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글] I'm not an Americ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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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 not an American!" article 을 읽고 문득 떠오른 생각을 두서없이 적어봅니다.
여중생 사건, 막상 처음 터졌을 때는 다들 "대~한민국" 월드컵에 미쳐 누구도 눈 돌리지 않았었습니다. 일부 양식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인터넷으로 회자되어 대책을 강구해야 되지 않겠느냐고 논의되었을 뿐이지요. 아마도 하루종일 월드컵 중계방송만 전파를 타고 신문을 온통 붉은 색으로 도배해 버리던 당시 제가 써 돌렸던 분노에 찬 글을 읽었던 분들은 기억하고 계시겠지요.
동양사회가 지닌 공통적 특징이라고 서양인들이 흔히들 지적하는 점이 "herding"입니다. "군집근성" 혹은 "무조건 남 따라하기" 등으로 표현될 수 있는데, 마치 비둘기 떼나 닭 떼 들 흩어져 노니는 곳에 모이를 뿌리면 미친듯이 머리가 터져라 몰려들어 모이를 채 가는 모습을 상정하시면 됩니다.
"붉은악마"와 "대~한민국"으로 표현되는 월드컵의 성공 사례가 세계인의 주목을 끌은 점 역시도 바로 이 herding effect가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극대화되어 나타난 양상이었기 때문이지요. 이런 점이 물론 좋은 점으로 비쳐지기도 하겠지만 또 다른 면으로 보면 지극히 "단세포적이고, 획일적인 사고 문화의 표현"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시청 앞 광장과 광화문, 그리고 여타의 장소에 온통 붉은 빛으로 무장하고 나타난 군중들을 TV화면으로 보면서 제 머리 속에 떠올랐던 것은 광장에 모여 미친듯이 환호하는 흑백 기록 필름 속 나치 독일의 군중들과 저들이 다를 것이 무엇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붉은 무리로부터 공포의 전율을 느껴야했습니다.
그 집단 근성 때문에 정치적 이유로든, 무슨 이유로든 목적을 갖고 선동하는 사람들에 의해 판단력을 상실하고 자기도취 되어 마치 불빛을 보고 열광하며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아무런 consequence를 고려하지 않은 채 무작정 촛불 들고 모여드는 것이지요. 이런 현상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한국의 문화 풍토가 자아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눈에 비치는 한국 사회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가 다양성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 입니다. 너무나 homogeneous한 society 이다 보니 너나 할 것 없이 다 똑같이 옷 입고, 똑 같이 화장하고 하는 것에 익숙해져 조금이라도 다르게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무조건 왕따 시킨다는 일본 사회와 전혀 다를 바 없는 획일화된 사회라는 점이지요.
모여있는 열 명의 사람들 중 아홉 명이 때묻어 더러워진 흰 색 공을 놓고 검정 색으로 단정지으려 할 때, 자기가 보기에는 흰색인 듯 보인다고 말하는 마지막 한 명의 사람을 이단자로 몰아 왕따 시키는, 사고의 다양성을 인정치 않는 문화인 것이지요.
회사 일로 brain storming을 할 때 역시도 다양한 의사가 개진되지 못하고 어느 누군가 전혀 다른 각도의 의견을 내놓으면, "그래? 그럼 당신이 그렇게 해봐" 하고 떠넘겨 버리다보니 설령 다른 의견이 있더라도 시간이 흐르면서 차츰 입을 닫아버리고, 급기야는 그 다른 의견을 개진했던 사람들조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똑같이 동화되어 버리는 불상사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지요.
기업경영에 있어서도 이런 사례는 얼마든지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애당초 다양성을 인정하고 원칙을 존중하는 사회라면 원칙에 입각한 경영방식으로 일본인 경영자나 한국인 경영자나 다 할 수 있었을 텐데 왕따 당하는 것을 두려워하듯 경영 역시도 타협을 해왔기 때문에 스스로 구제하지 못하고 벽안의 칼로스 곤 닛산 사장이나, 히딩크 같은 인물들을 통한 개혁의 움직임으로 내몰리는 현상이 나타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신년 업무보고 준비를 하면서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진정으로 우리가 깨부수어야 하는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런 단세포적이고 집단체제 적인 사고의 틀을 깨지 못하고 다양성을 인정치 않으려는 우리 자신과 우리 문화가 아닌가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