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석 장군 이야기] 며칠 전 상임이사회에서 서경석 선배님(51회)의 리더십 강의를 듣고 매료된 바가 있어 신문에 게재되었던 기사를 올립니다.(좀 오래 전 기사지만 변동된 내용이 없는 것 같아 그냥 올립니다.) > 자유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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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435회 작성일 2005-09-27 00:00
[서경석 장군 이야기] 며칠 전 상임이사회에서 서경석 선배님(51회)의 리더십 강의를 듣고 매료된 바가 있어 신문에 게재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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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나보고 싶었습니다-고려대 객원교수 서경석 장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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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석(徐慶錫·62·예비역 중장)장군은 전투 잘하는 천부적인 감각을 지니고 있다. 실제로 베트남 전쟁에서 맹위를 떨친 전력이 있다. 베트콩 소탕 명령이 떨어지면 몇날 며칠 정글을 누비며 기어코 임무를 완수해 낼 정도로 전투를 잘했다. 현역 재직시에는 지휘관과 병사간의 턱을 낮추며 애대심과 단결심을 높였다. 그는 1999년 5월 전역하기까지 34년 간의 군대생활을 통해 하늘을 우러러 보아 부끄럼없는 삶을 행동으로 보였다.

전역 이듬해부터는 한국 과학재단의 위촉을 받아 모교인 고려대학교에서 `전쟁론'과 `지도자론'을 강의하며 후학 양성에 애쓰고 있다. 서장군의 강의가 있는 날이면 그의 강의를 들으려는 학생들로 강의실은 만원을 이룬다. 서울 안암동 캠퍼스나 조치원의 서창 캠퍼스에서는 장군의 한 마디 한 마디를 들으려 수강 신청이 쇄도한다. 인터넷으로 접수할 경우 단 7분 만에 900명이 몰려 수강 신청이 완료되는 진풍경이 3년째 계속되고 있다. 장군의 강의는 어떤 매력을 담고 있기에 그토록 인기를 얻고 있나. 장군의 강의 비법이 뭔가를 알아보기 위해 9일 그가 개인적으로 강남구 수서동에 차린 연구실을 찾았다.서장군을 처음 대하는 사람일 경우라면 그가 정글을 누볐던 용장이라는 사실에 의아해하기 일쑤다. 넉넉한 풍채와 여유 있는 미소 그리고 부드러운 말투가 다정한 이웃 아저씨로 비치기 때문이다. 장군으로의 위엄보다 친근감이 배어나기에 많은 사람들은 그를 가까이하려 한다.

또 오래 기억하려고 한다. 그게 그의 외적인 매력이다. 매 학기마다 900명의 학생들이 그의 강의를 귀담아 들으려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그는 수강생을 편하게 하는 언변술이 뛰어나다. 대화를 통한 흡인력이 강해 이해의 폭을 넓혀주는 재주가 있다는 것이다. 교양과목의 한 분야이지만 주제가 풍기는 이미지는 사실이지 칼날같이 차가운게 아닌가.
그래도 한 주 3시간 강의 시간을 놓치지 않으려 학생들은 서울과 조치원을 오간다. 무엇보다도 전쟁과 전투를 경험한 그의 산교육은 현실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체험담과 학술적인 논리를 접목한 그만의 독창적인 강의는 누구라도 우리의 현실을 쉽게 진단토록 한다. 전쟁론을 꺼내자니 당연 국가안보의 중요성이 뒷받침돼야 하고 그러자면 군의 역할과 국민들의 관심이 얼마만큼 있어야 함을 강변하는 `지리한' 강의가 전부지만 그의 노력은 무엇보다도 군과 국가안보를 이해시키는 원동력으로 작용케 한다. 오히려 학생들은 그의 투철한 의식을 여과 없이 전수되기를 바란다.
그는 강의를 통해 현실을 분석한다. 지구상에서 이데올로기 전쟁을 하는 나라가 있다면 남과 북이라는 점을 서슴없이 꺼낸다.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사상 전쟁'이냐는 반문이 있을 수 있지만 그는 논리적으로 차근차근 접근해 풀어간다.

“지난 1975년 베트남 패망의 원인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부족한 군사력입니까. 발전되지 못한 전투 장비 때문이었습니까. 그게 아니지 않습니까. 월남 국민들의 안보 의식 결여 때문이지 않았습니까. 우리에게는 과거 6·26전쟁을 겪었던 쓰라림이 있습니다. 반세기 전에 있었던 일이라 잊고 있다니 말이 됩니까. 우리에게 있은 전쟁이 북한의 불법 남침이라는 사실을 왜 올바르게 인식시키기에 인색합니까. 어릴적부터 우리의 반공관을 철저하게 심어가야 합니다. 그래야 국가가 어떤 것이고 애국이 무엇인지를 느낍니다.”

