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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건 조회 511회 작성일 2004-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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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주의와 보수주의의 상생


[이근식의 세상보기]
보수와 진보는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보완하는 것


2004512134925_090610000000.gif적대적 분열이 요즘 우리사회의 한 특징인 것 같다. 진보주의(liberalism)와 보수주의(conservatism)도 요즘 우리사회를 적대적으로 분열시키는 기준의 하나이지만, 이 두 이념 도 서로 상호 보완하는 상생의 관계에 있지, 상호 비난하거나 매도하거나 타도할 대상이 아니다.

이념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곤란

얼마전 진보주의와 보수주의를 주제로 토론하는 좌담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그 때 모였던 열 대 여섯 분들은 전문 연구자가 아니라 대부분 독실한 신앙심으로 어려운 이웃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시는 분들로서, 자신의 생활에서 느낀 바를 나름대로 정리하여 말씀하셨다. 이 좌담회에서 보수주의는 기득권층의 수구반동적인 생각이며, 진보주의는 어려운 이웃에 대한 봉사를 실천하는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견해는 개인의 일상생활을 보다 보람 있게 만들며, 우리사회를 보다 따뜻하게 만드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보수주의나 진보주의는 모두 각자 고유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사회적으로 일정한 역할을 담당해 온 주요한 개념이다. 이 말들을 주관적으로 해석하기에 앞서 먼저 그 고유한 뜻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념만이 아니라 무릇 말(단어나 용어)이란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고유한 객관적인 의미가 존재한다. 만일 용어를 고유한 의미 없이 각자 나름대로 이해하여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한다면 사람 간에 의사소통이 어려워 질 것이고, 또한 그 말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지혜도 배우지 못할 것이다.

진보주의나 보수주의와 같은 사회이념들은 대개 추상적이고 시대와 사람에 따라 다소 뉴앙스가 다르게 사용되므로 그 뜻을 정확하게 하나로 정의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그 말이 역사적으로 등장하여 행한 역할을 고찰하면 그 고유한 뜻의 핵심과 사회적 기능을 어느 정도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진보주의와 보수주의도 마찬가지이다.

근대 보수주의의 기원과 의미

자연과학에서도 그런 예를 흔히 볼 수 있지만, 사회과학이나 인문과학에서는 섹스피어의 말대로,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보수주의나 진보주의가 주장하는 바도 서양의 고대 그리스에서도, 동양의 옛 성현의 말씀에서도 존재하였었다. 그러나 보수주의나 진보주의란 말 자체는 근대 영국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진보주의란 말보다 보수주의란 말이 먼저 생겼는데, 1789년 프랑스 혁명에 대한 비판으로 보수주의라는 말이 나왔다. 자유와 평등, 박애를 내세운 프랑스 대혁명은 인류역사를 한 단계 진보시킨 대사건이지만, 급진적 혁명이 대개 그러하듯이 이 과정에서 법질서가 무너져서 대부분 귀족들인 수 만 명의 사람들이 정식 재판 없이 인민재판에 의하여 즉흥적으로 처형되었다. 이 중에는 개인적으로는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귀족이라는 이유로 처형된 경우가 많았다. 이를 보고 영국의 귀족과 중산층들 사이에서, 프랑스 혁명을 비판하는 보수주의가 등장하였다. 버크(Edmund Burke)가 그 대표이다.

보수주의가 프랑스 대혁명을 비판한 핵심은 두 가지이다. 하나는 국가법질서를 무너뜨려서 무질서를 초래한 과격성 내지 급진성이며, 둘은 전통의 파괴이다. 프랑스혁명 당시 수 만 명의 무고한 목숨을 마구 앗아 간 무질서는, 혁명의 목적이 아무리 지고하더라도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종교와 미풍양속과 같은 전통은 길이 보전해야 할 소중한 유산인데 이를 급진적 혁명이 모두 무차별 파괴하였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비판 중 현 우리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첫 번째의 관점이다. 흔히 보수주의는 진보를 반대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오해이다. 보수주의가 반대하는 것은 사회개선 그 자체가 아니라 급격하고 과격한 혁명이라는 방법이다. 이 밑에는 인간 이성에 대한 보수주의자들의 회의가 깔려 있다. 보수주의자들은 프랑스혁명이 인간의 이성이 설계한 의도적인 사회변혁이라고 보았다. 그런데 이런 의도적인 사회변혁이 성공하려면, 현실을 정확히 분석하고 그 변혁이 초래할 미래의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여야 하는데, 사회는 워낙 복잡하여 인간의 이성은 이를 수행할 만큼 유능하지 않다. 프랑스 혁명이 초래한 극도의 무질서와 파괴가 이를 증명한다고 보수주의자들은 보았다. 그리하여 보수주의자들은 이성보다는 오랜 경험에 의하여 검증된 전통을 존중하고, 한꺼번에 사회전체를 급격하게 바꾸기보다는 점진적으로 조금씩 결과를 확인해 가면서 사회를 개선하는 개량주의를 지지하였다. 이런 입장에서 보수주의자들은 사회주의혁명을 반대한다. 사회주의란 인간이성을 이용하여 기존 사회를 전복하고 완전히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것인데, 이런 거대한 변혁을 성공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을 만큼 인간의 이성이 유능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진보주의의 기원과 내용

