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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에게 교장과 교섭권 주자” 노조 출신 의원 황당법안
노동자를 대변하는가, 아니면 몇몇 노동단체만을 대표하는가. 국회 내 ‘파워 그룹’으로 자리 잡은 노동계 출신 국회의원을 두고 대표성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다수 노동자 이익과 상관없는 법안이 이들 의원 손에서 발의되는 사례도 적지 않다.
8일 중앙일보가 제21대 국회의원 구성을 살펴본 결과 전체 299명 가운데 7%인 21명이 노동계 출신이었다. 정당별로는 더불어민주당 13명, 정의당 4명, 국민의힘 3명, 무소속 1명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등 노동단체에서 활동한 경력이 있는 의원을 노동계로 분류했다. 국회 교섭단체(기준은 20명) 구성이 가능할 정도다.
국회 상임위원회별로 보면 환경노동위원회 16명 위원 가운데 노동계 출신은 6명(37.5%)으로 가장 큰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반면 기업인 출신은 전무하다. 기업계와 노동계 모두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는 환노위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보건복지위원회에도 노동계 출신 4명 위원이 활동 중이다. 교육ㆍ국토교통ㆍ기획재정ㆍ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도 각각 2명씩 노동계 출신이 포진해 있다.
국회 내 ‘노조 파워’는 막강하지만 대표성 논란은 여전하다. 노동자를 대변한다고 하지만 대부분 양대 노동조합 출신이라서다. 고용부가 발표한 ‘전국 노동조합 조직현황’을 보면 2021년 기준 한국노총 소속 조합원은 123만8000명, 민주노총 소속은 121만3000명이다. 반면 노동조합 가입이 가능한 전체 노동자 수는 2058만6000명에 이른다. 양대 노총 인원을 모두 합쳐도 전체 노동자의 11.9%에 불과하다. 전체 노동자가 아닌 일부 노동단체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비판이 일 수밖에 없다.
타워크레인 기사 대상 상납금 요구, 폭력 사태로까지 비화한 비노조원 탄압 등 양대 노총 소속 조합원이 벌인 불법·탈법 행위에 대해 이들 의원 상당수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노조 불법 행위에 대한 강력한 단속과 처벌을 강조한 정부를 겨냥해선 “노조 탄압”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노동계 출신 의원이 발의한 법안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노동조합의 파업에 대한 손해배상을 과도하게 제한해서 문제가 된 ‘노란봉투법(노조법 제2, 3조 개정안)’은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전교조 출신의 강민정 민주당 의원이 2021년 8월 발의한 ‘초ㆍ중등교육법 일부개정법률안’엔 학생회에 학교의 장과 교섭ㆍ협의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조항이 포함돼 있다. 교육부는 이 법안에 대해 “학생회는 학부모회, 교직원회와 함께 학교공동체의 자치기구 성격”이라며 ‘교섭’이라는 표현이 적절치 않다는 취지로 의견을 냈다. 김용춘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장은 “노조 중심적인 생각을 교육 현장에까지 적용하다 보니 현실에 안 맞는 법안이 나온 것 같다”고 밝혔다.
근로 기간이 1개월 이상만 되면 퇴직금을 지급하는 법안(이수진 민주당 의원)이나 중대재해에 대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처벌을 보다 강화하는 법안(강은미 정의당 의원) 등도 마찬가지다. 법적 안정성이나 사회적 공감대를 고려하지 않고 노조 이익에 지나치게 치우쳤다는 비판이 나온다.
노동계는 국회뿐만 아니라 정부위원회도 좌지우지하고 있다. 현재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 노총이 참여하는 정부 위원회는 12곳이다. 노동계 입장을 대변한다는 명목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장기요양위원회ㆍ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 등 노조 현안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위원회도 적지 않다. 전체 노동자의 10분의 1만을 대변하는 양대 노총이 이들 위원회의 노동 부문 위원 자리를 장악하는 게 적정하냐는 논란이 나온다.
이정 한국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국의 노조 조직률이 14% 정도에 불과한 상황에서 노동계 출신 의원들이 전체 노동자, 근로자의 다양한 목소리를 제대로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며 “오히려 노란봉투법 등 사례에서 드러나듯 정치화ㆍ조직화한 특정 노조 쪽에 편향된 법안이 이들 노동계 출신 의원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윤석열 정부가 집권 2년 차를 맞아 ‘건폭(건설노조와 폭력배의 합성어)’ 단속, 회계 장부 제출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는 노동개혁이라기보단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수준”이라며 “임금체계 개편 등 법 개정을 통한 진짜 노동개혁이 필요하지만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 노동단체 눈치 보기로 제대로 된 개혁이 이뤄질지는 의문”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