탈 문화재가 많은데, 우리는 남의 것 약탈해온 게 없으니까 '클린 박물관'입니다."

―해외 유수 박물관에 갔다 오면 우리 유물이 왜소해 보인다는 얘기를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서양 유물들은 건축물이 많고, 규모가 큽니다. 우리 것은 우수하고 정교하지만 사이즈가 크지는 않아요. 하지만 금관과 요대(腰帶·허리띠), 금동반가사유상, 이 3개는 정말 뛰어나다고 봅니다. 프랑스의 석학인 기소르망이 '프랑스의 대표 랜드마크는 에펠탑이고, 일본은 후지산, 대한민국 상징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반가사유상'이라고 꼽기도 했지요."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우리 유물은 어떤 겁니까.

"고구려 고분벽화입니다. 직접 가서 보면 전율을 느낍니다. 1500~600년 전에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렸고, 어떻게 그렇게 잘 남아 있는지…. 돌에다 직접 그린 것도 있는데 접착제를 썼는데도 어떻게 부패하지 않았는지 미스터리였습니다. 알고 보니 연백(鉛白·염기성 탄산납)을 살짝 칠하고 그렸더군요. 미학뿐 아니라 과학 기술이 그만큼 발전했기 때문에 벽화가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겁니다. 고구려가 군사강국이 된 건 문화에다 과학기술까지 발전했기 때문이라는 것, 제대로 된 선진국이 되려면 문화강국이 돼야 한다는 것을 고구려 고분벽화가 말해주고 있어요."

―국립중앙박물관을 용산으로 옮긴 뒤 외국인 관람객들이 많이 찾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지난해 관람객 230만명 중 외국인은 9만8000여명, 약 4% 수준이었습니다. 예전에 경복궁에 있을 때는 고궁을 보러 왔다가 박물관까지 보고 가는데 용산으로 이전한 다음에는 관람 동선이 안 맞아요. 그러다 보니 단체 관광객이 많이 줄었지요. 그래도 올 8월 기준으로 작년 대비 30% 늘었습니다. 서울시와 협의해서 전철역과 연결하는 무빙워크를 만들 예정이라 앞으로 점점 좋아질 거라고 봅니다."

―100주년 이후가 궁금해지네요. 내년에는 어떤 전시가 있습니까.

"올해는 '박물관 100주년'이 화두였지만, 내년에는 용산 이전 개관 5주년입니다. 올해 고려실이 문을 열었고, 11월 2일에는 박물관 최초로 고조선실이 개관합니다. 내년에는 드디어 조선실이 열리고요. 지금은 주제별로 전시가 되어 있는데 우리 역사의 흐름에 따라 전시실이 개편되는 거죠. 하반기에는 일본·미국·유럽에 있는 고려불화 40~50여점을 모아 전시할 계획이고 그리스전, 실크로드 문명전 등 해외 전시도 볼만할 겁니다."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은 국립박물관 역사상 첫 역사학자 출신 수장(首長)이다. 역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모두 고고학이나 미술사 전공자였다. 지난해 3월 취임한 최 관장은 국립중앙박물관을 유물 전시관에서 종합역사박물관으로 바꾸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최 관장은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앙고(62회) , 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효성여대 교수를 거쳐 1995년부터 모교에서 한국고대사를 가르치고 있다. 

열정적인 성격과 탱크처럼 밀어붙이는 추진력의 소유자로 한국역사민속학회장, 한국고대사학회장 등 여러 학술단체장을 지냈으며, 지난해 고려대 총장직에 도전한 바 있다.

최 관장은 2003년 중국의 '동북공정' 사태가 불거지자 고구려 역사왜곡 대책위원장을 맡아 대책 마련에 앞장섰고, 김정배 한국학중앙연구원장(전 고려대 총장)과 함께 고구려연구재단 출범의 주역을 맡았다. 이때 생긴 별명이 '을지문덕'이다.

그는 8년간이나 고려대 박물관장(2000~2008년)을 맡아 북한 유물을 최초로 가져온 고구려전, '문화예술 최고위 과정' 개설 등 다양한 전시와 기획을 통해 박물관의 이미지를 크게 바꿔놓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중 속으로 보다 친근하게 다가서는 박물관, 놀이터 같은 박물관이 되어야 한다는 신념에 따라 국립중앙박물관장 취임 뒤 '관장과 함께하는 박물관 투어' 프로그램을 만들고, 직접 '전시 해설사'로 나서는 등 박물관의 엄숙주의를 타파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장에게 듣는 '박물관 100년'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최광식)은 10월 박물관 가는 날을 맞이하여 ‘09년 10월 24일(토) 오전 10시부터 “국립중앙박물관장과 함께하는 우리 박물관 100년의 이야기”를 진행한다.
 
