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만의 뉴스&체크] 민사고는 2025년 폐교, 자율·다양성 억압하는 평준화 독주 <중앙일보>
본문
[윤석만의 뉴스&체크] 민사고는 2025년 폐교, 자율·다양성 억압하는 평준화 독주
- 기자
- 윤석만 기자
자사고·외고 폐지
오늘 중앙·이대부고 판결 예정
앞선 3차례 판결은 자사고 승소
학생들 “학교가 교육적폐인가”
대통령 “특권학교 서열화 심각”
이에 대해 교육부 신문규 대변인은 “행정법원의 판결은 시·도교육청이 진행한 재지정 평가의 절차에 관한 것”이라며 “교육부는 2025년 자사고·외고·국제고의 일반고 전환을 흔들림 없이 실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사고·외고 등은 5년마다 재지정 심사를 받는다. 교육청이 평가기준에 미달한 학교를 지정취소 하겠다고 1차 결정을 하고, 2차로 교육부가 동의하면 자사고 지위를 잃게된다. 앞서 서울의 8개 자사고 역시 2019년 6월 서울시교육청의 평가와 교육부의 동의에 따라 지정취소 됐다. 그러자 이들 학교는 각각 무효소송을 제기했고, 현재 1심 결과가 차례로 나오고 있다.
반면 교육부가 부동의한 사례도 있다. 전북 전주의 상산고다. 2019년 6월 전북교육청은 커트라인을 80점으로 무리하게 올려 상산고를 탈락시키려 했다. 다른 지역의 자사고보다 월등한 점수(79.61점)를 받았지만 지정취소 위기에 놓였다. 그러나 절차적 문제점을 의식한 교육부가 부동의 결정을 내리면서 살아남았다.
이때만 해도 교육부는 5년 주기 평가를 통해 기준 점수에 미달한 학교들만 단계적으로 일반고 전환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5개월 뒤(11월) 돌변했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해 2025년 자사고·외고·국제고를 일반고로 한꺼번에 전환키로 한 것이다. “시행령 개정으로 자사고를 일괄 폐지하는 것은 맞지 않다”(6월 24일 기자간담회)던 유은혜 사회부총리의 말과 달랐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교육부의 입장 변경에 대해 장홍재 학교정책과장은 “자사고들이 소송을 제기해 사회적 혼란과 갈등이 많았고 시·도교육감협의회 등에서 단계적 전환으론 안 되고 일괄 전환하자는 목소리가 있었다”며 “여러 의견을 종합적으로 반영해 결론 내린 것이지 갑작스런 결정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75개 자사고·외고 등 일괄 폐지
이대로면 현재의 초등 6학년생이 고교에 입학하는 2025년부터 전국 38개 자사고와 37개 외고·국제고는 모두 사라진다. 앞서 행정 소송을 제기한 학교들을 포함해 전국의 자사고·외고 등은 시행령 개정을 통한 일괄 폐지가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위헌소송을 주도했던 인물 중 한 명인 자사고교장연합회 대표 한만위 민족사관고 교장의 말을 들어보자.
- 왜 위헌인가.
- “교육권은 헌법에 보장된 기본 권리다. 이에 따라 학생·학부모는 교육선택권이 있고, 사립학교는 학교 운영의 자율권을 보장받는다. 하위법령인 시행령을 개정해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은 위헌이다. 5년마다 재지정 평가를 해온 제도를 갑자기 무시하는 것도 신의성실원칙과 교육법정주의에 위배된다.”
- 민사고는 어떻게 되나.
- “폐교할 수밖에 없다. 설립자가 1000억여 원을 들여서 세운 민사고는 1년 예산이 140억 원가량 된다. 세계 명문고교 모임(G20 하이스쿨)의 멤버로 외국에서도 벤치마킹하러 오는 학교가 없어지는 거다. 2025년 폐교 전 교명을 민족주체고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개교 당시 설립자의 뜻이었는데, 교육사에 교명이라도 남기자는 취지다.”
평준화 교육은 사실 19세기 산업화의 산물이다. 앨빈 토플러는 현재의 학교체제를 산업 노동력을 양성하는데 최적화된 시스템이라고 했다(『부의 미래』). 단일화·표준화·대량화라는 산업 사회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평준화 교육이 도입됐다. 토플러는 19세기 학교 체제를 비꼬는 말로 “10마일로 기어가는 교육이 100마일로 달리는 기업에 가려는 학생들을 어떻게 준비시키겠느냐”고 했다.
시대 역행하는 교육평준화
선진국에서는 이미 논쟁이 끝난 평준화 교육을 현 정권이 계속 부여잡고 있는 이유는 뭘까.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국가와 개인을 바라보는 교육철학의 차이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국가의 간섭을 강조하는 집권세력이 ‘결과의 평등’이라는 이룰 수 없는 신념을 교육에도 적용하려 한다”고 했다. “평등한 기회를 보장하되 학생 개개인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인정해야 하는데 그걸 억누르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조짐은 정권 초기부터 보였다. 2018년 교육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교육과정 성취기준에서 ‘자유민주주의’란 표현을 ‘민주주의’로 바꿨다. 김 교수는 “다수결의 논리와 인민의 평등을 내세우는 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결합했을 때 제 기능을 발휘한다”며 “‘자유’를 지우려는 집권세력의 행태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명시한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고 했다.
자사고·외고가 없어지면 교육 불평등이 사라질지도 미지수다. “자사고가 (교육특구인) 수성구 쏠림 현상을 완화했다”는 우동기 전 대구시교육감의 말처럼 교육계에선 오히려 “자사고 폐지 후 학생들이 강남으로 더욱 몰리게 될 것”(이만기 유웨이중앙교육 평가이사)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소득 증대와 함께 늘어난 다양한 교육욕구는 어떻게든 분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중백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10인 1색(획일화)의 시대에서 1인 10색(다양화)의 시대로 변했다. 1인당 GDP가 1980년 1704달러에서 1990년 6516달러로 늘 때는 개성이 ‘탄생’했다. 지금은 3만1838달러(2019년 기준)다. 한 사람의 개성도 여럿으로 분화됐다. 소득이 늘어난 만큼 다양한 욕구가 생긴다. 여기에 출산율은 급감했다. 돈은 많아졌는데 자녀수는 줄었으니 더욱 다양한 형태의 교육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국가가 개인의 선택과 다양성을 무시하고 평준화를 강조하는 것은 선진국에선 볼 수 없는 행태다.”
이런 혜안을 갖고 김대중 정부가 처음 자립형사립고(현 자사고)를 만들고 ‘교육 다양화’ 정책을 펼쳤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입시정책은 수없이 변했지만,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로 이어지면서 다양성의 철학만큼은 유지됐다. 그 결과 지금 같은 영재학교, 마이스터고 등 여러 형태의 학교가 생겨났다.
그걸 임기 1년 남은 정부가 뒤집으려고 한다. 다양성이라는 시대적 가치를 훼손하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집권세력 중엔 자신의 자녀가 외고·자사고를 나온 경우가 많다. 수십 년간 있어 왔던 선택의 기회조차 박탈하는 것, 그것이 문재인 정부가 말하는 교육정의일까.
윤석만 논설위원 겸 사회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