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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기대하는게 '싼 등록금'뿐...이대론 한국 전체 추락한다
입력 2022.05.05 00:01
우리 사회가 대학에 거는 기대는 아주 높거나 혹은 아주 낮다.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미래의 빠른 기술변화와 노동시장 변화에 적응하는 양질의 교육을 제공하는 한편 새로운 기술을 창출하는 주체가 되라고 대학에 주문한다. 진심으로 많은 걸 기대하는 모습이다. 반면 학부모와 학생들은 일단 대학에 입학한 후엔 놀라우리만치 아무 기대가 없다. 싼 등록금이 아마 대학에 거는 거의 유일한 기대가 아닐까 싶다. 이런 높고 낮은 기대 속에서 대학은 갈팡질팡한다.
등록금을 낮춰야 하나, 아니면 미래를 선도하는 혁신의 원천이 되어야 하나. 이런 질문을 하게 만드는 근본적 이유는 (학부모·학생이 기대하는) 낮은 등록금으로 (정부가 기대하는) 수준 높은 교육을 해서 시대에 맞는 창조의 원동력을 제공하기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넘쳐나는 교육비, 대학만 예외
하나하나 따져보자. 선진국과 비교할 때 우리나라의 1인당 '대학생' 교육비는 매우 낮다. 반면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인당 국내총생산(GDP) 대비 1인당 '초·중등생' 교육비는 가장 많은 축에 든다. 사교육비를 빼도 그렇다. 대학 교육에 대한 무관심이 통계로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격차는 교육재정교부금이 가른다. 초·중등 교육비는 내국세를 기반으로 하는 교육재정교부금이 주요 재원이다. GDP가 증가해 세금이 늘어나면 자연스럽게 초·중등 교육재정이 증가하는 구조다. 여기에다 지난 10여 년간 학령인구가 크게 줄면서 1인당 교육비는 더 가파르게 늘었다. 반면 대학은 같은 기간 지속한 등록금 동결로 재정 규모를 불릴 수 없었다. 정부가 재정지원을 확대했지만 국가장학금처럼 학생 개인에게 지원하거나 특정 연구 등 꼬리표가 붙은 특수목적비 지원 비중이 높아 한계가 있다.
사립대학 비중이 80%에 가까운 한국의 현실에서 오랜 기간 이어진 등록금 동결은 대학 재원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물가상승조차 반영 못 하는 등록금 동결은 실질적인 교육비 감소로 이어진다.
대학이 가난하니 교육의 질이 저하
각 대학이 등록금 동결에 대응하는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다. 교수를 덜 뽑을 수도 있고, 실험 기자재를 덜 살 수도 있다. 돈을 아낄 순 있지만 교수 수가 줄고 시설 투자가 제때 안 되면 교육의 질은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교수 수가 줄면 강의 수가 줄고 강의당 학생 수는 늘어난다. 최근 대학마다 학생들 수강 신청이 어려워지는 현상이 빚어지는 건 등록금 동결, 더 나아가 대학 재정의 위축과 무관하지 않다. 교수의 보수 수준을 낮추면 되지 않냐고 묻는 이도 있다. 교수의 질은 곧 교육의 질이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대학 재정의 위축은 대학교육의 질 저하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10여 년 전 세계은행(WB)이 발표한 전 세계 주요 대학의 학생 1인당 교육비를 보면, 연구중심대학의 1인당 교육비는 매우 높았다. 또 학생 수가 적을수록, 이공계 비중이 높을수록 교육비는 높아지는 경향을 보였다. 우리나라에선 가장 높은 수준인 서울대도 하버드대 3분의 1, 스탠퍼드대의 5분의 1 수준, 도쿄대의 절반 수준이다. 아마 지금은 차이가 더 벌어졌을 것이다.
적은 돈을 투입하고도 원하는 결과를 만든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노동시장과의 괴리도 그중 하나다. 대졸자 취업률과 건보를 연결한 조사가 처음 이뤄진 2010년대 이래로 모든 계열 취업률이 낮아지는 추세다. 심지어 공학 계열도 그렇다. 대학이 사회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 하는 경직성 탓도 있지만 재정 부족으로 인한 운영 역량이 떨어지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등록금 현실화, 재정 투입 절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사실 인정이다. 좋은 교육에는 돈이 필요한데 우리는 투자가 부족했다는 사실 말이다. 이제 등록금을 현실화하고 공공 부문의 재정 투입도 더 늘려야 한다. 현재 대학에 대한 정부 대 민간(등록금 등)의 투자 비중은 4:6이다. 10년 전의 2:8보다 정부 비중이 증가했지만 민간 투자는 거의 멈춘 상태라 필요한 만큼 실질적인 지원이 늘었다고 보기 어렵다. 지방대 고사 위기를 넘어 지역 소멸을 막기 위해 지자체도 거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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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정지원 방식도 바꿔야 한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국가 장학금 같은 개인 지원이 많다. 형평성을 높이는 수단으로 이런 지원은 유지하는 한편, 수월성을 추구하는 대학에는 다른 방식의 지원이 필요하다. 규제는 최소화하면서 혁신을 유도하는 방향으로 설계해야 한다. 정부의 재정지원이 대학의 자체 역량 강화에 기여하는 밑거름이 되려면 투입이 아닌 산출에 대한 평가를 기반으로 재정지원을 해야 한다.
물론 재정투자가 반드시 대학 교육의 질을 높인다는 보장은 없다. 교육의 질을 높이려면 또 다른 노력이 필요하다. 바로 특성화다. 모든 대학이 한 줄 서기 경쟁을 할 필요가 없다. 어떤 대학은 연구중심대학이나 고급직업교육에 특화한 교육중심대학으로, 혹은 지역산업과 밀착되어 있는 대학이라면 산학중심대학의 역할에 충실하면 된다.
또 대학원 교육이 더 밀도 있게 이뤄지는 소수의 연구중심대학과 함께 산학협력 중심대학이 전국에 넓게 펼쳐져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 대학들도 변하고 있지만 더 극적인 변화는 외국 대학에서 더 쉽게 찾을 수 있다. 가령 미국 애리조나주립대는 새로운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학령인구를 넘은 광범한 연령층은 물론 국경을 넘어가며 고등교육의 수요를 끌어들이는 미래 대학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으며, 독일 응용과학 대학은 산학협력과 관련해 지방정부의 바람직한 역할을 보여준다. 또 영국 다이슨 대학은 기업이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고등교육에 참여하는 대표적 사례다. 유연한 운영 역량이 갖춰지면 우리 대학도 더 못 변할 이유가 없다.
다시 한번 반복하지만, 투자 없이는 좋은 교육도 없다. 빈곤한 재정으로는 고등교육 경쟁력의 추락을 막을 수 없다는 얘기다. 투자와 함께 대학도 운영 역량과 도덕성을 더 높여야 한다. 윤석열 정부는 이런 문제의식을 기반으로 고등교육 재정 문제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