이번 행사전시해설과 함께 체험교육프로그램으로 나누어 실시하게 된다. 전시해설은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직접 참가자들과 함께 기획전 󰡔여민해락󰡕을 관람하며 우리 박물관의 지난 100년의 이야기를 들려줄 예정이다. 최광식 국립박물관장은 취임 이후 수회 일반관람객들을 대상으로 전시해설을 진행한 바 있으며, 매회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한국박물관은 1909년 순종황제가 황실의 소중한 보물을 백성들과 함께 하고, 국민들의 문화적 수준을 높이는 길이야 말로 국운을 되살리는 방법이라는 뜻에 따라 출발하여 이제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많은 성장을 이룩했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이 직접 진행하는 이번 해설은 역사의 거울로 역할을 수행했던 박물관 100년의 역사, 그리고 그것이 담아왔던 우리문화의 정수를 알기 쉽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전시해설 이후 참가자들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인기리에 운영되고 있는 “인장만들기 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인장은 자화상과 같이 본인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예술로서 오래전부터 학자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아온 것으로 참가자들은 직접 본인의 이름을 새기며 선인들의 아취(雅趣: 아담한 정취)를 생각해 보는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것이다.
 
문화저널21 최재원기자



이명박 대통령,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 임명장 수여(2008.03.08)

이명박 대통령이 8일 오전 청와대에서 장관 및 차관급 임명장 수여식을 갖고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사진=문화체육관광부 제공)
 
 
최광식 신임 국립중앙박물관장
 


"박물관을 역사대중화의 장으로"

(서울=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국립중앙박물관을 전국 국ㆍ공립 박물관은
물론 500여개 사립박물관 전체를 이끌어 가는 중심이 되게끔 하겠습니다."

최광식 신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1945년 해방과 함께 출발한 국립박물관
역사에서 역사학 전공자로는 첫 수장이란 기록을 세우게 됐다.

초대 김재원 관장 이후 역대 박물관장은 고고학이나 미술사 전공자가 번갈아 맡는 것이
관례처럼 굳어 있었다.
전임 김홍남 관장이 여성과 박물관 외부 출신 인사로는 각각 첫 관장으로 기록되기 전까지는
모두 박물관 내부에서 관장을 배출했다.
박물관 외부 인사로는 두 번째인 신임 최 관장은 이를 의식했음인지 임명 사실을 통보받은
7일 "박물관의 대중화와 정보화, 국제화에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이면서, 주된 전공이 신라사라는 학문적 이력이 말해 주듯이
최 관장은 고대사학자이면서 유물보다는 문헌을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한 문헌사학자로 분류된다.

그는 고려대박물관장을 9년째 맡아 박물관 업무에 초보는 아니지만 박물관계 주변에서는
최 관장의 경력에 대한 우려가 없지는 않다.
 대학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은 규모나 성격이 확연히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최 관장은 이에 대해 "지금까지 대학박물관에서 해왔던 사업을 국가적인 차원으로
확대해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그가 고려대박물관장 재직 시절 의욕적으로 추진한 사업으로는
'문화예술 최고위과정'을 들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배출하거나 그에 적을 올린 인물로는
이명박 대통령오세훈 서울시장 등이 있다. 물론 이런 사업이 소위 사회주도층
인사를 '포섭'하기 위한 일환이 아닌가 하는 비판도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최 관장은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 누구든지 문화를 창조하고 향유할 수 있는
'문화복지'의 개념을 확산시키는 데 박물관이 선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물관을 고급문화센터로 가두어 두지는 않겠다는 의지로도 해석될 수 있다.

그는 새 정부가 오는 5월부터 시행하기로 한 "국립박물관의 무료 개방은 박물관의 대중화에
절대로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나아가 "국제화 시대에 맞춰 우리 것을 외국에 알리고, 외국의 것도 우리 나라에 많이
소개할 것"이라면서 "특히 고구려나 고려사와 관련해 북한과 교류하며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해 나가는 일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최광식 국립중앙박물관장…한국고대사 연구
 
1953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앙고를 졸업한 서울 토박이다.
 
 
또고려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 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고려대 교수로 재직, 고려대박물관장을 9년째 맡는 등 전형적인 고대맨이기도 하다.
 
한국고대사를 주로 연구했으며 중국의 동북공정을 계기로 최근에는
고구려사로 연구영역을 넓혔다.

한국고대사학회장을 비롯해 각종 학술단체장을 역임했으며, 활발한 대외활동을 하는
스타일로 국립중앙박물관에도 활기를 불어 넣어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1953년 서울출생 ▲중앙고 62회 졸업▲고려대 사학과졸업, 고려대대학원 석·박사
 
▲고려대 교수 ▲고구려연구재단 상임이사 ▲한국고대사학회 회장 ▲고려대 박물관장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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