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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0건 조회 1,217회 작성일 1970-01-01 09:00
한국우익청년총수 신혜식후배에게 뜨거운성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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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22일 오전 매서운 추위속에서 검찰청및 특검앞에서 부정축재후 해외로 내뺀 안정남 전국세청장 소환촉구와 이용호게이트 수사기밀유출한 특수부검사 규탄 및 구속촉구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런데 시위를 같이 한 한 정의로운 젊은이가 월간조선을 우연히 보다 중앙18년 후배인 것을 알고 깜짝 놀랐읍니다. 세상에 이런 인연도... 살아있는 안중근-신혜식 중앙후배교우에게 힘을 실어 주세요... 2002.1.23 정의의 사도 계우-신혜식교우 연락처 (홈페이지=www.antidj.waa.to)(이메일=djvan@hanmail.net) (전화=016-729-2283)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동아일보][조선일보]1.23 사회면 사진톱기사 ◇前 국세청장 구속 촉구 활빈단,민주참여네티즌 등 시민단체 소속 회원들이 서울 서초동 서울지검 앞에서 안정남 전 국세청장의 구속 수사를 촉구하며 피켓 시위를 벌이고 있다. /김진평기자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월간조선 2001.9)1/3 최근 보수 쪽의 흐름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새 이름 」 주요내용 「최근 보수 쪽의 흐름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새 이름 」 민주당의 「親日 시비」 잠재운 「안티 DJ」 / 네티즌 연대, 20%가 대학생 「언론탄압 반대」 동조단식도 벌여 / 『햇볕정책의 결실을 거둘 때인데 언제까지 거름만 주려나』 「민주참여네티즌연대 (이하 네티즌연대라 칭함)」가 우리나라 右翼(우익) 세력의 젊은 旗手(기수) 가운데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네티즌 연대는 지난 6월18일 창립된 이래 두 달 남짓한 사이에 金大中(김대중) 정부의 對北(대북) 정책과 언론 탄압을 비판하는 집회와 1人 시위를 각각 다섯 차례 벌였다. 네티즌 연대의 대표는 申惠植(신혜식·33)씨. 아직은 생소한 이름이지만, 그는 이미 한 번 크게 매스컴을 탄 적이 있다. 그가 바로 작년 12월 「매춘 알선 및 음란물 유포」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아 한동안 화제가 되었던 인터넷 안티 DJ 사이트(www.antidj.waa.to)의 운영자이기 때문이다. 그때만 해도 그는 자신의 實名(실명)을 드러내는 것조차 꺼려하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그러나 지금 申惠植씨는 언론의 주목을 받는 右翼 운동단체의 대표로 활동하고 있다. 이념적으로 對蹠點(대척점)에 서 있는 「한겨레21(제370호)」에서도 申씨와 네티즌 연대의 활동을 기사화했을 정도이다. 「자유시민연대와 함께 최근 보수 쪽의 흐름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새 이름」이라는 평가와 함께…. 申惠植씨의 아버지 申鍾鎬(신종호·60)씨는 1·4 후퇴 때 越南(월남)한 평안도 태생의 失鄕民(실향민). 越南하다가 공산군에게 총을 맞아 다리를 다쳤다고 한다. 申鍾鎬씨는 越南 후에는 책 街販商(가판상)으로 시작, 책 도매상을 거쳐 S문화사라고 하는 무술·스포츠 전문 출판사를 일구었다. 이러한 내력 때문인지 申惠植씨는 어려서부터 「빨갱이라면 이를 가는」 분위기 속에서 자라났다. 申씨는 중앙高 재학 시절에는 2학년 때부터 연극에 빠져 한때 대학 연극영화과 진학을 꿈꾸기도 했다. 연극은 그를 활달하고 사교적으로 만들었다. 이때의 경험은 후일 군대 생활을 할 때나, 네티즌연대의 집회나 1人 시위를 조직하는 데 여러 가지로 도움이 되었다. 