그의 강의는 북한의 통일전선 전략, 즉 대남전략전술의 저의가 어떤 것인지를 분명하게 집어 낸다. 남북 관계에 있어 중요한 것은 신뢰인데 북한이 그동안 보여 온 자세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전략의 변화가 없다는 말이다.
“우선 우리의 보안법을 철폐하라고 하는 것과 주한미군 철수를 주장하는 저들의 의도를 알아야 합니다. 북한은 우리 사회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한국 내의 제2전선을 구축해 자신들의 의도대로 무력 통일을 이루겠다는 것입니다. 섬뜩하지 않습니까.”
그는 소대장 중대장 시절 베트남이 망해가는 과정을 직접 보았다. 패망의 원인은 러시아 공산혁명의 기본이었던 계급투쟁이나 중국공산당이 내세웠던 통일전선과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목적 달성을 위해 군중으로 하여금 봉기케 하고 대상자를 학살하고 숙청했던 캄보디아의 `킬링 필드' 역시 그 범주에 속한다는 것이다. “우리네 실정은 어떻습니까. 국민의 대북 경계심이 둔화되고 있지 않습니까.” 그는 초·중·고등학교나 대학에서의 반공 교육 수준을 걱정한다. 우리의 이같은 실정을 보완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일반사회에서의 부족한 반공의식을 군이 메워 주어야 한다고 했다. 때에 따라서는 확대해야 할 시점이라고 했다. 그리고 싸워 이기는 자신감을 키우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많은 예비역 장성들의 의견에 이견이 없다고 했다.

“군대는 싸움을 잘해야 합니다. 흔히들 남북 대치 현장인 철책을 사이에 두고 접전을 잘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군이 이기는 방법은 북한의 전략을 알고 이에 맞도록 철저한 대비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휘관이면 전술을 응용할 줄 알아야 하고 주변 상황에 즉각 대처할 수 있는 전략을 구상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지휘관은 항상 공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의 말대로 우리는 지금 안보 의식이 변하는 가장 자리에 서고 있는 것일까. 안보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알면서도 이 분야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얇아지는 이유는 왜일까. 군만이 안보를 담당해야 하는 것일까. 최근 안보를 우려하며 불거져나오는 목소리를 그도 들은 바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대안이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는 군의 국민 교육 도장화 역할이 보다 강화돼야 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우리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세력이 있다면 그 세력의 활동을 봉쇄하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 지혜의 중심에 군이 서야 합니다. 국민의 교육 도장화란 사명과 임무 완수에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의 몸에는 `대비태세'가 철저하게 배어 있다. 육군중장으로 전역해 첫 강의를 앞두고는 무려 30회를 넘게 강연 연습을 했다. 혹시 실수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였다. 그러나 지금도 그는 매주 강단에 서며 초기의 그러한 자세로 후배들을 대한다.
내용의 반복 현상을 줄이기 위해 강의 없는 날이면 대형 문고를 찾아 새로운 서적을 구하고 학교 도서실에서 살다시피한다. 새로운 정보를 전해야 하는 임무 완수를 위해서다.

오전·오후 첫 강의 시간이 대부분인 까닭에 그는 부담을 느낀다. 이따금 잠을 쫓지 못하는 학생들 때문이다. 수업 전 자판기에서 50여 잔의 커피를 뽑아 그들에게 건네는 배려가 자연스러울 정도로 그의 후배 사랑은 남다르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커피 장군'이다. 선생이기 전에 선배로서 후배들과의 거리감을 좁히는 데도 묘안을 짜내는 그는 학점이 짜기로도 유명하다.
제출된 과제물에 대한 내용이 아무리 좋더라도 수업태도가 나쁘면 점수를 깎는다. 학생들은 불만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점수의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게 아니라 젊은이가 지녀야 할 도덕심과 정직성 그리고 가치관을 가르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3성 장군이 전하는 메시지는 이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인생론이기도 해 매번 강의를 마칠 때면 큰 박수 갈채가 쏟아진다.


서경석 장군 누구인가…

-베트남전서 혁혁한 전과 著書 미전투병과교 교재

서경석 장군은 1942년 생으로 경기도 의정부 출신. 중앙고등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다.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66년 파월, 맹호부대 소대장으로, 중대장으로 근무해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도 받았다. 귀국 후 노태우 전 대통령으로부터 전투 잘하는 지휘관이라는 평을 받을 만큼 전투 감각이 뛰어났다. 그 후 그는 베트남 전장에서 느낀 많은 일들을 모아 지휘관용인 병서 `전투감각'과 `전장감각'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의 저서는 미국 전투병과학교의 공식교재로 채택될 정도로 전투에 대해 간접 체험 기회를 높였다.

그는 육군번개부대장으로 근무하던 때 부하들의 훼불사건으로 종단의 스님들이 항의 방문하자 고등학교 졸업 후 경남 쌍계사에 머물 때 읽었던 불경(반야심경·천수경)을 외어내는 기지를 보여 개인적 오해를 풀기도 했다. 95년 군단장 재직시에는 군 훈련장 설치를 반대하던 노인들을 설득시켜 통합 전투 훈련장 설치를 완료 했다.
서장군의 3남 1녀와 두 동생 모두가 고려대 출신이고, 지난 4일 외동딸을 출가시켰다. 사위도 역시 고대 출신으로 자신을 포함해 8명이 고대 가족이다.

- 경 력 -
▲1965년 소위 임관(ROTC 3기) ▲66년 파월 맹호부대 중대장 ▲ 수기사 재구 대대장 ▲86년 고려대학군단장 ▲88년 특전사참모장 ▲90년 5공수여단장 ▲91년 육군번개부대장 ▲ 93년 육군교육사참모장 ▲95년 육군진군부대장 ▲97년 육군3군사령부 부사령관 ▲99년 5월 전역 ▲2000년~현재 고려대학교 객원 교수·캄보디아 명예총영사


[국방일보, 2003년 01월 11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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