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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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철이라 우산 준비하고 집사람하고 휴일을 핑게삼아
도봉산에 올랐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이 많이 올라가고 내려가고 있더라구요.마당바위에 올라서니 운무가 나무들과 어울려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내고 있었고,비 맞으며 주먹밥 몇개
입속에 넣으니 남 부러울게 없더라구요.
6시(29일)에 있는 학교 야구게임 관전을 위하여 바삐 하산,택시타고 동대문 운동장으로 내달렸습니다. 그런데, 집에서 어머니께 연락이 왔습니다. 오늘이 증조 할머니 제사니까 빨리 오
라시면서......
집사람은 며느리로서 시엄마께 책 잡힐까 덩달아 빨리 가자고
조르고......
정말 고민이 싹트더라고요. 현재시간 5시인데 야구를 봐,아니면 제사모시러 가야하나?
그러나 장손이 안가면 제사도 지낼수 없다는 생각에 집사람 을
설득하여 야구장 특별석으로 진로를 택했지요.
이전 게임으로 서울고와 유신고 게임이 벌어지고 있었고,8-1로
서울고가 승리하여 예상외로 승부가 빨리 갈렸지요.
그 덕에 경기가 30분 일찍 시작하였고 승부처는 다가오는데..
내가있는 좌석 우측으로 일단의 중앙 유니폼을 걸친 열분정도
의 선배님들을 뵐수가 있었지요.(68회 선배님인걸 후에 알았음)
응원가 및 선수의 사기진작을 위하여 애쓰시는 모습을 보니
뭉클 하되요. 선배님! 하고 달려가 합세해야하는데 눈치보느라 그러질 못했어요. 죄송해유.
그러면서도 쬐금 안타까운 것이 있었으니 응원가의 단조로움이 고것이지요.
"나가자 중앙" 과 "아리랑 목동"이 전부였지요.
저는 운좋게 80년에 입학하여 전국대회 4강까지 이끈 안언학
선배 덕으로 매 경기마다 관전을 해야했고(권청룡 교장선생님
은 단체응원의 열렬한 신봉자) 그래 자연스럽게 응원가를 배우고 접할수 있었지요.
아마 72회-74회가 응원문화의 전성기 였지않나 생각 됩니다.
물론 60-70년대에 제가 알 수 없는 또다른 응원문화가 있었겠지만요.
목차 1. 나가자 중앙
2. 계산골의 왕호랑이
3.야 만돌이
4. 우주소년 아톰
5. 나가신다 중앙
6.아리랑 목동
7. 1번타자 안타치고 2번 번트대고...(제목 모름/번안)
8.곤조가
이 밖에도 많이 있었답니다.
하옇튼 제사지내는데 늦어서 부모에게 꾸중 들었지만,
7월1일에도 꼭 갈겁니다.
동기 ,후배에게 연락 20여명은 데리고 가야지요.
68회 그 선배님들도 꼭 오세요. 맥주한잔 사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