안양大 전자통신과를 나온 그는 30사단 기갑대대에서 통신병으로 복무하면서 獨學(독학)으로 컴퓨터 그래픽을 공부했다. 제대 후에는 컴퓨터 몇 대를 놓고 컴퓨터 그래픽 학원을 차려 재미를 보기도 했다. IMF 사태로 학원 문을 닫은 申씨는 아버지가 경영하는 출판사에 들어가 편집 및 그래픽을 담당했다. 대학시절에도 정치에는 별 관심을 갖지 않았던 申씨가 현실에 비판적인 시작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99년 옷로비 사건 때부터였다. 권력형 비리를 척결하기는커녕 한사코 金泰政(김태정) 당시 법무부 장관을 옹호하는 金大中 대통령을 보면서 「아, 저 사람도 큰 개혁을 하기는 힘들겠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申씨는 컴퓨터 통신망인 「천리안」 등에 들어가 金大中 정권의 失政을 비판하는 글들을 적극적으로 올리기 시작했다. 4·13 총선을 앞두고는 통신에 金大中 정권의 失政과 李漢東(이한동)·李仁濟(이인제)씨 등을 비판하는 글들을 올렸다가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경찰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청와대 사이트에 야한 글이 올라오면 대통령을 조사하나?』 申씨는 통신에 올린 글 때문에 경찰의 조사를 받은 것은 「천리안」에서 자신에 대한 정보를 경찰에 제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항의하기 위해 申씨는 작년 9월 「안티(Anti) 천리안」 사이트를 개설했다. 그는 이 사이트에도 金大中 정권을 비판하는 글들을 많이 올렸다. 그러자 이 사이트를 이용하는 네티즌들이 이 사이트를 「안티 DJ」로 바꾸라는 제안을 해왔다. 申씨는 별의별 안티 사이트가 있지만, 「그렇게 失政이 많은」 金大中 대통령을 정면으로 비판하는 사이트는 없음을 확인했다.「한 번 해 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인 金大中」을 비판하려는 의도에서 사이트를 만든 것은 아니었어요. 비판의 대상은 「대통령 金大中」이었죠. 만일 李仁濟씨나 李會昌(이회창)씨가 대통령이었고, 失政을 일삼았다면 「안티 IJ」나 「안티 HC」 사이트를 만들었을 겁니다』 작년 11월 申씨는 안티 DJ 사이트를 개설했다. 인터넷 사이트 게시판에는 온갖 글들이 다 올라온다. 그 가운데는 사이트 본래의 취지와는 거리가 먼 글도 적지 않다. 「안티 천리안」,「안티 DJ」 사이트에도 음란한 유머나, 남녀 간에 만남을 갖자는 따위의 글들이 심심찮게 올라왔다. 申씨가 천리안에 글을 올릴 무렵부터 申씨에 맞서 金大中 대통령을 옹호하는 글을 올리곤 하던 宋某씨라는 사람이 있었다. 宋某씨는 서초경찰서에 『안티 DJ 사이트에 매춘을 알선하는 내용의 음란물이 올라와 있다』는 민원을 제기했다. 申씨가 회사를 비운 사이 회사에 전화를 건 경찰은 「매춘 알선 등의 혐의로 조사할 것이 있다」며 申씨의 출두를 요구했다고 한다. 회사가 발칵 뒤집힌 것은 당연한 일. 혐의 자체도 터무니 없었지만, 정식 고발이 들어간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민원 제기에 대한 참고인 조사에 불과한데도 그의 입장은 전혀 배려하지 않는 경찰의 태도에 申씨도 발끈했다. 경찰의 출두 요구에 심리적으로 위축되기부터 하는 보통 사람들과는 달리, 申씨는 알고 지내던 변호사에게 조언을 구하는 한편, 「지푸라기라도 잡아 본다는 심정으로」 朝鮮日報에 이 사실을 제보했다. 작년 12월12일 「안티 DJ」에 대한 경찰 조사 사실이 朝鮮日報에 보도되었다. 사이트에 올라온 총 1만2000여 건의 글 가운데 일부 이용자가 올린 몇 건의 야한 글을 이유로 金大中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사이트를 「음란 사이트」로 간주, 경찰이 조사에 착수한 데 대해 네티즌들은 물론 일반 시민들까지도 「치졸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申씨는 그런 반응에 힘을 얻었다. 申씨는 『수사를 하려면 음란물을 게시한 사람을 수사해야지 왜 나를 수사하느냐? MBC나 청와대 사이트 게시판에 야한 글이 올라오면 MBC 사장이나, 대통령을 조사하느냐?』