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육청, 혁신학교만 “5000만원 신청하라”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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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교육청, 혁신학교만 “5000만원 신청하라”
공문도 아닌 이메일로 알려
“1시간내 신청하라”고 했다가 신청 폭주하자 하루만에 취소
입력 2021.11.27 03:00
“최대 5000만원까지 추가 예산을 줄 테니 한 시간 이내로 신청하라.” 최근 서울시교육청이 서울 시내 혁신학교 교장들에게 보낸 메시지다. 그런데 신청이 너무 많이 들어오자 하루 만에 취소했다. 학교 현장에서는 “교육 예산을 용돈 뿌리듯 하냐” “국민 세금으로 장난하냐”는 말까지 나온다. ‘역대급’으로 많아진 교육 예산으로 돈이 남아돌면서 교육청이 예산을 쓰기 위해 무리수를 두다 이런 소동이 나왔다는 지적이 나온다.
◇“5000만원 줄 테니 신청하라”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23일 서울 시내 239개 혁신초·중·고교 교장들에게 ‘긴급 이메일’을 보내 “혁신학교 운영의 어려움을 지원하기 위해 특별교육재정수요지원을 고민하고 있으니, 지원이 필요한 학교는 예산을 신청해달라”고 안내했다. 교육청은 “최대 5000만원까지 지원이 가능하다”며 “긴급 시행하는 메일임을 이해해주시고 1시간 이내에 회신해달라”고 덧붙였다.
특별교육재정수요지원은 교육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부득이하게 추가 예산이 필요할 때 교육감 승인을 받아 집행하는 예산이다. 통상 학교 시설, 기자재 수리·보수에 많이 쓰인다. 각 학교가 사업계획서를 제출하면 교육청 심의와 교육감 결재를 받아 예산을 나눠준다. 이러한 교육 예산을 정식 공문도 아닌 이메일로 알리고 ‘1시간 이내 회신’이란 이례적인 요구를 한 것이다. 학교 현장에서는 “교육 예산 배분이 선착순 대기표냐”는 말까지 나왔다.
이메일이 발송되자 신청이 폭주했다고 한다. 그러자 당황한 서울교육청은 이 계획을 하루 만에 전면 취소했다. 서울교육청은 24일 오후 혁신학교 교장들에게 다시 이메일을 보내 “너무 많은 학교에서 신청을 해서 당황스럽다”며 “이번 계획은 향후 학교 시설 지원 시 참고하겠다”고 예산 지원 계획을 번복했다. 서울의 한 혁신학교 교장은 “국민 세금인 예산을 가지고 교육청이 장난치는 건가 싶어 기가 막혔다”고 했다.
혁신학교에만 예산 지원을 추진한 것도 논란이다. 혁신학교는 좌파·진보 교육감들이 지원하는 학교 모델로, 일반 학교와 달리 매년 5700만원 예산을 추가로 받고 있다. 그런데 아무 공모 과정 없이 또다시 특정 학교에 예산을 임의로 추가하는 건 ‘특혜’ 아니냐는 것이다. 서울교육청 관계자는 “모든 학교에 예산을 다 주기는 부담스러워 혁신학교에만 알렸다”며 “올해 12월까지 예산을 다 써야 하는 데다 학교 운영에 보탬이 되라고 사전 조사 차원으로 신청을 받은 것인데, 오해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교육 현장 ‘예산 쓰기’ 전쟁 중
교육계에서는 교육 예산이 넘치는 상황에서 서울교육청이 연말까지 불용(不用) 예산(그해에 다 쓰지 못한 예산)을 남기지 않으려다 이 같은 일이 벌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올해부터 교육부가 불용액이 많은 시도교육청에는 예산을 줄이겠다고 밝히면서 교육청마다 ‘예산 쓰기 전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교육부가 17개 시도교육청에 내려보낸 지방교육재정교부금(교육 예산)은 59조6000억원이다. 2006년(24조6000억원)의 2.4배에 달한다. 내년에는 64조3000억원으로 올해보다 8% 늘어난다. 매년 내국세의 20.79%를 시도교육청에 떼어 주다 보니, 세수가 늘면 교육 예산도 증가한다. 예산이 꾸준히 늘면서 교육청의 불용 예산도 연평균 1조8000억원씩 발생하고 있다.
여기에 지난 7월 2차 추경으로 6조4000억원의 추가 예산이 생기자, 학교 현장마다 “예산 쓰는 고통에 시달린다”는 비명까지 나오고 있다. 예컨대 모든 학교마다 이미 학력 보충 프로그램이 있는데도 교과 보충 사업이 추가 실시되고, 코로나로 생존 수영 수업이나 방과 후 학교, 학생 자치 활동이 중단된 상황인데도 막무가내로 예산부터 내려온다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 서울시교육청은 교사들의 심신을 위로하겠다며 교원 1인당 3만~5만원씩 ‘마음 방역’ 예산까지 뿌렸다. 뮤지컬·연극 관람을 하거나 책 사는 데 쓰라는 것이다. 그러나 교육 당국은 “미래 교육을 위한 투자가 필요하다”며 교부금 축소 주장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