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셀러 연연말라”자존심지킨 출판인…한만년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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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셀러 연연말라”자존심지킨 출판인…한만년 사장 |
“좋은 책을 만들어라. 잘 만든 뒤에는 자존심을 갖고 팔아라. 베스트셀러는 마약과 같으니 추구하지 말아라.”
지난달 30일 타계한 구봉(久峰) 한만년(韓萬年) 일조각 사장이 남긴 출판경영 지침이다.
구봉은 1925년 서울 종로구 적선동의 ‘선비집안’에서 태어났다. 부친 월봉(月峯) 한기악(韓基岳) 선생은 상하이 임시정부 법무위원을 지냈으며 1920년 동아일보 창간 동인으로 참여해 동아일보 발행인, 조선일보 편집국장 등을 역임한 언론인이자 독립운동가였다.
2일 빈소를 찾은 강인구 전 연암공대 학장은 “고인이 선친의 호를 따 한국학분야 양서를 시상하는 ‘월봉저작상’을 제정한 것은 아버지의 독립정신을 계승해 출판업을 한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구봉은 1948년 탐구당에 입사해 출판계에 입문했으며 53년 일조각을 창업했다. 일조각을 학술전문 출판사로 일구며 특히 소명의식을 가졌던 분야는 한국학. 한국사 분야의 역저로 꼽히는 이기백 교수의 ‘한국사신론’(67년) 등을 펴냈다. 특히 민주화운동으로 시민들의 역사의식이 높아졌지만 이렇다할 대중 역사잡지가 없던 87년, 이기백 교수 주도하에 펴내기 시작한 반년간지 ‘한국사 시민강좌’는 현재 34집까지 발간됐다.
구봉이 심혈을 기울인 또 하나의 분야는 의학이었다. 이비인후과학의 교과서인 ‘두경부외과학’ 등의 증보판을 계속 펴내 수입서적 번역 일색인 의학을 한국화하는 기반을 닦았다.
출판인으로서 구봉은 후배들이 뜻있는 사업을 펼치는데 요람 역할 하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계간 ‘창작과 비평’, 계간 ‘문학과 지성’ 창간 당시 독자적 경영력이 생길 때까지 발간을 맡아줬으며 재정적 후견인 역할까지 해줬다. 후배출판인 열화당 이기웅 사장은 “고인이 늘 후배들에게 출판은 본질적으로 어려우니 가급적 창업하지 말라고 만류했다”며 “이 같은 말씀은 결국 후배들에게 아무리 어려워도 일단 시작하면 출판의 본령을 벗어나지 말라는 서릿발 같은 충고였던 셈”이라고 회고했다.
구봉이 회갑에 낸 자서전 제목 ‘일업일생(一業一生)’은 박정희정권 시절의 입각 제의 등에도 곁눈질 한번 않고 출판 외길을 걸어온 자신의 삶을 간결하게 압축한 말이다.
구봉은 결혼도 출판을 통해 했다. 원고를 받으러 다니던 인연으로 현민 유진오(玄民 兪鎭午·1906∼1987) 박사의 사위가 된 것. 서울대병원장을 지낸 한만청씨가 친동생이고 박동진 전 외무장관이 손아래 동서다. 4남 1녀와 사위는 모두 대학교수로 재직 중이다. 차남 한경구 교수(국민대)는 “아버지가 단 한번도 공부하라는 말씀은 안 하셨지만 화장실 갈 때도 손에서 책을 놓는 일이 없으셔서 우리 형제들은 모두 주위에 뭔가 읽을 것이 없으면 불안해하는 아이들로 자랐다”고 회고했다.
한편 일조각은 11월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 맞은편의 신사옥으로 이전한다. 57년부터 써온 종로구 공평동 사옥이 서울시 지정 근대건축물로 보존되기 때문이다.
빈소에는 현승종 이홍구 전 국무총리와 김성수 성공회대 총장, 안병욱 숭실대 명예교수, 신용하 한양대 석좌교수, 이인호 명지대 석좌교수, 정진숙 을유문화사 사장, 민영빈 시사영어사 회장 등 관계 학계 출판계 인사들이 다녀갔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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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서적, 귀한 서적들을 출간하여 한국 출판계에 정도를 걸으신 고인의 업적을 기리며 삼가 경의와 애도를 전합니다..훌륭하신 선배님을 떠나 보내게 되어 아쉬움이 큽니다..평안히 잠드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