고 항변하면서 경찰의 출두 요구에 맞섰다. 몇 차례 관할 경찰서가 변경된 끝에 지난 4월 申씨는 종로 경찰서에서 참고인 조사 형식으로 조사를 받았다. 담당 경찰관조차 문제 제기가 어이없다는 반응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경찰 조사는 그것으로 끝났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월간조선) 2/3 [인물 연구] 보수세력의 젊은 기수 申惠植 (2/3) (2001.09.29) 「안티 DJ」 사이트에 대한 경찰의 조사는 그때까지만 해도 무명에 가까웠던 「안티 DJ」 사이트의 聲價(성가)를 단숨에 높여 놓았다. 종래 하루 1000명 수준이던 「안티 DJ」 사이트 방문자數는 경찰 조사에 대한 보도가 나간 직후에는 하루 3만명까지 올라갔다. 경찰의 조사는 끝났지만, 정보통신윤리위원회에서 그 후에도 몇 차례 金大中 대통령에게 비판적인 글들의 삭제를 요구해 왔다고 한다. 申씨는 그러한 요구를 받을 때면 욕설이 섞인 글들은 삭제하지만, 단순히 비판의 강도가 높거나, 金大中 대통령을 유머러스하게 비판하는 글들에 대해서는 삭제를 거부했다고 한다. 요즘에도 하루 1만명 정도가 꾸준히 「안티 DJ」 사이트를 방문하고 있다. 올라오는 게시물 수는 보통 300∼400개. 메인 화면에 올라오는 게시물들에 대한 조회수는 1000∼2000회 정도이다. 게시물들의 이념적 성향을 보면 右翼 對 左翼의 비율이 대략 8:2 정도라고 申씨는 말한다. 9월5일 오전 현재 「안티 DJ」의 방문자수는 201만4250명에 달하고 있다. 「안티 DJ」의 意義(의의)에 대해 申씨는 『保守 右翼은 우리 사회에서 多數를 차지하고 있으면서도, 제 목소리를 못 내다 보니 마치 少數인 것으로 여겨져 왔다』면서, 『「내가 너무 보수적인 게 아닌가, 내가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하던 사람들에게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려 준 게 「안티 DJ」의 가장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안티 DJ」 최대의 히트작은 金大中 대통령이 목포상고 시절 일본군 군복을 입고 있는 사진 두 장을 발굴, 소개한 것. 젊은 시절의 金大中 대통령이 학예회 연극에서 일본군복 차림을 하고 있는 사진과, 일본군복 차림으로 군사훈련을 받고 있는 사진이었다. 지난 8월7일 이 사진들이 「안티 DJ」에 올려진 후 사흘 동안 이 사진들에 대한 조회수는 1만 건을 넘었다. 이 사진들은 이미 金大中 대통령 관련 서적들에 수록된 적이 있는 것들이었다. 金大中씨가 대통령이 된 뒤에도 訪日 前 옛 일본인 담임선생에게 전화를 걸어 일본말로 『선생님, 도요타입니다』라고 말했다는 사실이 처음 알려진 것도 「안티 DJ」를 통해서였다. 금년 초 일본에 거주하는 한 네티즌이 金대통령의 목포상업학교 일본인 담임선생 무쿠모토 이사부로(81)씨의 아사히 신문 인터뷰 기사(2000년 10월14일字)를 번역, 제공했던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이 새로운 것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마침 민주당이 한나라당 李會昌 총재의 부친 이홍규翁에 대해 親日 시비를 제기하고 있던 무렵이라 그 파급효과는 컸다. 한나라당은 이러한 사실들을 가지고 逆攻(역공)을 폈고, 민주당의 親日 공세는 주춤해졌다. 네티즌 연대, 20%가 대학생 申씨는 『日帝 하에서 創氏改名을 한 것이나, 교련 시간에 일본군복 차림을 한 것은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이면 피할 수 없는 일이었을 것』이라면서도 『학예회 연극에서 일본군 역할을 맡아 그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거나, 옛 담임에게 대뜸 일본말로 「도요타입니다」라고 자기 소개를 한 것을 보면 金대통령 자신이 주장하는 것처럼 학창 시절 排日(배일) 의식이 투철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고 주장했다. 지난 4월 이후 申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본격적인 右翼 운동가로 나섰다. 