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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2,194회 작성일 2008-06-18 09:35
[동아일보] 서울 계동 국내 첫 인문학 박물관 20일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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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 인문 풍경 한눈에 보세요”
 

 



■ 서울 계동 국내 첫 인문학 박물관 20일 개관

 

 

 

《누렇게 색이 바랜 작곡가 김순남의 ‘피아노협주곡 D장조’ 육필원고, 일제가 1929년 개최한 조선박람회 풍경을 담은 사진집, 이인직이 쓴 신소설 ‘귀의 성’ 단행본 초판 등 근현대 인문학의 단면을 엿볼 수 있는 국내 첫 ‘인문학 박물관’이 20일 개관한다. 서울 종로구 계동 중앙고등학교 내에 설립된 ‘인문학 박물관’은 1900∼1980년대 한국 문화사를 웅변하는 서적 사진 사료 신문기사를 비롯해 30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

 

이인직 ‘귀의 성’에서 1980년대 금서까지

 

문학-음악-역사-종교-신문 등 섹션 구분

 

한국문화사 대표하는 서적-사료 한자리에

 

 

 

 

지상 3층, 지하 1층으로 전체 면적 2781.9m²이며 소장품은 1만7000여 점에 이른다.

 

 

 

1층에는 재단법인 중앙학원의 설립자인 인촌 김성수 선생의 업적과 사상을 소개하는 ‘인촌실’과 ‘인문학 도서관’이 있다. 인문학 도서관은 1만여 권의 인문학 관련 서적을 소장하고 있다.

 

 

 

2층은 도시 농촌 노동 어린이 청소년 노인 종교 취미 신문 방송 등의 다양한 섹션으로 구분돼 해당 분야의 근현대기 모습을 보여준다.

 

 

 

2층 첫 섹션의 주제는 ‘모더니티와 모더니즘’. 1930년대의 대표적 논객인 임인생이 잡지 ‘별건곤’의 1930년 1월호에 쓴 글 ‘모던이씀’이 전시돼 있다.

 

 

 

“모던의 세상이다. 미국이 그러하고 구라파 각국이 그러하고 상하이가 그러하고 가직한 일본이 그러하다. 그 운덤에 조선도 그러하다. 모던, 모든 것이 모던이다.”

 

 

 

‘박람회’ 섹션에 전시된 1929년 조선박람회의 풍경도 이채롭다. 당시 박람회는 오늘날의 영화관에 해당하는 ‘활동사진관’, 새로운 주거 형태를 제시한 ‘문화 주택관’ 등으로 꾸며졌다.

 

일제강점기 어린이 교육은 가장 중요한 관심사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글도 눈에 띈다. 동아일보 1927년 4월 12일자는 “어린이는 남 하는 대로 한다. 부모는 말과 행동을 삼가야 한다”는 내용의 칼럼을 실었다.

 

 

 

3층은 문학 음악 미술 ‘우리 이론’ 등 문화, 생활과 관련된 자료들을 선보이고 있다.

 

 

‘문학’ 섹션을 대표하는 전시품은 이인직의 ‘귀의 성’, 이광수의 ‘흙’ ‘사랑’, 심훈의 ‘상록수’ 등 오래된 소설책들. 눈을 지그시 내리깔고 두 손을 깍지 낀 채 다소곳이 모은 여성의 모습을 그린 ‘사랑’의 표지가 이색적이다.

 

 

 

박물관 측이 특별히 넓은 공간을 할애한 곳은 ‘우리 이론’을 다룬 섹션. 박물관 관계자는 “인문학 분야에선 주로 서양의 이론에 중점을 두는데 우리 인문학도 전통이 깊고, 학문적 성과도 높다”고 설명했다.

 

 

 

최현배의 ‘나라 사랑의 길’(1958년), 김영기의 ‘조선미술사’(1948년), 최남선의 ‘대동운부군옥’(1914년), 윤효정의 ‘풍운한말비사’(1946년), 광동서국이 발간한 ‘조선오백년사’ 초판(1928년), 최남선의 ‘역사일감’(1947년) 등이 전시됐다.

 

 

 

박은식의 ‘한국통사’, 전석담의 ‘조선사교정’, 장지연의 ‘대한신지지 건’ 등 일제 때의 금서와 함석헌의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양성우의 ‘겨울 공화국’ 등 1980년대의 금서를 별도로 분류한 코너도 눈길을 끈다.

 

 

 

인문학 박물관이 다른 박물관과 차별되는 또 다른 특징은 색깔이다. 기존 박물관들이 벽이나 패널에 주로 사용하는 회색을 배제하고 빨강 주황 파랑 같은 색깔을 사용함으로써 박물관이라는 공간이 주는 딱딱한 이미지를 없앴다. 섹션별로 동영상 화면을 배치해 단조로운 감상이 되지 않도록 구성했다.

 

 

 

박물관 측은 “유물을 한번 훑어보는 데 그치는 박물관이 아니라 전시품에 담긴 이야기를 보고 읽음으로써 역사와 인문에 대해 나름대로 해석해보도록 하는 교육의 장으로 꾸몄다”며 “문화사를 이해함으로써 우리 인문 정신의 정체성을 찾고 앞으로 새로운 인문정신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들을 모았다”고 밝혔다.

 

 

 

일반인은 7월 1일부터 박물관을 이용할 수 있으며 관람료는 어른 2000원, 초중고교생 1000원. 관람시간은 오전 10시 반∼오후 5시 반. 매주 월요일은 휴무. 02-747-6688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 눈에 띄는 전시품

 

 

작곡가 김순남의 육필 악보

 

장지연의 ‘만국사물기원역사’

 

 

 

인문학 박물관의 대표적인 전시품으로는 해금 작곡가 김순남이 1940년대에 쓴 한국 최초 피아노협주곡의 육필 악보를 꼽을 수 있다. 색이 바래고 모서리 부분이 부스러졌지만 음표들은 여전히 뚜렷하며 작곡가의 에너지가 느껴질 정도로 생생하다.

 

 

 

최남선의 육필 원고도 눈길을 끈다. 작품을 쓴 원고가 아니라 수백 명의 친구 이름을 기록한 원고라는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최남선의 강한 필치를 느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장지연이 쓴 ‘만국사물기원역사’는 천문, 지리, 인류, 과학, 종교, 교육 등에 대해 설명한 책으로 장지연의 박학다식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조선시대 한학자 권문해가 쓰고 최남선이 1914년에 새롭게 펴낸 백과사전 성격의 ‘대동운부군옥’도 보기 힘든 자료로 꼽힌다. 1945년 8월 16일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명의로 신문에 게재된 광고에선 광복 직후의 혼란상을 짐작할 수 있다. “조선 동포여”로 시작하는 광고에서 위원회는 “중대한 현 단계에서 절대의 자중과 안정을 요청한다. 우리들의 장래에 광명이 있으니 경거망동은 절대의 금물이다”고 호소했다.

 

 

 

독립운동가 김가진이 1914년에 쓴 편지, 1950년대 초 반공포로들이 결성한 우익단체 ‘대한반공청년회’ 입회원서, 1941년 한국여론협회 조사국이 실시한 ‘좌우합작 여론조사’ 결과, ‘못 살겠다 갈아보자’는 구호와 함께 민주당 신익희 대통령후보, 장면 부통령후보의 얼굴을 실은 1956년 선거 포스터, 잡지 ‘자유’의 1970년 창간호, 1950년 6·25전쟁 직후 미국 정부가 한국에 파병한 군인들을 위해 만든 한국 안내서 등도 눈길을 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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