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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배상훈이 고발한다
전교조가 막은 학력 진단…학생 7명중 1명은 '수포자' 됐다
입력 2022.05.04 00:01
느닷없이 찾아온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우리 사회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교육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학교는 문 닫았고, 컴퓨터 모니터로만 선생님과 친구를 만났다. 친구와 어울리지 못했고, 함께 공부할 기회도 턱없이 부족했다.
이는 전반적인 학력 저하로 이어졌다. 교육부가 발표한 ‘2020년 국가 수준 학업 성취도 평가’를 보면 1년 사이에 학력 우수자는 줄고, 기초학력 미달 학생은 늘었다. 지역 격차도 커졌다. 대도시보다 읍면 지역에 학력이 떨어지는 학생이 많았다. 더 심각한 건 기초학력 미달 학생이 매년 늘고 있다는 점이다. 2012년엔 중3과 고2의 수학 과목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각각 3.5%, 4.3%였는데, 2020년에는 각각 13.4%, 13.5%로 크게 증가했다. 7명 중 1명꼴로 수학을 포기하다시피 한 셈이다. 정부가 내건 기초학력 국가 책임제는 실패했다고 봐야 한다.
기초학력을 갖추지 못했을 때 나타나는 문제는 심각하다. 다음 단계 학습으로 나아가지 못하니 학습 결손이 쌓인다. 자존감과 효능감이 낮아져 수업을 두려워하고,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다. 대입뿐만 아니라 삶 전반에서 뒤처질 수 있다.
교육위기는 국가 위기로도 이어진다. 기름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나라를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만든 것은 교육의 힘이다. 앞으로 교육의 역할은 더 커질 전망이다. 초저출산 시대를 맞아 국가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잠재력과 역량을 최대한 키워야 한다. 늘어나는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방치하는 건 미래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다행히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대선 공약으로 모든 학생의 학력을 진단·평가해 빅데이터를 구축하고 맞춤형 학습을 지원하겠다고 했다. 또 기초학력 미달 학생을 완전히 없애고 전반적인 학력을 높이겠다고도 했다. 차기 정부가 이를 제대로 실천하려면 학력 진단 체제부터 정비해야 한다.
학교장이 거부하면 그만인 진단평가
현재 학력 진단 방식은 두 가지다. 하나는 기초학력 진단평가다. 교육부가 2019년에 모든 학교를 대상으로 한 의무화에 나섰는데 교원단체와 일부 시민단체가 평가 실시에 반발했다. 이에 지난해 기초학력보장법을 만들어 강제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을 갖췄다. 문제는 이 법이 기초학력 보장을 국가 책임으로 규정하면서도 진단 검사의 시행 여부는 학교장에게 맡긴다는 점이다. 윤 당선인이 내건 것처럼 모든 학생을 진단하는 체제가 아니다. 학교장이 원하지 않으면 학생은 학력 진단을 못 받는다. 게다가 저난도 문제로만 구성돼 30명 중 1~2명만 걸러내는 수준이다 보니 정확한 학력 수준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다.
다른 하나는 국가 수준 학업 성취도 평가다. 중3과 고2를 대상으로 국어·영어·수학 과목의 교육 과정상 학습 목표를 얼마나 달성했는지 평가한다. 그런데 전체의 3%만 표집해 평가하기 때문에 평가에서 제외된 나머지 학생은 자신의 학력 수준을 알 수 없다. 앞서 이명박 정부는 중3과 고2뿐 아니라 초6까지 세 학년의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에서 초6을 제외한 데 이어 문재인 정부는 전수 조사를 3% 표집으로 축소했다. 전교조 같은 교원단체와 일부 교육 관련 단체들이 학교를 서열화하는 비교육적 경쟁을 부추긴다며 반발해 만들어진 일종의 중재안이었던 셈이다. 교사들이 꺼리는 교원평가 논의가 함께 나온 것도 학업 성취도 평가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 한 것에 작용했다.