생업까지 그만두고 右翼 운동에 뛰어든 이유에 대해 申씨는 솔직하게 「열 받아서」라고 말했다. 『대통령에 대해 작은 비판만 해도 경찰이 수사하고, 비판언론에 대해서는 세무조사로 재갈을 물리려 드는 현실에 대해 열 받아서죠. 사회는 점점 좌경화되고 있는데, 지식인이라는 사람들은 침묵하고 있는 것도 화가 나고, 「우리 사회가 좌경화되고 빨갱이 세상이 되면 우리 가족은 다 죽는다」는 생각도 들고…. 저 같은 소시민이라도 행동에 나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의 아버지는 처음에는 말렸지만, 결국은 『어느 한 쪽에 치우치는 행동은 하지 말라』는 충고와 함께 더 이상 만류하는 것을 포기했다고 한다. 申씨는 아버지의 말씀을 『특정 신문이나 정당을 편드는 것으로 보이는 행동은 하지 말라. 소신껏 자기 중심을 지켜서 하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안티 DJ」 사이트 등을 통해 생각을 같이 하는 네티즌들을 모으는 한편, 朴讚星(박찬성) 과소비추방범국민운동본부 사무총장 등 右翼 인사들과 잦은 접촉을 가졌다. 그 결과 지난 6월18일 만들어진 것이 「민주참여네티즌연대」이다. 「참여연대」와 비슷하게 이름을 지은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일반 국민들의 관심을 끄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참여연대」와 비슷한 이름의 단체가 그와 정반대의 주장을 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9월 초 현재 네티즌연대의 회원수는 500명을 넘어섰다. 이 가운데 대학생이 20%, 20代 후반∼40代가 60%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기존의 右翼 단체들이 건국운동 참여자, 6·25나 베트남戰 참전자 등 고령자 중심임을 생각하면 네티즌연대는 右翼운동에 새로 輸血(수혈)된 「젊은 피」라고 할 만하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월간조선3/3 [인물 연구] 보수세력의 젊은 기수 申惠植 (2001.09.29) 네티즌연대의 첫 작품은 지난 7월1일 탑골공원 앞에서 있었던 「국가보안법 改廢 및 언론탄압 반대」 집회였다. 이어 7월5일에는 프레스 센터·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 앞에서 정부의 언론탄압에 반대하는 1人 시위를 벌였다. 이날 1人 시위를 벌인 네티즌연대 회원들은 甲胄(갑주) 차림으로 나타나 行人(행인)들의 눈길을 끌었다. 정부로부터 자유언론을 수호하겠다는 의지의 표시였다. 네티즌연대는 7월2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안보세미나에 후원 단체로 참여했고, 안보세미나가 끝난 후에는 한나라당 앞에서 국가보안법 改廢 및 언론탄압 반대, 金大中 대통령 탄핵, 퍼주기式 햇볕 정책 중단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주도했다. 지난 8월10일 국세청 앞에서 언론사에 대한 불공정 세무조사에 항의하는 1人 시위를 벌일 때에는 喪服(상복) 차림의 申惠植 대표가 「金大中 비자금을 조사하라」는 구호가 적힌 棺(관)과 喪輿(상여)를 앞세우고 나타났다. 「불공정한 세무조사로 이 땅의 租稅 正義(조세 정의)는 죽었다」는 의미였다. 이날 申씨는 棺과 상여를 철거할 것을 요구하는 경찰들과 몸싸움을 벌이다가 찰과상을 입기도 했다. 8월12일 부산역 광장에서 벌인 집회는 특히 호응이 컸다고 한다. 「金大中 탄핵하라」는 구호를 외칠 때마다 주변에 모여든 시민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고, 즉석에서 회원으로 가입하거나 집회에 동참하는 시민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8·15 訪北團(방북단) 파동이 있은 후인 8월26일 탑골공원에서 집회를 가질 때에는 人共旗(인공기)를 불태웠다. 林東源(임동원) 통일부 장관 퇴진 문제가 거론되던 8월29일 申惠植씨는 자민련 당사 앞에서 「자민련의 正體性(정체성), 온 국민이 지켜본다」는 구호가 쓰여 있는 피켓을 들고 1人 시위를 벌였다. 