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학교 100년 남기고 싶은 이야기 <계동 일번지> 발행 > 교우소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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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083회 작성일 2009-06-11 18:09
중앙학교 100년 남기고 싶은 이야기 <계동 일번지>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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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학교 100년의 남기고 싶은 중앙이야기 ‘계동 일번지’는 중앙출신 인사들의 중앙학교 관계 회고담을 모은 책으로 교우들이 보내주신 원고와 계우지 및 계우회보에서 이야기를 발췌하여 이운학(李雲鶴·53회)교우와 김석규(金石圭·62회)교우가 집필하고 편집했다. 6월 9일 발간된 ‘계동 일번지’는 2,200부를 인쇄하여 18,000원에 판매하고 있으며, 600부~700부는 전국주요 도시의 주요서점에 배포하여 판매에 들어갔다.  





≪중앙학교 100년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 계동 일번지≫ 발행




  중앙중·고등학교는 작년(2008년) 6월 20일로 개교 100주년을 맞았다.

  중앙교우회(회장 김종인 ․ 전 보사부 장관)는 개교 100주년 기념 출판사업의 일환으로 6월 9일 ≪중앙학교 100년 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 계동 일번지≫를 발간했다. 이 책은 지난해 말 한 질로 발간한 ≪중앙백년사≫와 ≪자료·사진집≫에 이어 3번째 출판이다.

  이 책은 정사인 ≪중앙백년사≫와 달리, 중앙학교의 교직원과 졸업생들이 쓴 글들을 모은 것이다. 지난 1세기 동안 중앙학교는 물론, 한때 중앙에 몸담았던 교직자와 학생들이 몸소 겪었거나 그들 간에 일어난 여러 일들이 이 책에 모아져 있다. 중앙학교는 졸업생은 물론 중앙학교를 졸업하지 않았더라도 설립유공자, 교직원을 모두 교우라고 부르며 중앙교우회 구성원들이다.   

  이 책은 작고한 교우들이 학교 간행물을 통해 남겼거나, 또 자서전 등에서 발췌하고 또 생존 교우들에게는 원고를 청탁해 책을 만든 것이다. 이 책은 일제 강점기, 해방과 6·25, 정치적 격동기와 산업화 시대에 중앙학교에 재직했거나 재학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담겨 있다.    

  김종인(金鍾仁) 중앙교우회장은 발간사에서 『이 책은 지난날의 중앙학교 역사와 전통, 또는 인물을 자랑하려는 것이 아니라 21세기를 살아갈 후배들에게 하나의 방향타가 되기를 바라면서 제작된 것』이며 『어떠한 시련이 닥쳐도 우리 후배들이 중앙학교 그 뿌리에 자리 잡은 정신만은 영원히 기억하고 실천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도 담았다』고 밝혔다.     

  100년 동안 중앙학교는 설립자에서부터 교장과 교직원들 2000여명, 중앙학교의 졸업생 4만 여명에 이른다. 이 책에는 1회 졸업생 조동식(趙東植·전 동덕학원 이사장)에서부터 100회 졸업생 이수홍(李受泓·최연소 서울대 입학생으로 현재 수리과학부 1년)에 이르기까지 130편이 넘는 글들이 실렸다. 많은 이들의 글을 싣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여러 시대를 살아온 중앙인들의 이야기들이 진솔하게 담겨 있다.
  본분을 잊지 않고 학생들 훈도에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던 선생들, 선생을 떠받들며 선후배들과 정을 나누며 청운의 꿈을 잃지 않았던 학생들. 이 책에서 전하는 목소리는 지금도 가슴을 뜨겁게 하고 코를 찡하게 하며 웃음을 짓게도 만든다.

  ≪계동 일번지≫는 중앙중고등학교가 자리 잡고 있는 주소인 서울시 종로구 계동1번지에서 나온 것이다.

  이 책에 글이 실린 주요 인물들은 다음과 같다.
   전 국무총리 변영태(卞榮泰)·시인 변영로(卞榮魯·6회) 형제, 전 고려대 총장 현상윤(玄相允), 전 서울시장 윤치영(尹致暎·7회), 수산학자 정문기(鄭文基·9회), 국문학자 이희승(李熙昇·9회), 연극인 서항석(徐恒錫·9회), 전 국회의원 류홍(柳鴻·11회), 전 동아일보 사장 고재욱(高在旭·12회), 화가 이자 미술사학자 김용준(金瑢俊·16회), 전 효성그룹 회장 조홍제(趙洪濟·18회), 전 범양사 회장 이성범(李成範·25회), 조선민주통일구국전선 의장 박갑동(朴甲東·27회·추천교우), 언론인 이혜복(李蕙馥·32회), 전 국회의장 채문식(蔡汶植·34회), 전 경방회장 김각중(金珏中·33회), 전 일조각 사장 한만년(韓萬年·34회), 추기경 정진석(鄭鎭奭·41회), 전 KAL 부회장 조중건(趙重建·42회), 경음악평론가 이백천(李白川·42회), 변호사 이상혁(李相赫·44회), 연극인 전세권(全世權·48회), 안동교회 원로목사 유경재(兪暻在·48회), 한국디지털대 총장 김중순(金重洵·48회), 언론인 공종원(孔鍾源·49회), 연기인 최불암(崔佛岩·49회), 언론인 조연흥(曺然興·50회), 시인이자 교수 최연홍(崔然鴻·50회), 문학평론가 김치수(金治洙·50회), 언론인이자 소설가 정규웅(鄭奎雄·51회), 조각가 심정수(沈貞秀·51회), 전 기획예산처 장관 김병일(金炳日·55회), 전 제네바대표부 대사 최혁(崔革·55회), 전 프로야구 LG감독 이광환(李廣煥·58회), 서강대 교수 손호철(孫浩哲·61회), 한나라당 최고위원 정몽준(鄭夢準·61회), 가수 김창완(金昌完·62회) 등이다. 또 중앙교우는 아니지만 중앙학교와 관련된 글을 쓴 전 고려대 총장 유진오(兪鎭午), 시인 김지하(金芝河)의 글도 실었다.
 
