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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건 조회 435회 작성일 2006-12-19 00:00
[경향의 눈] 내 친구 ‘이창호’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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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의 눈] 내 친구 ‘이창호’
입력: 2006년 12월 18일 18:22:03


이승철 논설위원〉(66회)

올해의 단어를 고르라면 나는 서슴지 않고 ‘암울’을 선택하겠다. 아파트 가격 광풍, 서민의 가슴을 멍들게 한 정치, 이미 사망선고 받은 교육. 어디서 국민이 희망의 불빛을 찾을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그래도 암울과 분노를 삭여줄 수 있는 친구가 있어 세밑의 추위에도 희망을 본다. 그의 이름은 이창호다. 바둑 천재 이창호가 아니라 긴급 조치가 내려졌던 1970년대 중반 같은 대학, 같은 학과 동기 동창으로 음울한 시대에 함께 숨을 쉬었던 친구다.

이른바 ‘운동권’이었던 이 친구는 50대 초반의 나이에도 지금껏 자기 소유의 집이 없다. 심지어 그는 출범 초창기부터 참여했던 민주화운동 기념사업회를 지난 10월초 그만두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사실 오늘의 현실을 가장 암울해하고 분노해야 할 사람 중 하나여야 한다. 그러나 그의 얼굴에서 나는 우리 사회의 희망을 보는 이유는 무엇일까.

-70년대 긴급조치시대 ‘운동권’-

그는 2년전 만났을 때 뜬금없이 나의 모교인 서울 종로구 계동의 중앙고등학교에 대해 물었다. 학교 분위기가 자유스러운지, 또 아들이 수학에 재능이 있는데 학교가 이를 살려줄 수 있을지 등을 질문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강서구에 살고 있던 그는 아들을 중앙고와 한 울타리 안에 있는 중앙중에 입학시킬 의사를 내비쳤다.

남들은 서울 강남으로, 목동으로, 미국으로, 심지어 어떤 운동권 출신 전직 고위인사는 자녀의 교육을 위해 신도시인 일산에서 강남으로 이사시켰다고 당연한 듯 얘기하는 판에, 이제는 옛 사학 명문이라는 명성만 남은 학교에 입학시키겠다는 친구를 쉽게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진짜 학교 부근으로 전셋집을 옮기고 지난해 아이를 중앙중에 입학시켰다.

최근 그의 아들이 중학 1년생으로 고등학교인 부산영재학교에 합격했으며, 이에 앞서 지난 9월 전국의 수학 천재 574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한국 수학 올림피아드(KMO) 고등부 2차 시험에서 금메달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의 판단이 옳았다는 점에서 반가웠고, 무엇보다 미쳐 돌아가는 우리 교육 풍토에 그가 빛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무척 기뻤다.

올해초 오랜만에 얼굴을 보았을 때 그는 갑자기 “운동권이 올인(all-in) 중”이라며 “나도 그 대열에 가담해 볼까”라고 질문을 던졌다. 그의 말 속에는 참여정부 후반기에 들어오면서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정부 부처나 공사 등에 한 자리를 찾아 동분서주하고 있는 데 대한 비판의 뜻이 담겨 있었다. 나의 답은 간단했다. “천하의 이창호가 노름꾼이나 하는 올인 대열에 끼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

소식이 뜸하던 친구는 9월말 그동안 몸담았던 민주화 운동 기념사업회를 떠나기로 결정했다고 알려왔다. 내분이 계속되고 있는 기념사업회를 생각할 때 자의인지 타의인지 알 수 없었지만 친구의 생계가 걱정돼 이번에는 내가 올인 대열 동참을 충고했다. 돌아온 대답은 “이제 평생 할 수 있는 일을 찾겠다”는 것이 전부였다.

이창호는 운동권이라면 아는 사람은 다 안다. 항상 궂은 일을 도맡아 하면서 한때 철학을 공부한 사람답게 진지하게 주어진 역할을 해왔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의 아들이 우리 교육이 가야할 길을 보여주었다면 친구의 변신은 오늘날 정권의 핵심에 들어가 있는 운동권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도대체 통합신당파는 무엇이며 당사수파는 무엇인가. 같은 파 안에서도 다른 목소리들이 나오니 우리 같은 전문 관찰자들조차 헷갈린다.

-떠날때 떠나는 ‘빛나는 뒷모습’-

내가 보기엔 386 시대를 상징하는 여권이 4분5열하고 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표면상 계속적 진보진영의 집권을 내세우고 있지만 속 내용은 각자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을 뿐이다. 낮은 지지율 때문에 지역구 의원은 지역 챙기기, 비례대표 의원은 조금이나마 당선 가능성 있는 지역을 찾아 헤매고 있다. 청와대 386은 무엇을 하는지조차 모르겠다.

386이 사는 길은 내 친구 이창호처럼 모든 것을 집어 던지고 표표히 떠나는 것이 최선이다. 물론 여권 386 중에 괜찮은 친구들이 있긴 하다. 그러나 지금 국민의 마음속에서 386은 도매금으로 넘어갔다. 지금 죽는 길이 결국은 사는 길이다.

댓글목록

(中) 작성일
계우회보 122호에 소개된 '중1 이수홍'군의 아버지 얘기군요.
(中) 작성일
이창호같은 인물들이 있기에 대한민국은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좋은글 읽고 나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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