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기사
본문
중앙일보 2002.11.15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 LA 단독 인터뷰] "나도 마음 먹으면 폭로할 것 많다"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은 부인 김영미씨와 함께 미국 LA 인근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다가 기자와 만나 두 시간 가까이 최근의 심경을 털어놓았다.
동석한 부인은 金전사장이 부탁한 약을 가지고 미국에 잠시 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金전사장은 "원래 몸이 많이 아픈 데다 두달 넘게 미국 생활을 하느라 골병이 들어 가만히 있어도 식은 땀이 절로 난다"며 어렵사리 말문을 열었다.
-현대상선의 4억달러 대북 지원설 진위를 밝혀야 하지 않나.
"산업은행 대출서류에 사인을 거부했다.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진다.
당시 현대상선 고문 변호사와 사외이사 등 여러 주변 사람들과 논의한 뒤 신중하게 처신했다.
나중에라도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것을 우려한 것이다.
일부에서는 서류에 대표이사 직인이 찍힌 것을 둘러싸고 결국은 내가 묵인한 게 아니냐고 하는데 절대 그런 건 아니다.
나는 대리 시절부터 은행에 가 회사의 대표이사 직인을 찍고 다녔다.
그런 건 아무 것도 아니다.
산업은행 돈은 내가 분명히 반대한 대출금이었다.
" -엄낙용 전 산업은행 총재가 "현대상선 대출금은 정부가 갚아야 한다"고 金전사장에게 들었다고 했는데.
"嚴전총재와 만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가 국정감사장에서 내 말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정치적인 의도가 있어 말한 게 아닌가 생각된다.
나는 정치와 무관하다.
한나라당이건 민주당이건 한쪽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게 싫다.
나는 지난 9월 초 집에서 세수하다가 우연히 목덜미 근처에 물혹이 잡혀 서울대 병원과 국립암센터를 찾아 갔었다.
그래도 신경이 쓰여 평소 친하게 지내던 미국의 스티븐 리 박사에게 연락해 치료를 부탁했다.
" -결국은 현대그룹의 다양한 비자금이 국가적인 문제로 비화한 게 아닌가.
"비자금은 현대상선의 등기이사를 겸하고 있는 최용묵 현대엘리베이터 대표이사(부사장)에게 물어봐라.
그는 지난해 내가 사표를 낸 뒤 왜 비자금을 인수 인계하지 않느냐고 소리를 쳤다.
나는 그런 비자금을 모른다.
떠나는 사장한테 비자금을 인수인계하고 가라는 기업이다.
그룹 측의 압력이 너무 컸다.
정몽헌 회장과 그의 가신들이 불법적으로 돈을 달라고 노골적으로 말했다.
나는 대표이사로서 배임죄가 된다며 끝까지 버텼다.
이래서 30년 인생을 바친 직장을 떠난 것이다.
차마 鄭회장을 욕하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그의 가신들은 같은 전문경영인이기 때문에 내가 욕할 수 있다.
나는 오래 전부터 강명구 현대택배 부회장, 김재수 경영기획팀 사장,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 崔부사장은 문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현대를 걱정해 한 말이다.
" (崔부사장은 본지와 가진 전화 인터뷰를 통해 金전사장의 주장을 일부 반박했다.
그는 金전사장이 지난해 10월 퇴임한 뒤 한달 동안 임시로 현대상선의 자금 문제를 수습하기는 했으나 비자금 얘기를 한 적은 없다고 해명했다.
그는 金전사장이 돌연 사표를 내 수습하러 달려가 보니 하루 70억~80억원의 자금을 막아야 할 정도로 회사 사정이 어려웠다고 말했다.)
-鄭회장은 최근 기자들에게 그 돈이 북한으로 간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는데….
"鄭회장이 아직도 미국에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
일부에서 세 사람(정몽헌.이익치.김충식)이 미국에서 입을 맞춘다고 하는데 면면을 봐라.
서로 만날 사람들인가.
나는 사표를 던지기 전 일년 동안은 회장님 안됩니다라고만 외롭게 외치다가 나왔다.
이익치도 이 근처에 있다고 하는데 기분이 나쁘다.
내가 치료를 하러 미국에 왔더니 도피하러 다니는 사람들도 뒤따라 와 나까지 오해받고 있다.
" -이익치 전 현대증권 사장의 주장처럼 정몽준 후보가 당시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에 개입돼 있나.
"이익치도 사람이냐? 나도 현대전자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검찰 조사까지 받아 내막을 잘 안다.
자기 친구인 이영기 전 현대중공업 부사장을 꼬드겨 투자하게 해놓고 이제와 딴 소리 하는 것이다.
李전부사장은 재무담당자다.
그럴 수 있다.
그가 정몽준 의원에게 보고하고 안하고는 딴 문제다.
鄭후보가 주가조작에 개입됐더라면 아마 검찰 조사 때 벌써 불었을 인간이다.
내가 알기로는 鄭후보는 당시 현대중공업 경영에 관여하지 않았다.
이익치가 鄭후보를 저토록 인신공격하는 것은 개인 감정 이상의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내 눈에는 鄭후보가 많이 참고 있다는 게 보인다.
" -金전사장이 현대상선을 부실하게 만들고 핑계를 잡아 사표를 낸 게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
"나는 현대에 빚진 게 없다.
나도 마음만 고쳐 먹으면 폭로할 게 많다.
계속 건드리면 가만 안있겠다.
" -진실을 공개해야지 이렇게 숨어 살 필요까지 있나.
"솔직히 지금도 엉엉 울고 싶은 심정이다.
얼마 전 한국 신문 칼럼을 읽어 보고 아내와 함께 두번이나 울었다.
할 말은 아니지만 얼마 못받은 퇴직금을 이렇게 다 쓰고 있다.
다른 대기업 사장들처럼 몇십억원을 받은 것도 아니다.
평생 월급쟁이로 살면서 따로 챙긴 것도 없다.
호텔.렌터카 비용을 생각해 봐라.
아는 사람이 인터넷을 통해 값싼 렌터카(뷰익 센추리)를 얻어줘 타고 다니는데도 비용이 한달에 2천달러를 넘는다.
치료비도 비싸다.
또 하루 세끼 모두 이렇게 사먹는다.
그래서 싸구려 레스토랑을 자주 이용한다.
한국에는 곧 돌아갈 것이다.
"LA=김시래.유재민 기자 sr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