  다음의 글은 이 책에 실린 글을 인용한 것이다.

시인·영문학자 변영로(6회) <한 잔을 위한 신호는 “윤빠!”>에서
  영어 교사랍시고 꼭 행티를 내는 것도 아니지만 ”One bottle more!”라는 수작이 나오기만 하면 그날은 간데없이 자타가 코를 골게 되었던 것이다. 그 이튿날 등교하면 한둘은 틀림없이 과음으로 결석을 하는 것이었다. 용서받을 수 있는 지난날의 방만이여!


국문학자 이희승(9회) <잊지 못할 옛 스승들>에서
  기미 3월 1일 전부터 왜경의 감시가 심하여 형사들이 매일 학교를 지키고 있었으나 학생 중에 비밀을 누설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3월 1일 오전까지 수업을 종전대로 하고 있어 형사들도 감쪽같이 속아 정오에 탑동공원에 집합하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전 국회의원 류홍(11회) <강화도 수학여행과 내가 겪은 3·1운동>에서
  우리 학생 일동이 마니산 정상에 오르자 류근 교장은 참성단에 엎드려 절하고 눈물을 흘리시며 국권 회복을 기도하니 인촌도 눈물을 흘렸고 우리들도 숙연한 마음으로 선생들을 따라 엎드려 절하고 기도했다.


전 효성그룹 회장 조홍제(18회) <친구 돕기 위해 밥도 굶고 불도 안 때>에서
  집안 사정으로 학업을 중단해야 하는 친구를 돕기 위해 하숙에서 자취로 옮겨야 했고 점심은 잊어야만 했다. 추운 겨울에도 솔가지 하나 사서 때 보지 못한 채 감기 들기가 예사였지만 친구 하나를 살릴 수 있다는 자부심에 그런 고생쯤이야 우정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전 국회의장 채문식(34회) <일본어를 하면 매 맞는 학교>에서
  채문식하고 이름이 불렸을 때, 초등학교 시절 습관대로 “하이”했다. 선생은 나를 앞으로 불러내 회초리를 쳤다. 다시 한 번 더 반복된 뒤 세 번째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얼떨결에 “예”했다. 그러자 선생은 자리에 들어가라고 했다.  


추기경 정진석(41회) <중앙학교를 다닌 것은 하느님의 은혜>에서
  나는 해방 전후 그 어렵고 혼란한 시기에 중앙학교를 다닌 것을 하느님의 은혜라고 늘 감사하고 있다. 석조 본관 3층 도서관에서 나는 6년 동안 매일 책 1권씩을 읽었다. 해방 전엔 각종 근로에 동원될 때여서 독서는 나에게 천금 같은 시간이었다.


연기인 최불암(49회)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1961년 대학시절 <인촌 김성수>라는 연극을 중앙학교에서 공연하게 됐다. 우연스럽게도 각본과 진행을 동기 이철향, 김기팔이 담당했고 인촌 역을 내가 맡았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인촌 장례식 때 뺑소니를 치려던 우리들이 이제 그분의 연극을 위해 일하게 된 터였다.


시인 김지하 <나와 감기팔>에서
  고등학교 2학년 때 만나 대학 시절 내내 함께 연극을 하고 함께 마시고 함께 뒹굴던 그이가 보고 싶을 때가 많다. 요즈음도 외로울 때면 “기팔 형!”하고 입 속으로 불러본다. 그러면 어디선가 허공에서 덧니를 드러내고 킬킬 웃으면서 평안도 사투리로 “왜 그래! 이 빨갱이야!”할 것 같다.


전 프로야구 LG감독 이광환(58회) <자넨 훌륭한 교육자야>에서
  그해 여름방학 때 이임 인사차 권청용 교장을 만났다. 권 교장은 다짜고짜로 “안 돼! 보낼 수 없어. 야구감독이라기보다 자네는 훌륭한 교육자야!”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중앙고 감독 시절을 요약해 준 ‘교육자’라는 말을 평생 가슴에 새기고 있다.


한나라당 최고위원 정몽준(61회) <학교 뒷산에서 가진 결투>에서
  친구와 둘이서 권투 도장을 3개월 정도 다녔는데 사람들이 나보고 잘한다며 선수를 해보지 않겠느냐고 할 정도였다. 도장에 다닐 때는 집에 오면 저녁도 못 먹고 바로 곯아 떨어졌고 학교에서는 노트 필기도 하지 못할 정도였다.


가수·연기인 김창완(62회) <내 사춘기 색깔은 노랑>에서
  학교 정문을 지키는 은행나무의 가을철 노란 잎. 구충약을 먹고 올려다본 노란 하늘. 야구부가 소리치며 연습을 하면 햇볕이 노랗게 익던 운동장. 수도꼭지에서 쇳내 나는 물을 빨아 먹을 때의 어지러움. 나의 청춘은 초록이 아니었다.


한국어린이문화예술원 이사장 김용기(70회) <내 친구 ‘바리톤’ 기형도>에서
  일단 노래를 시작하면 형도는 유행가까지 10곡 정도는 불러야 끝이 났다. 주말이 되면 교회행사에 초청되어 출연하는데 하루에 서너 군데에 이르기도 했다. 이때 여학생들로부터 인기가 대단했던 기억이 난다. 


문의처 : 중앙교우회 02)756-07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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