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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을 위해서’길거리로 나선 사람들이 넘쳐나는 시간도 다 되어간다.
거리에서는 ‘국가와 민족 또는 시민 또는 주민을 위해서’라고 외친다 해도
그 말을 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들은 다 ‘자신의 당선을 위한다’는 것을 알기에
감안하여 말하고 듣는다. ‘기본이니까’
그런데 교육이나 학교에서는 그 기본을 잊는 경우가 많기에 더 위험하다.
말하는 사람도 잊고 듣는 사람도 잊고 상투적으로
‘국가와 민족 교육의 백년대계를 위하여,
선생님들의 복지를 위하여,
아이들의 위하여‘라고 말하다 보니 진짜 ’희생과 봉사‘라고 착각한다.
심지어 ‘아니다’라고 이야기 하면 교사 자격이 없다거나 화를 내기도 한다.
아이들을 위하여 ‘좋은 학교’를 자원해야 한다고 우긴다.
다음의 평화나 국익을 위하여 ‘지금 전쟁을 해야 한다’고 파병한다.
대학가서 행복하기 위하여‘지금의 개성이나 자유를 억압해도 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다 보니 외부에서는 ‘희생과 봉사’라고 추어주면서 더 요구하고,
뻔히 ‘얼리고 엿 먹이는 것’인 줄 알면서도 그런 요구에 저항하는 것이
힘들어 ‘희생과 봉사’하는 것으로 쳐서 위안으로 삼는다.
한 솥밥을 먹고, 얼굴을 뻔히 아는 사람들을 아끼고 위하지 않으면서
잠깐 일하다 갈 학교나 잘 알지도 못하는 다음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면서 까지 봉사한 다‘는 것들을 믿어도 되나?
그냥 그런 ’이데올로기‘에 중독된 것은 아닐까?
‘학교를 공사판으로 만드는 것은 학교 관리자들이 가장 힘들다’는 말을 듣고,
그 힘든 것을 왜 하려고 하는 것일까? 하고 생각하다가 나온 답이다.
‘희생과 봉사’에 중독된 것이 아니라면 업적?
믿기지 않는다. 더 연구해 봐야겠다. 혹시? 영어사전에 예문으로 나온....
정답이 무엇이든 ‘자리이타, 아생연후살타 그리고 좋은게 좋은 것이다 ’라는 기본을 믿기에
‘다음의 행복을 위한 투자나 개발’을 이야기 하는 사람보다는
지금의 행복을 위한 복지나 같이 사는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을 더 믿고 지지한다.
얼쑤! 조오타!
덤 ; 여기서 말하는 자리이타는 불교용어가 아니라 순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