소수만 평가해 통계적으로 분석하면 대강의 학력 수준은 파악할 수 있다. 그러나 표집에서 제외된 97% 학생은 본인의 학력 수준을 알 수 없다. 학교에서 진단해주지 않겠다는 건 학원에 가서 확인하라는 말과 다름없다. 선생님 역시 잘 가르치고 있는지 진단하기 어렵고, 교육적 관심을 더 기울여야 할 집단을 가려내기도 쉽지 않다.
최근 교육부는 표집 대상 외에도 희망하는 학교는 자율적으로 평가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평가 대상 학년 역시 늘려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희망 학교’라는 단서가 있는 한 모든 학생의 학력을 진단해 맞춤형 교육을 지원한다는 정책은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통상 학습 결손에 따른 피해는 저소득층이나 낙후지역 학생에게 집중된다.
맞춤형 개별화 학습은 시대적 요청이다. 학생 수준을 고려하지 않고 공급자 중심으로 획일적으로 가르치는 것은 산업화 시대 패러다임이다. 학생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학업 성과를 높이려면 학습 수준과 학습 패턴을 고려한 맞춤형 학습이 필수다.
학업 수준 몰라 잘 가르치기 어려워
학생 개개인에 맞춘 맞춤형 학습 지원과 진로 지도는 교사의 권위와 전문성을 높이는 데도 도움이 된다. 학생은 자신의 꿈·진로·흥미·학력 수준을 정확히 알고 최선을 다해, 때로는 따끔하게 지도하는 선생님을 존경하고 따른다. 학생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선 교사의 세심한 관찰 외에도 객관적인 평가가 꼭 필요하다. 잘 가르치려고 노력하는 교사라면 학업 성취도 평가를 유용하게 쓸 것이다.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우선 모든 학생이 학업 성취도 평가를 받아 본인 학력 수준을 알 있도록 해야 한다. 지금처럼 정해진 날 딱 한 번이 아니라 부담 없이 여러 번 평가에 응해서 학력이 얼마나 향상했는지 스스로 점검하는 자기 주도적 평가 체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한날한시에 모여서 치르는 지필 평가는 구시대 유물이다. 이게 가능하려면 문제 은행 방식의 컴퓨터 기반 평가(computer-based test)를 서둘러 개발해야 한다. 그 다음은 진단 결과에 부합하는 교육적 조치다. 맞춤형 지원이 없는 진단은 아무런 교육적 의미가 없다. 윤 당선인 공약처럼 인공지능(AI)이나 빅데이터, 첨단 에듀테크 기술을 접목하면 데이터 기반 맞춤형 학습을 통한 국가 수준 교육의 질 관리가 더욱 고도화할 것이다.
철저한 정보 관리는 기본이다. 학업 성취도 평가는 개별 학생들이 본인의 학업 수준을 파악하게 도울 뿐 아니라 교사 입장에서도 스스로 교육적 책무를 다했는지 점검하는 자신과의 경쟁이다. 결코 이웃 학교나 동료 교사와 경쟁하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학교별 학력 격차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평가가 공개될 때 결국 지나친 경쟁과 서열화로 이어질 것을 걱정하는 교육계의 우려도 무시할 수 없다. 정부는 평가와 진단의 목적을 분명히 해서 교육적 용도로만 활용하고, 관련 학업 정보를 엄정하게 관리해 교육계의 걱정을 불식해야 한다.
그동안 학교는 잘하는 학생에겐 지루하고, 부진한 학생은 부담을 느끼는 곳이었다. 병을 치료하려면 정확한 진단이 중요하다. 마찬가지로 학습 결손을 치유하고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맞춤형 교육을 하려면 객관적 진단부터 해야 한다. 평가에 대한 편견으로 학생의 학업 성취 평가를 막는 것은 교육자로서 책임을 저버린 것이다. 어떤 이념도 학생의 미래와 바꿀 수 없다. 윤석열 정부는 모든 학생을 위한 객관적 학력 진단과 데이터 기반 맞춤형 교육을 완성한 정부로 기억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