진보주의 역시 근대 영국의 산물이며, 보수주의보다는 약 한 세기 늦게 19세기 말에 등장하였다. 모든 이념이 그러하듯이 진보주의도 현실에 대한 비판에서 시작되었는데 그 대상은 자본주의에서의 노동자들의 빈곤이었다. 18세기 말 영국에선 세계역사상 최초로 산업혁명이 발생하여 19세기 중반에 영국은 세계 최초로 자본주의경제가 확립되었다. 자본주의는 영국경제를 크게 발전시켰으나 노동자들은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하여 그린(Thomas Hill Green), 홉하우스( Leonard T. Hobhouse), 홉슨(J. A. Hobson) 등을 중심으로 하는 일련의 자유주의자들은 인간을 억압하는 주 원인이 과거에는 국가권력이었으나 이제는 빈곤이라고 보고, 국가의 복지제도 확충을 통한 노동자들의 빈곤퇴치를 주장하였다. 이들의 주장을 진보주의 혹은 신자유주의(the new liberalism), 혹은 사회적 자유주의(social liberalism)라고 불렀다. 이들을 신자유주의라고 부른 것은 자유방임의 시장경제를 지지하였던 고전적 자유주의와 구별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신자유주의는 자유방임의 시장경제를 비판하였다는 점에서 자유방임의 시장경제를 신뢰하는 현대의 신자유주의와 정 반대의 입장이다.

19세기 말부터 이들의 주장이 구미각국에서 널리 채택되어 20세기 초 복지국가가 등장하게 되었다. 영어의 liberalism이 자유주의라는 원래의 뜻 외에 진보주의라는 말로도, liberal이라는 말이 원래의 자유주의적인 이라는 뜻 외에 진보적이라는 뜻으로도 쓰이기 시작한 것이 이 때부터이다. 그 이후 진보주의는 뜻이 확대되어 사회적 약자를 국가가 도와야 된다는 입장으로 쓰이게 되었다. 사회적 약자에는 노동자만이 아니라, 모든 빈민, 장애자, 여성, 노약자 등이 모두 포함된다. 이처럼 진보주의는 보수주의를 반대해서 등장한 말이 아니라, 자본주의에서의 경제적 사회적 불평등을 국가라는 수단을 이용하여 해결하기 위하여 등장하였다. 폭력이 아니라 합법적인 개량주의를 지지한다는 점에서 진보주의와 보수주의는 유사하다.

진보주의와 보수주의의 상생

보수주의는 확실히 기득권층의 계급이해를 반영하는 측면이 있다. 귀족계층을 몰락시키는 혁명에 대한 영국 상류층의 불안감이 나타나며, 과거 중세 신분사회에 대한 낭만주의적 향수가 배어 있다. 또한 혁명정부를 전복하려는 국내외 적들의 공격이 격렬하였다는 당시의 위급한 시대상황이 프랑스혁명을 과격하게 만들었다는 점도 보수주의자들이 고려하지 않았다. 당시 오스트리아, 프러시아 및 영국 등 주변국들은 프랑스 혁면정부를 전복하기 위하여 연합군을 형성하여 프랑스를 공격하였으며, 국내의 귀족과 왕족들이 이에 호응하여 프랑스는 극도의 위협에 직면하였었다. 이런 점에서 영국 보수주의자들의 프랑스 혁명에 대한 반감은 주관적인 면을 띄고 있다.

그러나 보수주의로부터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교훈들을 배울 수 있다. 하나는 경솔한 개혁이나 변혁에 대한 경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근래 20년 가까이 모든 정부가 개혁을 구호로 내세우고 많은 개혁을 실시하고 있으며 지금은 더욱 그러하다. 지금 우리는 실로 개혁 인플레의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중에는 금융실명제나 남북교류개시, 금권선거 추방과 같은 올바른 개혁도 있었으나, 교육개혁이나, 행정제도개편, 농어촌구조조정과 같이, 사태를 오히려 악화시키거나 별로 성과도 없이 국민들의 혈세만 엄청나게 낭비한 경우도 적지 않았다. 사회현상은 복잡하고 사람의 이성은 불완전하고 이해관계에 묶여 있으므로 개혁주창자들은 자신을 과신하지 말고 개혁의 부작용을 숙고하고 항상 신중하게 개혁을 추진하여야 할 것이다.