자민련 직원들도 申씨에게 「수고한다」면서 마실 것을 갖다 주는 등 申씨에게 공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9월2일에도 申씨는 국회 앞에서 「만경대 영웅 강정구 교수 北으로 돌려보내라」,「左傾 親北주의자 대거 入北시킨 林東源 통일부 장관 즉각 퇴진하라」는 피켓을 들고 1人 시위를 벌였다. 申씨는 9월4일에는 언론탄압에 항의하는 斷食(단식) 투쟁을 벌이고 있는 한나라당 朴鍾雄(박종웅) 의원을 찾아가 동조 단식을 했다. 지난 8월13일과 14일에는 일본대사관앞과 탑골공원에서 일본의 역사왜곡과 고이즈미 일본 수상의 야스쿠니(靖國) 神社 참배에 항의하는 집회와 1人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특히 8월14일 申씨가 「야스쿠니 神社 참배반대」 구호를 스프레이로 휘갈긴 일장기를 휘두르는 장면이 「뉴스위크」 표지에 실리는 바람에 申씨는 일약 국제적인 인사가 되고 말았다. 『무조건 일본을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일본의 중요성도 충분히 인식하고 있구요. 하지만 따질 일은 따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걸핏하면 左翼들은 우리나라 右翼들을 민족혼도 없는 親日派로 몰아붙이곤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준 것입니다』 『햇볕정책의 결실을 거둘 때인데 언제까지 거름만 주려나』 하지만 역시 申惠植씨와 네티즌연대의 활동은 주로 언론탄압 반대·국가보안법 개폐 반대·햇볕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모아진다. 現 정권이 선도하는 이른바 「언론개혁」 운동에 대해 申씨는 『정부가 소유하고 있는 신문·방송에 대해서는 그대로 움켜쥐고 있으려 들면서, 비판 언론에 대해선 재갈을 물리는 것이 언론개혁이라면 그것은 이미 1980년 全斗煥(전두환)이 했던 언론사 통·폐합과 본질적으로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申씨는 『자신들의 잘못은 꼭꼭 숨겨놓고 남의 잘못만 부풀리는 것이 지금의 언론개혁』이라면서 『金大中 대통령과 아태재단에 대해서도 석 달 동안 1000여 명의 조사요원을 투입, 세무조사를 실시하면 어떤 결과가 나오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現 정권이 언론개혁이라는 美名 아래 비판언론에 대한 탄압을 강행하는 것은 現 정권의 失政, 특히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을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申씨의 생각이다. 햇볕정책에 대한 申씨의 비판은 신랄하다. 『그만큼 북한에 햇볕을 쪼였으면 이제는 한 가지라도 결실을 거둘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하지만 아직도 결실을 거두기는커녕 거름(퍼주기式 對北지원)만 계속 주고 있어요. 그런 식으로 대통령이 남북관계에만 매달리는 바람에 우리의 경제·사회적 어려움만 가중되고 있어요. 햇볕도 지나치게 쬐면 日射病(일사병)에 걸립니다. 지금 남북관계는 지나치게 햇볕을 쬔 나머지 미쳐 돌아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申씨의 활동을 지켜보았던 한국 보수·우익 운동의 元老 李哲承(이철승·79) 자유민주민족회의 의장은 申惠植씨를 이렇게 평했다. 『1980년대 이래 좌경적인 지식인들이 학계를 장악하고, 학교에서도 反共立國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가르치지 않는 바람에 한총련·통일연대 같은 세력들이 날뛰게 되었어요. 그런데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확신하고 宣揚(선양)하려는 申군과 같은 젊은이가 있다는 것은 정말 놀랍고 기특한 일이에요. 우리 사회가 잘못된 흐름으로부터 정상화되고, 균형잡힌 세상이 되어가는 신호인 것 같아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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