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병준(70회) 교우, 매경 2003.7.15. [취재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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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blue><big>[취재노트] 고통을 감내하는 美국민 </font></big>
<img src="http://file.mk.co.kr/meet/2003/image_readtop_2003_233638.gif" align=left>스탈린시대 구소련 외교의 주역은 단연 미하일로비치 몰로토프였다.
그가 주미대사 시절 미국인들의 애국심을 과소평가했다가 나중에 후회했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유명하다.
몰로토프는 재임중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 대통령의 죽음을 경험했다.
세계 최강국 대통령이 현직에서 병사하는 일대 사건이었다.
그는 그러나 대통령의 죽음을 맞이하는 국민들의 태도에 경악했다.
달리 슬퍼 보이지도 않았고 오히려 뉴욕 주가에 일희일비하는 모습에 무척이나 이질감을 느꼈다.
사회주의 국가 같으면 어림도 없는 작태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슬며시 흘러나오는 웃음을 멈출 수 없었다.
그는 확신했다.
소련이 반드시 미국에 승리한다는 것을. 이런 애국심을 가진 나라는 분명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후에 몰로토프는 자신이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다는 점을 솔직히 시인했다.
민주주의 국가 미국의 자발적 애국심의 위력을 그때는 간파 하지 못했던 것이다.
사실 대통령 죽음보다는 `내 손 안의 1달러`를 중요시하는 개인주의 성향이 미국인들에게는 분명히 있다.
대통령 이름을 모르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국가가 위기에 몰리면 모든 개인적 손해를 감수하면서 단결하는 것도 또 미국인이다.
바로 이 점을 노회한 외교관 몰로토프도 간과했던 것이다.
무질서 속의 질서라고나 할까. 결국 온 국민의 일치단결 속에 미국은 2차 세계 대전을 승리로 이끌면서 세계 최강국 면모를 만방에 과시했다.
5년 만에 미국, 그 중에서도 가장 국제적이라는 뉴욕에 와보니 새삼 시대의 변화를 실감한다.
한마디로 성조기 물결이다.
거리에는 물론 건물에도 성조기가 펄럭이고 있고 달리는 자동차에도 성조기는 어김없이 나부끼고 있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니건만 이심전심으로 국민 사이에 애국의 물결이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그 애국심의 실체를 여기서 논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현상은 분명 엄청나다.
한마디로 전시체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자유의 도시 뉴욕을 감싸안으며 나부끼는 성조기는 분명 패러다임의 변화다.
미국 경제가 혼미하다는 이야기가 여기저기서 나온다.
조만간 회복될 것이라는 예측이 있는가 하면 당분간 경제가 리바운드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관심은 미국만이 아니다.
세계 경제의 25%를 점하는 미국 경제의 향방은 곧바로 세계 경제에 파급되기 때문이다.
한국 경제도 예외는 아니다.
증시마저 동조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미국 경제의 미래는 한국 경제의 앞날을 가늠하는 척도가 된 지 오래다 . 주목할 것은 미국이라는 나라에서는 경제회복도 여론의 함수라는 점이다.
국민들이 다소 불편해도 경제회복보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사안이 있다면 그것이 우선이다.
최근 출입국이 엄격해져 미국의 관광수입은 크게 줄고 있다.
연간 320억달러에 달하던 관광수입이 지난해에는 270억달러 수준으로 떨어졌고 올해도 회복이 어려운 상태다.
하지만 어느 시민단체든 언론이든 이를 크게 문제삼지 않는다.
미국 여론이 "지금은 하찮은 관광수입을 논할 때가 아니지 않느냐"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의 눈에도 미국인들은 아직 다소 더딘 경제회복을 감수하더라도 이라크 등 중동문제를 포함한 세계정세의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고 있 는 것처럼 보였다.
또 미국이 생각하는 테러국들에 대한 응징도 이 기회에 처리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부시 행정부가 내년 대통령 선거를 위해 무리수를 두더라도 경제를 회복시킬 것이라고 믿는 것은 안일하다.
미국인들의 애국심은 적어도 아직까지는 이를 충분히 감내할 수준이라는 것을 주변국들은 알아야 한다.
북한이라는 핵폭탄을 안고 있는 우리로서는 바로 그런 전제 아래 국가의 정치ㆍ경제적 전략을 짜야 한다.
<전병준 뉴욕 특파원 bjjeon@m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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