보수주의는 또한 법질서의 소중함을 우리에게 가리켜 준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 군사독재시대에 만든 악법과 관행들이 많이 남아 있으며 선진국에도 부분적으로는 관점에 따라 악법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를 이유로 법질서의 소중함을 부정하여서는 안 된다. 민중의 함성이 헌법이라는 엉터리 궤변을 말하는 엉터리 지식인도 있으나, 법치주의는 문명사회의 필수요소이다. 문명사회에서 법질서는 사람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필수요소이다. 우리나라에서도 해방직후 혼란기와 6.25동란 때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여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는가? 법질서를 부정할 것이 아니라 법의 내용을 공정하게 고치고 만든 법을 공정하게 집행하여 법질서를 확립하여야 할 것이다. 만일 헌법도 법도 없이 민중의 함성에 맡기면 대중에 영합하는 선동가와 흥분한 민중들에 의하여 사회는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불우한 사람들을 국가가 도와야 한다는 진보주의의 주장은 사람간의 불평등을 제거하고 평등을 확대시키자는 주장이다. 인류의 오랜 역사를 보면 신분, 인종, 종교, 성,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내세워 강자가 약자의 인권을 유린하여 왔다. 이런 차별들이 근대 문명사회에 들어와서 많이 없어졌지만, 미국의 이라크 포로 학대에서 보는 바와 같이, 아직도 약자에 대한 강자의 잔인한 횡포가 엄존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진보주의가 가르치는 바와 같이 아직 남아 있는 모든 차별을 철폐하여야 할 것이고 이를 위해 국가가 중심 역할을 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근대자본주의사회에서 가장 해결이 힘든 차별은 경제적 차별이다. 근대 자본주의사회 건설의 주역이었던 브르조아지들은 자신들이 차별받는 평민이었기 때문에, 귀족들과 싸워 봉건시대의 신분차별제도를 철폐하였고, 그 덕에 근대사회에서 법률적 내지 사회적 차별은 많이 사라졌다. 남은 것은 주로 경제적 차별이고 이것이 근대 자본주의사회의 가장 큰 문제이다. 이 문제의 해결에 대하여 보수주의자들은 일반적으로 사유재산권을 중시하여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데에 반하여, 공산주의자(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경제 자체의 전복을 주장하고, 진보주의자들은 국가를 통한 적극적 재분배정책의 실시라는 중간 입장을 취하여 왔다. 현실적으로 진보주의자들의 태도가 합리적일 것이다. 사유재산권만을 고집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는 것도 말이 안 되고, 이미 실패가 증명된 사회주의를 답으로 택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럼 과연 어느 정도의 재분배를 택할 것인가 인데, 이에 대한 답을 찾는 것도 추상적인 차원에서는 그리 어렵지 않다. 적어도 모든 사람이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유지할 수 있도록 국가의 공공복지제도가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학적 용어를 빌리면, 기본재(basic needs)는 국가가 모든 사람에게 제공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기본재란, 의식주 세 가지에, 기본적인 교육, 의료와 교통을 말한다. 기본재의 구체적 수준은 국가의 경제력과 국민들의 의식수준에 맞추어 국회에서 법으로 정하여 진다. 내 생각에, 우리나라는 경제력수준에 비추어 볼 때 공공복지수준이 매우 낮다. 아직도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이 국가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아직 우리국민들의 생각이 너무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이요, 또 하나는 국가재정의 낭비가 심하다는 것이다. 첫 번째를 논외로 하고 두 번째만 개선하더라도 우리나라의 공공복지는 상당히 개선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 농어촌 구조조정, 무기 현대화, 벤쳐기업 지원, 서해안 간척 등 잘못된 사업들에 낭비된 수백조원의 천문학적 재정자금을 공공복지에 투입하였다면, 부모 없이 가난에 방치된 아이들이나 자식 없이 방치된 노인들이나 돈없어서 치료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별로 없을 것이다.

보수주의는 우리에게, 섣부른 개혁에 대한 경계심과 법질서의 소중함을, 진보주의는 잔존하고 있는 차별의 철폐와 불우 이웃에 대한 적극적 배려의 필요함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이처럼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가르침은 서로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보완한다.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는 상생의 관계에 있다.


이근식 교수(서울시립대 경제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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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 좋은 글 날라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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