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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974회 작성일 2002-07-09 00:00
계동(桂洞)의 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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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규태 코너] 地名의 왜색청소 (2002.07.05) 이명박 서울의 새 시장은 서울의 지명에 남아있는 왜색을 청소하기로 하고 관계 연구소로 하여금 작업에 착수케 했다. 지명은 함부로 고쳐서 안 되는 문화재요 역사인 것을 한문문화가 들어오면서 한문화해 파괴를 하고 일본이 지배하면서 오염시켜 본 지명에 덧칠에 덧칠을 가해왔다. 이를테면 을지로의 원지명은 구리개인데 한문이 들어오면서 동현(銅峴)이 되고 일제 때는 구리보다 황금이라하여 황금정(黃金町)으로 때를 묻히더니 광복 후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을지로(乙支路)가 되고 말았다. 충무로(忠武路)란 지명은 충무공의 생가가 있는 마르내(乾川)길에 붙여야 옳았고 지금의 충무로는 본명인 진고개길로 했어야 옳았다. 가장 기구한 지명 유전(流轉)은 문래동(文來洞)이다. 일제 때 이곳에 두 개의 커다란 방직공장이 있다해서 사옥정( 屋町)으로 이름을 삼더니 광복 후 왜색을 일소한다하여 실을 잣는 물레를 따다가 문래동(文來洞)으로 개명, 뿌리도 연유도 뜻도 증발시켜 버렸다. 계동(桂洞)도 제생원(濟生院)이 있어 제생동이던 것을 구개음화하여 계생동으로 불러온 것을 일제가 들어와 기생동(妓生洞)으로 들린다하여 생을 빼고 계동으로 고쳐 뿌리도 뜻도 증발시켜 버린 것이다. 법조가 들어서 있는 서초동(瑞草洞)도 지명 유전이 기구하다. 서리가 많았든지 빨리 내렸든지 원명은 서릿불이었다. 불은 서라벌 비사벌하는 벌의 뿌리로 지명의 접미어다. 이 서릿불이 서리풀로 와전되고 일제 때 한문화하면서 상초리(霜草里)가 된 것이다. 상초(霜草)보다 서초(瑞草)가 상서롭던지 서릿불의 「서」를 따다 서초리(瑞草里)로 원명 파괴를 한 것이다. 법은 추상(秋霜) 같아야 한다해서 법전을 상전(霜典) 법조를 상대(霜臺)라 했듯이 법조마을로서 서릿불이란 본 이름을 되찾았으면 한다. 회기동(回基洞)도 회릉(回陵)이 있어 얻은 지명으로 회묘동(回墓洞)이던 것을 묘를 싫어하여 묘(墓)자에 가장 가까운 기(基)로 바꿔 회기정(回基町)이라 개명했으며, 한강에 물이 불면 마을이 물에 치인다해서 물치가 수색(水色)으로 둔갑했으니 지명 유린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서울 지명들이 적지않이 어떤 형태로든 원명을 훼손당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이를 복원시키는 데 특단의 의지가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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